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서평] 로마인에게 배우는 경영의 지혜/ 김경준 지음/ 메이트북스 펴냄

로마 시가지
로마 시가지

2천년 전 로마인들의 성공스토리는 우연이나 행운이 아니라 오직 실력과 노력의 결과였다. 산적들과 양치기의 작은 촌락으로 시작한 로마가 700년의 성장기를 거쳐 서방세계 전역을 지배하는 패권국이 되고 300년 가까운 번영을 누린 것은 변방의 벤처기업이 M&A를 통해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하고 발전하는 과정에 비유할 수 있다. 그래서 로마는 인류 역사상 최강의 조직으로 꼽힌다.

지은이는 1천년의 역사를 유지하고 세계제국을 건설한 로마의 성공 원동력을 대담한 개방성, 탁월한 리더십, 체계적인 시스템, 철저한 실력주의라는 4개의 바퀴로 제시하고 있다. 특히 로마인의 국가경영을 현대의 기업경영에 적용해 과거와 현재를 타임슬립 하듯 넘나들며 경영의 핵을 명확히 짚어내고 있다.

로마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
로마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

◆대담한 개방성

이탈리아반도 중부의 조그만 마을에서 출발한 로마가 역사상 수없이 명멸했던 정복민족으로 끝나지 않고 유럽과 아프리카, 아시아에 걸쳐 다인종, 다민족, 다종교, 다문화로 이뤄진 공동체로 발전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힘은 개방성이었다.

로마인들은 건국 초기부터 정복한 부족의 유력자에게 원로원 의석을 제공해 지배계급으로 편입하는 전통이 있었다. 정복을 통한 영토확대가 로마의 하드웨어 M&A라면, 개방성으로 패배자를 동화시키는 정책은 로마의 소프트웨어 M&A였다고 할 수 있다.

민주정치를 표방했던 그리스인에게 시민이란 '피를 나눈 자'였지만, 로마인이 생각하는 시민은 '뜻을 같이하는 자'였다. 로마는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피부색과 출신지역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공동체에 기여한 정도에 다라 시민권을 부여하는 정책을 펴갔다. 피를 흘리며 싸운 적국도 승리한 후 포용하는 대외적 개방성으로 공동체의 외연을 확대했다. 건국 초기 귀족들이 독점하던 정치적 기득권을 꾸준히 내부 개혁을 통해 평민들에 개방하면서 반체제를 체제 내로 흡수하고 인재 활용의 범위를 넓혔다.

13대 로마황제 트라야누스
13대 로마황제 트라야누스

◆탁월한 리더십

조직의 수준은 곧 리더의 수준이다. 로마는 학교에서 배우는 고상한 이론이 아니라 현실에서 체험을 쌓는 것을 중시했다. 로마의 명문가 젊은이들은 군대에서 지휘관으로 복무하고 말단 행정직을 경험한 후 단계별로 공직을 거치고 리더십을 검증받으면서 지도자로 성장한다. 이런 시스템은 우수한 지도자가 끊임없이 충원될 수 있었고, 현실과 유리된 이상론에 빠져든 선동가가 지도자가 되면서 공동체에 해악을 끼치는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로마사회는 실력에 기초한 힘의 논리가 지배했지만 지도층의 윤리의식이 리더십을 확보했다. 공화정 초기에 현직 집정관이 국법을 위반한 자신의 두 아들을 사형시키면서 법치주의 전통이 확립됐고, 전쟁이 나면 지도층이 가장 먼저 무기를 들고 달려나가 싸우면서 공동체를 위한 희생정신이 만들어졌다. 뿐만 아니라 재산을 기부하고 공공시설을 건축해 권위와 명예를 쌓는 문화가 널리퍼져 있었다. 로마에는 확장 과정에 다양한 민족과 집단이 편입됐지만 다음 세대의 지도층을 육성하는 시스템과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이 있었기에 리더십을 유지하고 공동체를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로마인에게 배우는 경영의 지혜
로마인에게 배우는 경영의 지혜

◆체계적인 시스템

시스템과 매뉴얼만 제대로 갖추면 어떤 조직이든 기본점수는 딴다. 로마군의 핵심역량이었던 강력한 군사력은 불굴의 의지를 강조하는 정신력이 아니라 체계적인 시스템과 매뉴얼에서 출발했다. 공화정 로마는 매년 군대를 재편성하는 시민군체제였다. 최고지휘관부터 일개 병사까지 완전히 바뀌는 상황에서 전투력을 유지하기 위해 자연히 시스템과 매뉴얼이 갖춰졌다. "로마군은 곡괭이로 싸우고 병참으로 이겼다"라는 평판도 있다. 시스템과 매뉴얼로 양성된 군사력을 체계적 병참으로 지원해 대규모로 집중 투입하는 로마군의 전쟁방식이 '무적의 로마군단'이라는 명성의 근원이었다.

이런 사고방식은 군대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로 확산되면서 로마의 무형자산이 되었다. 로마 전역을 핏줄처럼 연결한 가도와 도시기반시설인 상하수도 등 방대한 사회간접자본을 건설하고 유지한 것은 체계적인 관리시스템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또한 로마의 세금제도는 넓고 얕게 걷는 것으로 유명하다. 낮은 세율을 유지하면서 공동체의 번영을 이끌어낸 세제도 효율적인 국가영영시스템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철저한 실력주의

로마가 개방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근본 원인은 철저한 실력주의가 뿌리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로마의 신분제는 꽉 막힌 분리벽이 아니라 소통되는 삼투막이었다. 기원전 367년 리키니우스-섹스티우스법이 제정되면서 평민도 국가지도자가 될 수 있는 길이 열렸고, 노예도 실력만 있으면 자유민이 되는 길을 개척할 수 있었다. 건국 초기 왕정에서도 왕위를 세습이 아니라 선거로 뽑았고, 매년 국가지도자를 선출하는 공화정은 당연히 실력주의 원칙이었다.

재정시대에는 혈연을 후계자로 삼는 방식이 도입됐지만, 이런 경우에도 핏줄이라는 이유만으로 정당성을 확보한 것이 아니라 실력으로 시민들에게 인정받아야 했다. 실력주의는 개인 차원이 아니라 국가 간의 분업 차원으로 확대됐다. 로마제국 내의 각 권역은 강점을 가진 분야를 특화해 국제분업구조에 참여했다. 시칠리아와 이집트는 밀을, 로마는 올리브와 포도를 생산했고, 그리스는 무역과 교육을, 갈리아와 게르만은 기병을 공급하는 형태다. 로마제국에 편입된 민족과 국가들에 적용된 '시장원리에 기반한 실력주의'는 개인은 물론 민족차원에서도 상호이익을 바탕으로 공존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368쪽 1만6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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