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인수일 교수의 과학산책] 무역 전쟁이 아니라 기술 전쟁이다.

인수일 교수.DGIST 에너지공학전공 교수(사)초일류달성경제연구소장
인수일 교수.DGIST 에너지공학전공 교수(사)초일류달성경제연구소장

며칠 전에 중국 베이징에 위치한 북중국전력대학교에서 주최하는 국제 학술회의에 다녀왔다. '광(전기)촉매' 분야에서 활약하는 세계적인 석학들을 초청해서 연구 동향을 살피고 정보를 교환하는 자리였다. 태양 빛과 촉매로 물을 분해해서 수소를 만들거나 이산화탄소를 에너지로 전환하는 연구가 주된 관심사였고 행사의 중심에는 중국인 과학자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었다. 베이징의 하늘은 미중 무역 갈등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듯 잔뜩 흐려 있었지만 무서운 속도로 성장해서 미국과 패권을 다투는 중국의 기세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5월 중순부터 격화된 양국의 무역 갈등이 점차로 무역 전쟁의 양상을 띠면서 전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수입품에 대한 관세를 대폭 인상하고 기업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는 통에 주변국들은 계산기를 두드리기 바쁘다. 미중 갈등이 정점 일 때 중국행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듣고 불꽃이 엉뚱한 곳으로 튀는구나 하고 걱정했다. 아니나다를까 전체 수출 물량의 4분의 1을 중국에 보내는 우리나라는 수출 감소 폭이 -20.9%까지 내려갔다고 한다. 다행히 두 나라의 휴전 협상으로 주변국들은 잠시 숨을 돌리게 되었지만 불확실성이 크다는 점과 미국의 주요 우방국에 대한 보복성 제재가 있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잠시도 안심할 수 없다.

미국이 관세 문제로 포문을 연 것은 자국의 경제적 이익만을 위해서는 아니다. 네이처 지표(Nature Index)는 2025년이면 중국의 과학기술 분야에 대한 학문적 기여도가 미국을 추월하는 것으로 보고하였다. 미국을 압도하는 과학자 수와 정부의 과감한 투자 그리고 과학자를 파격적으로 우대하는 정책이 과학에 흥미를 잃고 있는 미국과 서방세계를 위협하고 있다. 미국이 두려워하는 것은 중국 정부의 지원을 받는 화웨이 같은 IT 기업이 5G로 구현되는 초연결성과 초스피드로 세상을 장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IT 기술의 발달은 수백 년에 걸쳐서 뿌리내린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를 짧은 시간에 위협할 수 있다. 핵심 기술이 테러 집단에 넘어갈 경우 국가 안보에 커다란 위협이 될 것이다. 중국 유학생에 대한 감시나 비자 제한 조치 그리고 무역 분쟁이 이러한 우려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중국은 발톱을 숨기고 미국과 화해 무드를 연출할 수도 있었겠지만 화웨이와 같은 중국의 대표적인 IT 전략 기업이 타격을 입자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 핵무기 하나로 미국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인 북한의 모습에서 다른 출구 전략을 모색했을 것이다. 과학기술면에서나 경제규모면에서 과거의 중국이 아님을 드러내고 존재감을 과시하고 싶었을 것이다. 미국은 다른 형태의 제재를 준비할 것이고 중국은 화약과 나침반을 발명하고도 세계 패권을 차지하지 못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대책을 마련할 것이다. 협상가 트럼프 대통령과 이공계 출신 시진핑 주석의 2막이 자못 궁금하다.

강대국들의 치열한 패권 다툼과 숨 막히는 외교전의 틈바구니에서 우리는 국제 정세를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전략을 세워야 한다. 강소국의 입지를 조속하게 마련하고 주도권 경쟁에서 밀리지 않도록 하려면 과학기술에 대한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DGIST 에너지공학전공 교수(사)초일류달성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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