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름다운 연꽃들이 경주 서악동을 들어서는 손님들을 반갑게 맞는다. 지난 봄 진달래와 연산홍·작약을 대신해 나선 것이다. 조만간 한낮의 폭염이 누그러지면 코스모스가, 본격적인 가을철에는 꽃무릇과 구절초가 손님맞이에 나설 예정이다.
경북남부문화재돌봄사업단은 최근 서악동고분군과 선도산고분군 주변 문화재 관람환경 개선사업이 마무리 됨에 따라 관광객들이 마을의 변화 과정을 알 수 있도록 안내판을 설치했다. 2010년 사업 시작 이후 무려 9년만이다.
대부분 시니어로 구성된 문화재돌봄이들은 고분군 주변의 나무와 잡목 제거, 석탑 주변 모래 복토, 꽃길 가꾸기, 마을지붕 개선, 담장 낮추기, 돌담쌓기에서부터 마을길과 주차장 정비까지 도맡았다. 단순히 돈을 나눠주기 위한 복지형 노인 일자리 사업이 아니라, 우리의 문화재를 지키고 가꾸는 주역으로 시니어가 부상한 셈이다.
▶ 재난으로부터 문화재를 지키는 선봉장= 2010년 경상북도를 비롯한 5개 시·도에서 시범 실시한 문화재돌봄사업은 2011년 8개 시·도로, 2012년 11개 시·도로 확대된 이후 2013년부터 전국 17개 시·도 모두에서 23개 사업단이 활동하고 있다. 그동안 예산은 19억원에서 250억원으로 증가했고, 800여 개의 일자리가 창출되었다.
시니어 문화재돌봄사업단의 역할은 2016년 9월 12일 경주지진(강도 5.8) 때 빛을 발했다. 우리나라 문화재의 보고(寶庫) 경주에 재난이 발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전국의 15개 사업단 문화재 기능자들이 경주로 집결했다. 100여 곳 문화재에 대한 긴급 모니터링을 실시했고, 곧바로 담장 지붕기와 및 지붕 마루기와 등에 대한 응급조치 및 긴급복구를 마쳤다. 경주고도보존육성지구 내 피해대상 240 가구 중 복구가 불가능하거나 벽체가 파손된 곳을 제외한 122가구를 선정해 8주에 걸쳐 마무리 작업을 했다. 이 때 투입된 문화재돌봄이의 연인원은 무려 1천500여 명에 달한다.
2017년 포항지진 때는 더욱 신속했다. 지진발생 4시간만에 긴급 모니터링팀을 투입했다. 문화재 87곳에 대한 현황 파악을 통해 유관기관의 후속조치 관련 기본 정보를 제공했다. 재해로부터 우리 문화재를 지키는 손발 노릇을 톡톡히 한 것이다. 문화재돌봄사업단 관계자는 "포항지진 다음날 부터 피해복구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기 위해 긴급보수팀을 구성, 경미한 수리 작업과 함께 여진에 따른 추가 피해 방지 작업을 휴일도 반납한 채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 단순노무 'NO', 우리는 '준' 전문가= 사실 문화재를 다루는 일은 간단치 않다. 때문에 10년 전 문화재돌봄사업을 처음 시작할 때, 지자체 공무원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문화재 주변 청소 등 단순노무 작업 이외에 뭘 할 수 있겠느냐"는 반응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보는 눈이 달라졌다. 문화재 담당 공무원은 수시로 바뀌는 반면, 문화재돌봄이들은 경륜을 더해간 것이다.
2015년 (사)한국문화재돌봄협회(회장 진병길 신라문화원장)에서 직무교육에 본격 나서면서 상황은 더욱 급변하기 시작했다. 문화재 관련 미장·번와·소목·조경·모니터링·일상관리 등 각 교육과정마다 초·중급 과정이 개설되고, 올해 7월까지 3천184명의 수료생을 배출했다. 더욱이 명실상부한 문화재 관련 전문인이라고 할 수 있는 문화재수리기능사를 2016년 43명에 이어, 2017년 64명, 2018년 68명, 올해(7월까지) 96명을 배출했다. 이제 지자체 문화재 담당 공무원들로서는 문화재 관리·보수 분야의 전문성을 갖춘 문화재돌봄이의 도움이 더욱 더 절실해졌다.
진병길 (사)한국문화재돌봄협회장은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문화재 분야 특성상 시니어들을 전문가로 육성한다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면서 "하지만 지속적인 직무 역량 강화와 전문성 재고를 통해 관련 자격증을 취득하게 함으로써 시니어 '준' 전문가로 적극 양성하고, 보존 대상 문화재를 확대해 나간다면 이를 통한 시니어 일자리 창출과 우리 문화재 보존이라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키워드> 서악마을은?= 경주 서악동에 위치한 마을. 문희·보희의 꿈이야기와 박혁거세 어머니인 성모신앙 전설이 전해지고 있는 곳이다. 특히 사액서원인 서악서원에서는 매년 4월부터 10월까지 매주 토요일 오후 7시 고택음악회가 인기리에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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