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대구 쪽방 주민 2명과 지역 시민사회단체가 전국 최초로 국가인권위원회에 폭염대책 촉구 진정을 냈다. 쪽방촌의 더위나기는 생존권과 인간 존엄성 침해라는 것이다. 이들은 박능후 보건복지부장관과 권영진 대구시장에게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과연 생존권까지 위협받는 주거환경이 어떤 지 본지 기자가 지난 19일부터 23일까지 4박 5일간 대구 북구 한 쪽방에서 직접 체험해봤다.
◆습기·해충·소음 삼중고, 폭염기엔 더해
기자가 닷새를 빌린 쪽방은 지은 지 40년도 넘은 건물에 10가구가 모여 사는 곳이다. 가로 150㎝, 세로 190㎝로 채 한 평이 안 되는 쪽방에 하루 거주하는 비용은 1만원. 그래도 이곳은 주민들 사이에서는 고급 쪽방으로 통한다고 했다. 전기패널이 있어 겨울에는 비교적 따뜻하고, 여름철에는 하루 세 번 씻어도 집주인이 눈치를 주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
창문 밖이 벽으로 가로막혀 있어서인지 쪽방 안은 30℃ 안팎의 기온에도 굉장히 습하고 더웠다. 가만히 있어도 땀방울이 맺혔다. 고물 선풍기는 굉음을 내며 거친 바람을 토했다. 소음측정기로 선풍기의 소음을 측정하자 72.6㏈('혼잡한 차도' 수준의 소음)을 나타냈다. 더위를 피하는 대신 소음을 받아들여만 했다.
비스듬히 각도를 틀어 간신히 누우니 천장과 벽 곳곳에 붉은 피딱지가 가득했다. 모기를 잡은 흔적이었다. 건물이 너무 낡아 곳곳에 틈이 있다 보니 방충망과 살충제가 무용지물이었다.
첫 날 밤에는 귓가에 울리는 모깃소리에 뺨과 귀를 수없이 손바닥으로 내리치다 결국 오전 3시에 잠을 포기하고 집 밖을 서성여야 했다.
20일 오후 10시 더위를 피해 방 앞마당으로 삼삼오오 모인 주민들은 "모기나 습기는 지내다 보면 적응이 된다"고 다독였다.
주민 A(68) 씨는 "진짜 목숨을 위협하는 더위는 장마가 끝나고 온다. 한두 달간은 죽었다 생각하고 간신히 하루하루를 버티다 보면 가을이 온다"고 했다.
공동샤워실 물바가지에도 모기떼와 하루살이들이 소복하게 날아다녔다. 주인 B씨는 따뜻한 물이 나온다고 호언장담했지만, 수도꼭지에서는 찬물만 흘렀다.
땀 냄새가 심하게 났고 뜨거운 샤워 생각도 절실해 쪽방 마루에 붙어 있던 안내문을 보고 20분을 걸어 중구에 있는 '대구 행복의 집'을 찾았다. 이곳은 쪽방촌 주민과 노숙인들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공동샤워시설이 있다.
매일 아침부터 쪽방 주민들은 저마다 쪽방에서 이곳까지 향하는 일명 '샤워 로드'를 걷는다. 최대 4명이 들어가 샤워를 할 수 있는 시설 안에서 비누로 몸을 박박 칠하고 뜨거운 물로 씻어내니 그나마 살 것 같은 기분이었다.
북성로 인근의 쪽방 주민 C(53) 씨는 "집에 세탁기가 없고, 여기서는 사시사철 뜨거운 물 샤워를 할 수 있어 일주일에 2번 이상 꼭 온다"고 말했다.

◆의식주 전반에 만연한 에너지 빈곤
기자가 거주했던 쪽방촌에는 에어컨이 없고 세탁기도 고장난 채였다. 냉장고를 보유한 가구도 10가구 중 3가구에 불과했다. 특히 에어컨은 아예 얘기할 거리가 안됐다.
주민 D(56) 씨는 "흙벽이라 배관공사를 하면 벽이 허물어진다"며 "10가구가 다닥다닥 붙어살다 보니 실외기를 놔둘 공간도 없다"고 했다.
인근 쪽방 건물주 E(70) 씨는 "15가구가 사는 쪽방에 에어컨을 설치하면 전력소비가 급증해 누진세가 붙는다. 월세 받아선 전기료도 못 낸다"고 손사래를 쳤다.
대구환경운동연합이 지난해 6월 중구와 북구 일대 쪽방 48가구를 조사한 결과 에어컨을 보유한 가구는 단 1곳에 불과했다. 나머지 47가구는 선풍기가 유일한 냉방 시설이었다.
다른 전기·전자제품 보유현황도 초라했다. 세탁기를 보유한 가구는 5가구, 전자레인지는 7가구에 그쳤다. 전기포트, 냉장고, 전기매트가 아예 없는 곳도 10가구가 넘었다. 단 2가구만이 제습기, 정수기, 가스난로, 공기청정기를 갖고 있었다.
서창호 반빈곤네트워크 집행위원장은 "전기 배선이나 구조적 문제로 에어컨 설치 등이 불가능하다면 최소한의 단열재 설치, 폭염기간 중 임대주택 입주 등 근본적인 대책을 정부와 대구시가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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