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여성 등장인물에 관하여

손호석 극작가·연출가

손호석 극작가·연출가
손호석 극작가·연출가

필자는 한국 최초의 여성비행사이자 독립 운동가이신 권기옥 선생의 일대기를 담은 뮤지컬 '비 갠 하늘'에 각색과 조연출로 참여하였다. 이 작품은 2016년 3월에 대구시립극단 정기공연으로 초연되었고 그 후로 매년 작품을 보완하여 여러 차례 공연되었다. 올해 대구시 8·15 기념식에서도 짧은 버전으로 축하 공연이 이루어진다. 한 여성이 주변의 남성에게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노력과 힘으로 꿈을 이루어가는 이야기. 한국의 수많은 영화와 뮤지컬 작품들이 남자 주인공의 이야기에 편중되어 있는 현실에서 여성이 주인공인 이 작품이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다는 점이 필자는 무척이나 자랑스럽고 다행스러웠다.

영화나 뮤지컬에서 여성의 배역이 많지 않고 남성 등장인물의 보조적인 역할에만 머무른다는 문제 제기가 오래 전부터 있었다. 헐리우드 영화에서는 최근 이러한 문제를 바로잡기 위한 노력들이 가시화 되고 있다. 현재 극장에서 상영중인 영화 알라딘에서도 쟈스민 공주가 알라딘의 도움을 받는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인물이 아니라 여성이지만 술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결국 스스로의 힘으로 술탄의 자리를 이어 받는 당당한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꼭 그런 의도를 가지고 작품을 만들지는 않았지만 돌이켜보면 필자는 여성이 주인공인 공연에 자주 참여했던 것 같다. 올해 초 시립극단에서 연출했던 헨리크 입센의 '인형의 집'도 노라라는 여성이 주인공인 이야기이고, 지난달 공연한 뮤지컬도 안이수라는 여중생이 주인공인 작품이었다. 내년에는 우리가 잘 아는 판소리 심청가를 현대적인 시선으로 각색한 작품을 선보이려 한다. 아버지를 위해 희생하는 심청이가 아니라 사회의 부조리를 바로잡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강단 있는 여성으로 심청이를 그려낼 예정이다.

좋은 예술은 세상에 큰 영향을 끼친다. 자라나는 아이들은 예술 작품을 보면서 가치관을 정립하기도 한다. 그들이 만나는 이야기 속 여성 등장인물들이 남성을 보조하고 수동적인 역할에만 머무르는 모습만 보여준다면 잘못된 의식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작가로서 멋진 여성들이 등장하는 작품을 더 많이 써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그리고 우리 지역에서 더 많은 당당한 여성 등장인물들을 만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손호석 극작가·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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