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를 잇는 금은방, 경북 안동 장춘보석은 요즘 보기 드문 곳이다. 1981년 문을 연 이곳은 아버지에 이어 딸·아들이 대를 이어 운영하는 곳이다. 그 만큼 가족이 화목하고 구성원 모두 직업정신이 투철하다.
지난 24일 장춘보석에서 이곳의 초대 대표인 권기원(70) 씨를 만났다. 권 씨는 1981년 6월 19일 장춘보석의 문을 열었다.
권 씨는 "안동 구도심의 남문동은 1981년 당시는 지금처럼 금은방 골목이 아니었다"며 "내가 장춘보석을 연 뒤 하나 둘씩 금은방이 들어서면서 지금의 골목이 형성된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장춘보석을 알리기 위해 권 씨는 적극적으로 홍보 활동을 했다.
그는 "안동MBC 라디오 정오 뉴스가 끝나자마자 20초 광고를 만들어 한 달간 내보냈다"며 "광고도 색다르게 내 목소리로 직접 녹음해서 나갔다"고 말했다.
1981년 라디오 한 달 광고료가 33만원이었다고 한다. 당시 버스요금이 100원, 자장면 가격이 500원, 갓 입사한 공무원 월급이 10여만원이었으니 얼마나 큰돈을 홍보에 투자했는지 가늠할 수 있다.
권 씨는 "라디오 광고도 하고 택시 10대 정도에 광고도 부착했다"며 "초기에 자리를 잡을 때는 과감한 홍보가 중요할 것 같아서 투자를 아끼지 않았고 그 결과 손님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들었다"고 말했다.
장춘보석이라고 이름을 지은 연유도 재밌다. 권 씨는 금은방을 운영하기 전 인근 장춘당약국에서 12년 동안 일을 했다. 그는 수완이 좋고 붙임성 있는 성격이라 손님들에게 인기가 있었고 그런 그를 약국 대표인 고 권휴장 씨도 눈여겨봤다는 것.
어느 날 권 씨가 금은방을 열기 위해 일을 그만 둔다고 했을 때 장춘당약국 권 대표는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 때문에 우리 약국도 흥했으니 금은방 이름도 장춘보석으로 해라"고 말했다.
당시 안동에는 장춘당약국이 가장 번성한 곳으로 인근 지역까지 약 도매 납품을 할 정도로 사람들 왕래가 잦은 곳이었다. 이 때문에 그도 '장춘'이란 이름을 쓰면서 약국을 찾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그의 금은방으로도 연결이 됐다.
권 씨는 "장춘당약국에서 배운 한자 공경할 경(敬) 자를 장춘보석의 운영 철학으로 쓰고 있다"며 "내가 장춘보석을 운영할 때는 물론이고 자녀들에게 이곳을 물려 줄 때도 늘 처음처럼 손님을 공경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마음을 다지게 했다"고 말했다.
2003년 권 씨의 권유로 덕성여대 일어일문학과에 다니던 둘째 딸 민경(40)씨가 보석감정사에 도전하게 됐다. 당시 취미삼아 공부를 했던 민경 씨도 점점 보석 감정에 대한 매력을 느꼈고 1년 만에 자격증을 취득하면서 서울 생활을 정리한 뒤 안동으로 귀향하게 됐다.
2007년 아버지의 은퇴와 함께 민경 씨는 장춘보석 2대 주인이 됐고 2008년 동생 순찬(37) 씨가 합류해 현재 11년 간 오누이가 이 금은방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아버지의 일을 물려받았다는 것 자체가 영광"이라며 "무탈하게 운영해 우리 자녀들에게도 물려주는 것이 바람"이라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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