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개로비(開路碑) 단상

정인열 논설위원
정인열 논설위원

'길을 내다!'

대구경북과 경계하고 서로도 이웃인 경남의 밀양시와 창녕군에는 '길을 연' 사연을 기념한 비석이 하나씩 있다. 밀양시 청도면 구기리와 창녕군 부곡면 노리마을에 있는 이른바 '개로비'(開路碑)이다. 비에 적힌 이야기 주인공은 서로 다르지만 마을 주민들을 이롭게 한 길을 낸 사실은 같다.

밀양시 청도면 구기리 개로비는 1961년 동네 주민 이택언(李宅彦)이 마을 진입도로 문제로 통행에 어려움이 있자 약 100평의 논을 기꺼이 내놓았고, 이후 1963년 세상을 뜨자 주민들이 고마움을 잊지 않으려 1965년 돈을 모아 1967년 세운 비로 알려지고 있다. 뒷날 '새마을운동'처럼 마을을 위해 주민 스스로 땅을 기부하고 길도 냈음을 기린 셈이다.

그러나 창녕군 부곡면 노리 개로비 주인공은 사람이 아닌 개(犬)여서 흥미롭다. 옛날 부곡의 낙동강변 임해진과 동쪽의 노리 마을 사이에는 험한 산이 있어 사람이 다니기 힘들었다. 그런데 두 마을의 성(性)이 다른 개 두 마리가 오가며 정(情)을 나누자 어느덧 길이 나고 사람도 다녔다. 이에 개의 고마움에 비를 세워 개로비 또는 개비(犬碑)라 불렀다.

이런 개로비 가운데 밀양 청도 사연엔 아쉬움도 든다. 특히 1969년 8월 4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청도군 청도읍 신도리 마을 자활(自活) 경험담 청취를 계기로 새마을운동이 시작됐다는 청도군 주장을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현 밀양시 청도면이 원래 청도군 외서면이었으나 1914년 일제가 밀양군 청도면으로 강제 개편했으니 말이다.

일제는 당시 청도군 외서면의 관할을 바꾸며 명칭에 '청도' 지명을 살려 두었다. 하지만 밀양군 관할이 아닌 청도군 땅이었으면 이택언의 마을길 조성을 위한 땅 희사는 신도리 마을사람의 자활 노력처럼 새마을운동의 전조 사례가 될 만했고, 그랬으면 청도를 새마을운동 발상지로 삼는 자긍심은 더 컸을 터였다.

마침 청도군이 지난 4일 2019년 경북도 새마을운동 시·군종합평가에서 대상 성주군과 함께 최우수상을 받았다. 현 정부의 홀대 속에 새마을운동의 동력을 살리려는 경북도와 두 군의 활동이 반갑다. 특히 청도 개로비를 살핀 박순문 밀양문화원 부원장(변호사)이 청도 개로비 사연의 문헌 기록 뜻을 밝혀 경남북의 '청도'로선 다행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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