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신간 중에서 한눈에 호기심을 잡아끄는 제목을 발견했다. '20 vs 80의 사회'란 제목의 책에는 '상위 20%는 어떻게 불평등을 유지하는가'라는 부제가 붙어있었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에서 불평등을 연구하고 있는 리처드 리브스는 이 책에서 불평등 문제의 분석 범위를 좀 더 넓혔다. 2011년 9월 미국 월가에서 시작된 점령하라 시위가 촉발한 '1대 99'의 구도가 아니라, 능력 본위 사회에서 경쟁의 이름으로 포장된 특권을 누리고 사는 20% 중·상류층의 기득권 강화에서 기인한다고 본 것이다. 그는 특권의 수혜를 당연한 듯 누리는 중·상류층의 교육과 양육 과정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사실 새삼스러운 분석은 아니다. 국경을 막론하고 의사 집안에서 의사 나고, 교사 집안에서 교사 나는 경우가 많다. 평소 보고 배운 생활 문화, 언어 습관, 태도 등 양육·교육 환경이 인생의 상당 부분을 결정하는 탓이다. 여기에다 비슷한 수준에서 배우자를 선택하는 경향까지 감안해야 한다. 그는 이것들을 따로 보면 사소해 보이는 많은 '작은 선택'(미시적 선호)들이 누적돼 생기는 결과로 풀이했다.
그는 여기에다 좀 더 비판적인 잣대를 들이댔다. 점점 더 벌어지고 있는 부의 격차가 과연 불공정한 행위없이 가능했던가 하는 의문을 던진 것이다. 특히 그는 '부모가 자녀에게 어디까지 이득을 제공해도 좋은가'라는 날카로운 질문으로 파고들었다.
저자는 20대 80이라는 경제적 부를 중심으로 갈라진 현대 신계급사회에서 중·상류층 부모들은 자신의 자녀들에게만 득이 되도록 은연중에 시장을 조작하고 있다며 '기회 사재기'(opportunity holding)를 지적했다. 그는 "나조차 예외가 아니다"며 특히 ▷부동산 ▷입시 ▷취업 인턴 3가지를 기회 사재기의 대표적 요소로 꼽았다.
남의 나라 사정이지만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우리나라 역시 점점 심화돼가는 불평등 속, 좁디좁은 '기회'를 두고 이를 차지하는 자와 빼앗긴 자들의 소리없는 전쟁이 치열하다.
게다가 한국의 부모들 역시 자녀를 위해서라면 어떤 투자와 희생도 아끼지 않기로 세계에서 뒤지지 않을 정도다. 소위 도덕적이고 진보적이라는 이들조차 자신의 자녀는 좋은 대학에 입학해야 하고, 전문직을 가져야 하며, 집안 좋은 우수한 인재와 결혼하길 바라는 소망을 내려놓지 못해 전전긍긍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모든 성취가 온전히 부모와 자녀의 온당한 재능과 노력뿐이었을까? 고의든 아니든 각종 인맥과 연줄이라는 보이지 않는 힘의 작용, 그리고 불공정한 카르텔이 만들어낸 도덕적 해이라는 틈새가 작용하지 않았다고 떳떳하게 말할 이들이 얼마나 될까?
이쯤 되면 아마 많은 독자들이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사태를 떠올릴 것이다. 이미 수많은 의혹 제기와 말들이 보태져 실체조차 헷갈리는 지금의 시점에 어설픈 사견 하나를 더 보태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이번 사태가 지금껏 간과되던 '사소한 불평등'을 되돌아보고 바로잡는 시발점이 되길 바란다.
시작부터 불평등한 '기울어진 운동장'에 서고 싶었던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지금 당신과 내가 해야 할 일은 운동장을 기울게 만들고 있는 그 수많은 힘 중 타인을 손가락질하고 있는 스스로도 포함돼 있지 않은가 곰곰이 성찰해 봐야 한다는 점이다.
어느 정도 손해는 감수해야 한다. 긴 책의 끝에 저자가 제시한 몇 가지 해법은 모두 '작은 양보가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그래서, 당신은 내려놓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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