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고구마와 붕어빵과 눈사람이 있어도 어디 크리스마스만 하겠어요. 예쁜 크리스마스카드를 보낸 지도, 받은 지도 오래 되었네요. 누구에게나 성탄절에 얽힌 추억은 있겠지요? 산타할아버지의 선물을 기다렸던 기억도 있겠지요? 볼이 어는 줄도 모르는 연인들이 거닐던 어느 거리, 거리를 지날 때 마다 땡땡땡 울리던 자선냄비 종소리와 수많은 캐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어느 하늘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별이 되었을까요?
'내용 없는 아름다움처럼// 가난한 아희에게서 온/ 서양나라에서 온/ 아름다운 크리스마스카드처럼// 어린 양들의 등성이에 반짝이는// 진눈개비처럼'(김종삼, '북치는 소년' 전문) 진눈개비를 따라 하늘로 떠난 시인이 있지요. 눈은 오지 않는데 눈만 퉁퉁 부은 시인의 딸은 몹시 아팠죠. 고독한 향내가 열이 나는 이마를 짚어 주었어요. 차가운 시래기국을 벌컥벌컥 마시던 먼 친척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장례식장 조화가 몇 개인지 세어 봐요. 조화하나의 추억과 조화하나의 인연과 조화하나의 시간들, 먼저 도착한 조화가 조문객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눈은 오지 않고 눈만 멀뚱멀뚱 하구요.
'가난한 아희'를 위한 자선냄비는 1891년 성탄절을 앞두고 미국 구세군 사관이었던 조세프 맥피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해요. 구세군의 냄비도 처음엔 솥 모양이었다가 냄비 모양이 되고, 뚜껑이 생기기도 하며 세월에 따라 계속 변하게 되었죠.
지난해 성탄절날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박노해의 '그 겨울의 시' 일부를 올렸어요. '문풍지 우는 겨울밤이면/ 할머니는 이불 속에서/ 혼자말로 중얼거리시네// 오늘 밤 장터의 거지들은 괜찮을랑가/ 뒷산에 노루 토끼들은 굶어 죽지 않을랑가// 아, 나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낭송을 들으며 잠이 들곤 했었네.'
춥고 힘든 가난에도 불구하고 성탄절은 설레임의 연속이에요. 저물어 가는 한 해의 충만함, 이즈음의 충만은 소멸해 가는 것의 위로에서 오는 것 같아요. 펄펄 내리는 함박눈을 기다리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캐럴을 들으면 없는 추억도 되살아나죠. 소소한 약속과 사소한 선물도 기다려요. 아, 사랑하는 사람들(아이/부모님/ 친구/이웃)이 함께 꺼내 볼 수 있도록, 기다림으로 목이 더 늘어난 양말 속에 새로운 추억 하나 넣어 보면 어떨까요?
연인이든 가족이든, 사랑이라는 단어가 감당할 수 있는 모든 수식어를 동원해서 사랑을 고백할 수 있는 성탄절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모쪼록 글이 되기를 바라며 써 내려갔던 저의 '춘추'를 읽느라 수고로우셨던 독자들께 감사드리며, 매일춘추 안에서 한 해를 마무리 할 수 있어 매일매일 행복하였어요. 임창아 시인,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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