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차진의 분필과 지우개] 고교학점제라 적고, 과목 선택권 확대라고 읽는다

김차진 대구 수성고 교장
김차진 대구 수성고 교장

고교학점제는 진로에 따라 다양한 과목을 선택 이수하여, 누적 학점이 일정 기준에 도달하면, 졸업을 인정받는 교육과정 이수 운영제도이다. 이는 입시 중심에서 학생 성장 중심으로, 경직되고 획일적인 교육에서 유연하고 개별화된 교육으로, 수직적 서열화에서 수평적 다양화로 옮겨간다는 의미이다.

고교학점제는 2, 3차례 학생 수요 조사를 통해 단위 학교별로 과목을 개설하게 된다. 학생들이 수강 신청을 하고, 수업이 이루어진 다음에 평가 절차를 밟는다. 평가 결과 이수를 하게 되면 학점 취득을 하여 졸업을 하게 되며, 미이수한 학생들은 보충 프로그램을 수강한 다음에 학점 취득을 통해 졸업시키는 제도이다.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2, 3차례 학생 대상으로 수요 조사를 거친다는 점이다. 수요 조사 결과에 따라 기존에 개설되던 과목도 학생들이 원하지 않으면 줄여야 하고, 개설해보지 않은 과목도 학생 수요가 많아지면 개설해야 할 것이다. 줄여야 하는 과목의 교사, 늘려야 하는 과목의 교사 자격증 간에 불일치가 일어날 가능성이 크고, 상당수의 교양 과목, 전문 과목의 경우 현재 교원양성대학에서 자격증 자체가 발급되지 않는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또한 사립학교의 경우에는 기존의 교사를 담당 과목 수업이 개설되지 않는다고 다른 교사와 교체하기도 쉽지 않다.

지금도 학생 수요를 고려하기는 하지만 위와 같은 문제점 때문에 교사를 염두에 두고 수업 과목을 편성하는 것이 관행처럼 여겨져 왔다. 하지만 앞으로는 학생의 선택 과목 수요와 학교의 교원 수급 간에 차이가 발생할 경우 학생들이 선택한 과목이 우선 개설될 수 있도록 학교에서 가용한 교사와 교과 교실을 활용하되, 학교 자체로 과목 개설이 어려운 경우에는 인접 학교와의 공동 교육과정 운영, 온라인 교육과정 개설, 특성화고 직업교육 프로그램 수강 등의 방법을 검토하여 활용할 필요가 있다.

필자가 프랑스에서 근무하면서 둘러본 고등학교에서는 공통으로 듣는 수업 이외에는 학생마다 시간표가 다 다르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이런 선진국 사례들을 통해 우리나라도 학생의 과목 선택권을 확대하여 맞춤형 수업을 개설해줘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를 사회 제도에 반영한다면 고교학점제는 고등학교 교육에 획기적인 변화를 초래할 것이다.

어떤 분은 미이수한 학생들을 어떻게 졸업시킬 것이냐에 관심을 두지만 정부가 현 평가 제도와 다른 급격한 방안을 내놓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다양성이 존중되는 미래사회는 지금과 같은 경쟁 구도의 획일적 평가 방식으로는 타당성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에 학생들이 자기 삶과 연계된 공부, 배움을 통해 성장을 추구하는 교육의 장이 열리기를 소망해본다.

고교학점제의 바람직한 정착을 위해서는 교원들부터 과거의 관행을 내려놓고 학생 중심의 새로운 교육과정 운영 요구에 적응할 수 있도록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할 것이며, 학교 안에서 해결 가능한 과제, 교육부나 교육청이 해결해야 할 과제, 교원양성대학 등과 협의해야 할 과제 등으로 나누어 장·단기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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