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장삼철 삼건물류 대표·수필가

장삼철 삼건물류 대표, 수필가
장삼철 삼건물류 대표, 수필가

필자는 군 시절 위병소에서 근무를 했다. 위병소에서는 경비업무 외에도 면회객을 안내하고 신청도 접수하는 등 관련 대민업무도 보고 있었다. 전방 교육사단 중에서도 정예 연대였고 드물게도 연대 병력이 한 울타리 안에 있는 부대였기 때문에 주말이면 면회객이 100명 가까이나 되었다. 위병은 군기가 세기로 유명해 고달프기도 했지만 민간인을 만날 수 있는 주말이 있어 근무할 만 했다. 위병소는 토요일이면 축제 분위기가 된다. 면회객이 몰려오기 때문이다.

바리바리 싸 온 부모님은 우리에게도 먹을 것을 나눠 주셨기 때문에 입이 즐거웠고, 여자 구경을 거의 못하는 오지에서 유행의 첨단을 달리는 예쁜 아가씨들을 볼 수 있어서 눈이 호강을 하였다. 면회객은 부모님과 애인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강원도까지는 먼 길이었다. 그럼에도 자식을 향한 무한 사랑과 연인을 향한 뜨거운 연모의 정은 천리 길도 한걸음에 내달리게 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그리운 이와의 상봉하는 모습은 지켜보는 것만으로 가슴이 뭉클했다.

애인을 면회 온 아가씨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공통점이 있다. 나이가 어리다는 점이다. 피면회자도 갓 입대한 신병에게 몰려있다. 그러나 일 년 정도의 세월이 흐르고 상병 계급장을 달 때면 대부분 결별을 한다. 그리고 또 새로 전입해 오는 신병에게는 여전히 여자 친구가 많이 찾아온다. 더러 고참병에게도 애인이 면회를 신청하는데, 긴장감이 많이 떨어진다. 오래된 연인 특유의 권태감마저 느껴질 정도다. 그러면 도대체 졸병시절의 그 많던 애인들은 어디로 갔을까.

군대라는 특수한 공간에 격리된 채 사랑을 잃고 울던, 그 쓰라린 기억을 많은 청춘들이 경험 했을 것이다. 떠나는 사람이야 잡지를 않으니 오히려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었지만 보내는 사람은 매인 몸이라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더 야속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떠나간 사람도 다 사연이 있었으리라. 원래 남녀 간의 사랑이란 인화성이 강한 휘발유와 같아서 불이 붙기는 쉬워도 오래 타기는 어렵다. 실제로 사랑의 유통기한은 2년 정도라고 하지 않던가. 사랑의 콩깍지를 심리학 용어로 '핑크 렌즈'라고 한다는데, 군대가 둘을 갈라놓지 않았더라도 대부분 그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핑크 렌즈 효과가 다했다고 봐야 한다. 그러니 떠나간 이의 변심만 원망할 일도 아닌 것이다.

'누구나 사는 동안에 한번/ 잊지 못할 사람을 만나고/ 잊지 못할 이별도 하지/ 도무지 알 수 없는 한 가지/ 사람을 사랑한다는 그일/ 참 쓸쓸한 일인 것 같아.' 양희은이 부른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란 노래의 일부분이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헤어지는 것이 쓸쓸한 일임에는 틀림없지만 먼 인생 여정으로 보면 젊은 날 한때의 로맨스는 결코 헛된 것이 아니다. 다시는 누군가를 사랑할 수 없을 것만 같지만, 사랑은 또 찾아온다. 망설임 없이 사랑할 일이다. 장삼철 삼건물류 대표·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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