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괴벨스의 부활?

박병선 논설위원
박병선 논설위원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유대인 생존자들이 가장 증오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얼핏 총통 아돌프 히틀러나 게슈타포 수장인 하인리히 힘러일 것 같지만, 의외의 이름이 등장한다. 바로 나치 선전부 장관 요제프 괴벨스(1897~1945)다.

"분노와 증오는 대중을 열광시키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선전의 가장 큰 적은 '지성주의'다." 괴벨스는 치밀한 선전선동을 통해 대중의 분노와 증오를 폭발시켜 유대인을 죽음의 길로 내몰았다. 지식, 상식 따위를 앞세워 국가정책에 반대하는 자는 '국가의 적'으로 취급했다.

'선전을 일종의 예술'로 여긴 괴벨스는 지식인이었다.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아 나치당 초창기에는 거의 유일한 박사였다. 그는 유능한 참모들을 동원해 대중의 심리와 선전 기술을 연구했다. '괴벨스는 자신의 주위로 야심만만하고 능력 있는 참모들을 대거 모았다. 그들의 절반 이상이 대학을 다녔고, 많은 수가 박사학위를 갖고 있었다.…괴벨스와 참모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사회와 국가를 도박판에 내몰았다.'〈랄프 게오르크 로이트 저, 괴벨스 대중선동의 심리학〉

괴벨스를 언급한 이유는 요즘 한국 사회에 대중선동을 일삼는 분위기가 팽배하기 때문이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연일 일본의 경제 보복과 관련해 '친일파로 불러야' '애국이냐 이적이냐' '전쟁은 전쟁이다' 따위의 글을 쏟아내고 있다. 야당과 일부 언론이 주타깃이다. '언론은 정부의 피아노가 돼야 한다'는 괴벨스의 말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진보 지식인 김규항 씨는 "이견은 모조리 이적이며 매국이다.…자유주의의 기본조차 팽개치는 자기 모독의 개소리일 뿐이다"고 썼다. 김 씨의 표현대로 '개소리'를 하는 분은 서울대 법대 교수 출신이며 민주화운동에 헌신한 인물이다. 거기다 언행을 조심해야 할 고위 공직자 신분이다. 청와대까지 "법리적인 문제는 법조인으로서 민정수석이 충분히 발언할 수 있다"고 거들었다.

애국의 길에는 여러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정부 정책에 따르면 애국이고, 따르지 않으면 매국이라니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리는 것과 같다. 다원화 시대에 케케묵은 애국 논리를 선동하는 분들이 민주화 세력이라니 가슴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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