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8조원과 20만 혁신 인재

정인열 논설위원
정인열 논설위원

올 들어 경북 영주에서 호미를 만드는 60대의 석노기 장인(匠人)이 언론에 등장, 화제를 모았다. 쇠 두드려 만들기 외길 인생의 보람인지 그의 혼(魂)이 깃든 호미가 지난해 세계 최대 온라인 판매망인 미국의 아마존을 통해 지구촌 사람들에게 호평을 받고 주문이 잇따랐던 덕분이다.

그러나 이전까지는 누구도 크게 주목하지 않았던 호미였다. 그의 '영주대장간' 역시 지난 2017년 '향토 뿌리기업'과 '경상북도 산업유산'에 지정되고, 지난해 그 역시 '경상북도 최고장인'에 선정되는 영광도 얻었지만 그를 이을 사람은 없었다.

지난 52년 동안 이어온 호미 만드는 일을 어느 누가 감히 물려받을 생각이나 했을까. 겨우 한 젊은이가 기술을 배우겠다고 나타났다가 사정이 여의치 않아 그만둔 안타까운 사연도 들렸고 뒷받침이 없으면 아마 대(代)는 끊어질 터이다.

기술을 잇는 장인 육성은 옛날에도 난제였다. 물론 사정은 지금과 달랐다. 조선 선조 시절 경북 청도의 도공(刀工)으로 '입을 다물 수 없을 정도로 신기한 기술을 지녔고, 특히 철의 품질을 구분하는 데에는 마치 신과도 같았다'던 저재(抯才)와 아들에 얽힌 사연이 그렇다. 일제 때 다카하시 도루가 남긴 기록을 보자. '임란 때 일본군 병사가 그 장인의 제품을 보고 대단히 칭찬했다…저재가 죽고 나서 그의 아들이 가업을 이었다…그는 관아의 가혹한 상납 재촉을 견뎌내지 못했다…저재의 아들은 끝내 자신의 오른손을 잘라서 겨우 파산을 면했다.'

시대가 바뀌고, 우리 사회 역시 기술을 인정하고 장인을 받들기도 했다. 과거와 달리 직업의 귀천도 옅어졌고, 상납 요구도 사라졌다. 그렇지만 특정 직업에 젊은이와 부모가 목을 매는 모습은 여전하다. 어쩌면 더 심한지도 모를 일이다. 기술 계통 기피나 오직 공무원의 길을 바라는 현상은 좋은 사례다.

한·일 경제 전쟁을 맞아 정부가 연일 투자를 강조하고 뭇 정책을 내놓고 전쟁 승리를 다짐하고 있다. 20일 문재인 대통령이 앞으로 7년간 100대 핵심 전략 품목을 골라 8조원 이상을 투자한다고 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21일 2023년까지 20만 명 혁신 인재 양성을 약속했다. 정부 외침처럼 돈을 넣고, 사람도 키운다니 앞의 두 사례 같은 일은 역사 속의 일로만 기록되리라 믿어본다.

정인열 논설위원 oxe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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