배우로서 한 작품을 끝내고 나면 저마다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 그 중 국립극단 '겨울이야기'(셰익스피어 作)는 배우 혹은 관객의 입장으로서 연극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주었다. 배움의 과정 속에는 작품을 임할 당시의 개인적 상황과 배역에 대한 고민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연출자와 함께 작업한 모든 시간들이 나를 한 단계 성장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배우로서 연극적 역량을 발전시킬 수 있는 작품을 만난다는 것은 흔치 않기에 '겨울이야기'가 가진 의미는 더욱 특별할 수밖에 없다.
'겨울이야기'는 셰익스피어의 익숙한 작품들(햄릿, 리어왕, 로미오와 줄리엣 등)에 비해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희곡이다. 또한 희극과 비극이 섞여있는 희비극의 형식과 갑작스레 극의 논리를 초월하는 진행방식으로 인해 무대에서 표현하기 어려운 장면들이 산재해 있다. 그러다보니 셰익스피어 작품의 특징을 잃지 않으면서 비현실적 장면들을 무대화하는 작업은 공연 참여자 누구에게도 쉽지 않았다.
이에 연출자 로버트 알폴디는 고전 작품이 지닌 일종의 권위의식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방식으로 구체화하였다. 즉, 셰익스피어의 400년 전 세계를 그대로 재현하기보다는 지금 우리가 지닌 현실에 초점을 맞추어 관객의 수용력을 높였다. 예를 들어 원작 속 왕족을 부유한 가정으로 바꾸고, 셰익스피어의 반복되는 긴 대사를 간략히 압축하여 관객의 이해를 도왔으며 대사 없는 배우들의 움직임을 활용하여 장면을 시각적으로 명확히 하였다. 이러한 그의 접근방식으로 셰익스피어가 지닌 작품의 특징들을 잃지 않으면서 극의 템포를 현대적으로 새롭게 창조할 수 있었다. 그가 작품을 만들어가며 중시하는 가치는 그의 말에서도 엿볼 수 있다. "관객들은 400년 전의 삶을 궁금해 하지 않는다. 만약 그 시대가 궁금하다면 박물관에 가면 된다. 하지만 연극은 박물관에 전시될 수 없으며 지금 태어나 존재하는 이 순간이 예술이다."
그의 관점은 고전작품을 바라보는 나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과거에는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한 온전한 텍스트의 재현이 원작에 대한 올바른 접근방식이라고 생각했다면 알폴디와 작업한 이후 오늘날을 살아가는 관객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에 대해 자문하게 되었다. 아울러 그의 작업방식을 통해서 고전작품의 현대화가 지닌 예술적 가치에 대해 확인할 수 있었다.
고전작품을 읽는 이유 중 하나는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를 작품에 빗대어 스스로 답을 얻고자 함일 것이다. 이에 따라 연극 또한 과거의 방식을 온전히 재현하기보다는 현재를 살아가는 관객에게 동시대적으로 삶의 이야기를 밀접하게 제시한다면 고전작품을 감상하는 새로운 묘미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김동훈 연극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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