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삼의 웹툰 원작을 드라마화한 tvN '쌉니다 천리마마트'는 드라마로서는 낯설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B급 병맛 코드를 전면에 내세워 한 마디로 황당한 장면들이 연달아 펼쳐진다. 그런데 의외로 이 작품은 꽤 강력한 호응을 얻고 있다. 그 이유는 도대체 뭘까.
◆원작 웹툰의 드라마화, 오랜 시간 걸린 까닭

최근 방영되고 있는 tvN '쌉니다 천리마마트'는 지난 2010~2013년 네이버 웹툰에 연재됐던 원작을 드라마화한 작품이다. 원작은 당시 누적 조회수 11억 뷰라는 엄청난 기록을 세웠다.
사실 2013년에 연재가 끝난 작품이 이제 2019년에 들어서야 드라마화됐다는 건 조금 이례적인 느낌을 준다. 실제로 이 작품은 이미 2013년에 김종학프로덕션이 영상화 판권을 구매해 시트콤으로 만들려 했으나 무산됐다. 최근 네이버가 스튜디오N을 설립해 웹툰의 드라마화를 전격적으로 추진하고 나서면서 '쌉니다 천리마마트'의 드라마화가 성사됐다.
만일 2013년에 이 작품이 드라마화되었다면 어땠을까. 지금처럼 화제에 호응까지 얻어갈 수 있었을까. 그렇지 못했을 것 같다. 지금이 훨씬 더 B급 병맛 코드에 대한 대중적 이해와 지지가 높아진 상황이기 때문이다. 진지함만이 드라마의 미덕처럼 여겨지던 2013년이었다면 이른바 '저세상 유머'를 보여주는 '쌉니다 천리마마트'의 성공을 쉽게 장담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쌉니다 천리마마트'는 시작부터 당혹스러운 B급 유머로 문을 열었다.
대뜸 대마그룹 회장이란 사람이 자사 주력 상품이라며 '털이 나는 광택제'를 소개한다. 그 말도 안되는 상품에 회장 눈치 보며 동조하는 이사진들 사이에서 오로지 한 사람 정복동(김병철 분)만이 반대의사를 내놓고, 회장은 갑자기 이것이 이사들을 시험하기 위한 것이었다며 충언을 한 정복동을 추켜세운다.
그런데 이 상황은 실제로 '털이 나는 광택제'가 출시되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는 소식이 들어오면서 역전된다. 결국 정복동은 이 말도 안 되는 상황 때문에 대마 그룹의 유배지나 다름없는 '천리마 마트' 사장으로 좌천된다.
이런 식이니 병맛을 소재로 하는 웹툰을 잘 모르는 시청자라면 '이게 뭐지'하는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개연성을 찾기 힘들어 허무하고 황당하기 이를 데 없는 세계에 자꾸만 빠져든다. 도대체 무슨 마법을 쓴 것일까.

◆대충해도 잘 된다는 의외의 카타르시스
정복동이 천리마마트로 오면서 하는 일련의 행보들은 더더욱 황당하다. 망하기 일보직전인 마트에 직원들을 더 뽑는 정복동은 가수 지망생, 명퇴자, 전직 깡패 심지어는 빠야족 족장과 부족들까지 모두 정규직으로 채용한다.
게다가 부족한 카트 대신 카트 역할을 빠야족들에게 시키고 고객만족센터에 전직깡패 오인배(강홍석 분)에게 왕이 입던 곤룡포를 입혀 왕좌에 앉게 함으로써 불만을 가진 고객들이 무릎 꿇고 불만 사항을 얘기하게 만들며, 취직을 하지 못하고 죽은 아버지를 취직시켜달라며 온 아이에게 아버지는 물론이고 아이까지 취직시켜 서점 겸 공부방을 만든다.
이 같은 정복동의 행위는 한 마디로 천리마마트를 망하게 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어렵게 대학을 졸업해 시험을 치러 천리마마트에 취직한 점장 문석구(이동휘 분)가 정복동의 이런 선택과 결정에 반대의사를 내놓는 건 그래서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쌉니다 천리마마트'는 이렇게 황당한 결정과 선택들을 하면서도 의외로 잘 되는 천리마마트를 그려낸다. 빠야족들은 광어 해체쇼를 하는 등 놀라운 숨은 재주들을 선보이고, 마트에서 열린 문화행사에서 가수지망생 조민달(김호영 분)의 모두를 놀라게 한 데스메탈 공연은 갑자기 오인배가 무대를 제압(?)하려 하자 조민달의 아들이 올라와 눈물로 호소하는 장면을 연출하면서 성공적으로 끝이 난다. 한 편의 뮤지컬 퍼포먼스라 여기게 만들었던 것.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되는 이들이 정직원이 되고, 그들이 하는 이상한 행위들이 오히려 마트의 매출을 쑥쑥 올리는 결과로 나타나는 과정은 황당하기 그지없다. 그건 우리가 흔히 드라마를 통해 봐왔던 스토리텔링의 개연성이나 현실성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개연성을 파괴하고 기승전결이 아닌 '기승전병(병맛)'으로 끝나는 과정이 주는 의외의 통쾌한 카타르시스가 만들어진다. 그건 한 마디로 말해 '대충 해도 잘 된다'는 상황이 주는 카타르시스다.

◆B급 병맛 코드가 가진 매력의 정체
사회에서 성공하려면 엄청난 노력을 해야 하고 또 치밀한 계획을 짜야 하며 누군가의 정치적 음모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 항상 촉을 세워야 한다. 아마도 우리는 현실에서 이렇게 배웠을 게다. 그리고 그것이 실제 현실의 작동방식이기도 하다.
하지만 과연 우리네 현실은 엄청난 노력을 하면 성공을 보장해줄까. 치밀하게 계획하고 실천해 나가면 성공할 수 있을까. 지금의 청춘들의 현실을 들여다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즉 노력을 해도 애초에 출발선상을 달리 만드는 태생적 한계가 존재하고, 그래서 이른바 '성장의 사다리'가 끊겨 있다는 걸 실감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 누구보다 능력이 갖추고 있어도 정직원이 되지 못해 그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취직이 어려워 창업을 해도 이런 현실은 크게 다르지 않다. 기껏 열심히 해서 가게를 살려놓으면 건물주가 세를 올려 결국 나갈 수밖에 없게 되는 게 우리네 현실이 아닌가.
바로 이 지점에서 B급 병맛 코드의 카타르시스가 만들어진다. 이를테면 저들이 사는 세상이 A급이고 거기에는 그들만의 룰이 존재한다면, 이곳에 사는 스스로를 B급이라 여기는 이들은 그 룰 자체를 비웃는 것으로서 병맛 코드의 카타르시스가 생겨난다.
노력하지 않아도 성공하고, 대충해도 잘 되고, 심지어 망하는 선택을 하는데도 잘 되는 천리마마트는 그래서 그 자체로 불공평한 현실의 아이러니를 담아낸다. 그건 거꾸로 말해 누구는 노력해도 안 되고 열심히 성실하게 해도 안 되지만 누군가는 대충해도 잘 되는 현실세계의 부조리를 드러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쌉니다 천리마마트'는 기존 드라마들 속 리얼리티와의 부조화를 드러내며 처음엔 낯설고 당혹스럽게 다가오지만, 시청자가 차츰 리얼리티를 포기하는 순간부터 기묘한 병맛의 매력을 느끼게 된다. 그것은 마치 A급의 세계에서 늘 개연성의 금과옥조로 여기던 '기승전결'의 구조를 '기승전병'으로 포기하게 만들면서 생겨나는 해방감 같은 것이다.
무엇보다 거기에는 우리네 현실을 병맛으로 풍자하는 속 시원한 웃음이 있다. 제 아무리 노력해도 하늘의 별따기가 된 정직원이 되는 길이나 한번 엇나가면 다시는 기회를 주지 않는 사회, 나아가 외국인 노동자의 차별받는 현실을 꼬집는 날카로운 풍자가 거기에는 어른거린다.
또한 '고객이 왕'이라는 때때로 갑질을 정당화하는 명제를 뒤집어 '직원이 왕'이라고 말하는 대목에서는 자본주의 사회의 돈으로 갈음되는 갑을 관계에 대한 통렬한 비판까지 느껴진다. 이것이 처음에는 '이게 뭐지?' 했다가도, 차츰 낄낄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B급 병맛의 매력이 아닐까.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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