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메이지유신 151주년이다. 1945년까지의 77년간은 침략전쟁으로 일관했고, 그 후 현재까지 74년간은 평화로웠다. 근대 일본은 전쟁과 평화의 시대가 반반이다. 군대 보유와 교전권을 금지하는 현행 헌법 9조는 일본을 평화 국가로 만들었다.
그런데 다시 전쟁 국가로 되돌아가려는 움직임이 있다. 헌법 9조를 개정해 군대를 보유하여 일본을 전쟁 가능 국가로 만들려는 아베 총리의 헌법 개정론이 그것이다.
아베가 이끄는 자민당과 공명당의 연립정권은 2014년과 2017년 중의원 선거에서 개헌선인 3분의 2 이상의 의석을 확보했다. 연립정권은 2016년의 참의원 선거에서도 3분의 2를 넘겼다. 참의원 선거 직후 아베는 "중의원도, 참의원도 3분의 2를 넘겼다. 이제 헌법 개정이다"고 외쳤다. 그럼에도 아베는 왜 헌법 개정을 못 했을까. 일본의 헌법 개정 절차 때문이다. 국회 발의 후 국민투표를 거치는 것은 한국과 같으나, 국민투표 방식이 다르다. 한국은 개정 조항을 일괄하여 한 번 투표한다. 반대 조항이 있어도 찬성표를 던지는 경우가 발생한다. 일본은 개정 조항별로 찬반을 표한다. 개정 조항이 10개이면 투표용지도 10장이다. 번거로움을 약간 줄이는 방법으로 국회에서 합의하여 관련 조항들을 묶어 항목별로 투표할 수 있다. 자민당은 9조의 자위대 명기, 긴급사태 관련, 교육 무상화 관련, 참의원 선거구 조정 등 4개 항목을 예상하고 있다.
문제는 여론조사를 보면 3개 항목에 대해서는 찬성률이 높으나 9조 개정에는 찬반이 팽팽하다. 국민투표에서 헌법 개정의 핵심인 9조 개정은 통과 가능성이 낮다. 아베가 밀어붙이지 못한 이유이다. 9조 개정에 실패하면 다시 헌법 개정을 시도하기까지는 요원한 세월이 필요하다. 수출규제 조치가 취해진 지난 7월의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은 8석이 줄었다. 개헌에 찬성하는 무소속 의원을 합쳐도 참의원에서 개헌 세력은 3분의 2에 못 미친다.(최근 일부 야당의 동조 움직임이 있다). 수출규제로 한국 때리기를 하면서까지 심혈을 기울였던 아베에게 지난 7월의 참의원 선거는 실패였다.
아베는 왜 헌법 개정에 집착할까. 그는 2006년 '아름다운 일본'을 슬로건으로 52세의 최연소 총리가 되었으나, 석연찮은 이유로 1년 만에 사임했다. 2012년에는 '강한 일본'을 내걸고 두 번째 총리에 취임했다. 둘을 합치면 '아름다운 강한 일본'이 그의 정치적 목표이다. 지향점은 2차세계대전 이전의 대일본제국이다. 침략전쟁으로 국가 '위신'을 높여가던 강한 일본의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던 것이다.
이런 그의 정치적 지향을 뒷받침하는 것이 '일본회의'다. 일본회의는 1960년대 반미와 천황제 폐지를 주창하는 좌익 학생운동에 대항하기 위해 대일본제국헌법 체제로의 회귀를 주장하는 신도(神道) 계열의 우익 학생운동의 연합체가 그 모태다. 그때의 우익 학생 지도자들이 지금의 일본회의를 지도하고 있다. 그들은 태평양전쟁 시기 대동아공영권을 기치로 아시아를 침략하던 그때를 일본 최고의 순간이라 한다.
그 기저에는 경기침체, 노령화, 동일본 대지진 등으로 사회적 활력이 없어지고, 한국과 중국의 추격으로 존재감이 저하하는 데 대한 불안이 있다.
이러한 불안이 침략전쟁 시대의 개인의 궁핍은 망각하고 펄럭이던 일장기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고 있다. 이탈리아와 독일은 2차대전 이전의 국가 상징을 모두 폐기했다. 일본은 천황제, 일장기, 욱일기를 여전히 국가 상징으로 사용한다. 일본이 과거 군국주의의 포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배경이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이 종료됐다. 한일 간의 군사협력의 상징이 사라졌다. 이를 핑계로 아베는 안보 위기론을 부추기며 헌법 개정에 박차를 가할 것이나, 쉽지 않다. 일본에게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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