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운 최제우(1824~1864)는 경주 출신으로 동학을 창시했던 인물이었다. 조선 사회의 부조리와 부정부패로 인해 백성들의 생활이 도탄에 빠진 것을 목격한 최제우는 비참한 현실을 극복하고자 경주로 돌아와 용담정(龍潭亭)에서 다양한 학문과 사상을 절차탁마하고 득도를 위한 명상과 수양을 이어나갔다. 결국 최제우는 1860년 5월 25일 무아지경 속에서 한울님의 말씀을 전해 듣고 동학을 창도하기에 이르렀다.
최제우는 서학에 대해, 개인의 구원만을 빌며 부모 형제의 제사를 지내려 하지 않고 서양 세력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종교라고 비판하였다. 또한 최제우는 시천주(侍天主) 사상을 제시하였는데, 사람은 신분고하·남녀노소·빈부격차를 막론하고 누구나 마음속에 한울님을 모신다고 주장하며 평등사상을 내세웠다.
최제우는 인류 역사를 선천(先天)과 후천(後天)으로 구분하였는데, 조선 말기인 현재를 '선천'으로 규정하여 곧 종말할 것이고 동학이 등장한 지금을 '후천'으로 여겨 새로운 희망의 시대가 비로소 개벽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끝으로 최제우는 각자가 동학에 귀의하여 수양을 철저히 실천하면 모두가 '지상신선'(地上神仙)과 '지상군자'(地上君子)가 되어 지상천국을 건설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조선의 지배층은 양반중심사회를 부정한 동학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이를 탄압하고자 최제우를 체포하여 '혹세무민'(惑世誣民)이라는 이유로 1864년 4월 15일 대구 관덕당에서 참형하였다. 대구에는 달성공원에 우뚝 솟은 최제우 동상, 현대백화점 앞에 세워진 동학교조 수운 최제우 순도비, 종로초등학교 안에 자리 잡은 최제우 나무를 통해 최제우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최제우의 동학은 근대화의 척도인 평등사상을 내포하였고, '개 같은 왜적놈'이라는 표현에서 훗날 2차 동학농민운동에 영향을 끼쳤으며, 3대 교주 손병희에 의해 천도교로 변경한 후에 천도구국단을 결성하고 3·1운동과 6·10만세운동을 추진하는 데 사상적 토대를 마련하였다.
영남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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