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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낙인?…"사투리도 못 쓸 판" 대구 출향민 설움

"혹시 신천지 아니냐" 질문 받아…식당 이용·이사 거부 당하기도
"고향 방문도 못하는데" 하소연

코로나 확진자가 다녀가 문 닫은 대구 월성동 한 음식점에는 침울한 자영업자를 응원하는 메시지 행렬이 이어졌다. 매일신문DB
코로나 확진자가 다녀가 문 닫은 대구 월성동 한 음식점에는 침울한 자영업자를 응원하는 메시지 행렬이 이어졌다. 매일신문DB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가 대구를 중심으로 확산하면서 타지에 사는 대구 출신들이 때 아닌 설움을 겪고 있다.

대구가 코로나19를 전국으로 전파한 곳이라는 악의 섞인 비난을 들으면서도 상처를 쉽게 드러낼 수 없고, 일상에서 위축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서울에 파견 근무 중인 회사원 홍모(35) 씨는 얼마 전 단골 호프집에 들어가면서 평소와 다른 사장의 태도를 느낄 수 있었다. 일행이 대구 출신임을 아는 사장이 '대구에 다녀온 지 한 참 지났다'는 말을 듣고서야 출입을 허락한 것이다.

홍 씨는 "요즘은 어디를 가나 대구 사투리를 쓰면 안 되는 분위기다. 고향을 밝히면 다들 코로나19를 떠올린다"며 "대구가 고향이라는 이유만으로 죄인이 된 기분이 든다"고 하소연했다.

손녀를 돌보기 위해 딸이 있는 수원에 머무는 이모(57) 씨 역시 얼마 전 어린이집에서 대구 사람이라는 이유로 주눅이 든 경험을 했다. 아이를 데리러 갔더니 어린이집 원장이 조심스럽게 '대구에는 언제 갔었는지', '혹시 신천지는 아닌지'를 물어왔던 것.

이 씨는 "선생님과 학부모들에게 가까이 가는 것도 미안하다"며 "대구를 방문했다가 감염된 사람이 많다 보니 그 심정이 이해는 된다"고 했다.

일상에서도 대구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불편을 겪는 경우가 많아졌다.

남편 직장 때문에 서울에 사는 권모(58) 씨는 조만간 대구로 이사해야 하지만 서울에서 대구로 가겠다는 이삿짐업체가 없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도착지가 대구라고 하면 이야기를 더 듣지도 않고 사양해서다.

권 씨는 "문의하는 곳마다 '죄송하지만 지금 대구는 가기 무섭다'고 거절한다. 비용을 더 추가해서라도 대구 업체를 이곳으로 부르는 방법 밖에 없다"며 "집 내부를 동영상이나 사진으로 찍어 업체로 보내 견적을 내야 해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다"고 했다.

직장 동료나 온라인에서 대구를 향한 근거 없고 악의 섞인 비난에도 참을 수밖에 없어 홀로 속 썩이는 경우도 적잖다.

서울의 한 대기업에서 근무하는 노모(28) 씨는 "같은 팀원들이 날마다 '역시 대구라 확진자가 많다', '대구는 봉쇄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쉽게 한다"며 "가족이 걱정돼도 내려가지 못 하는 상황도 서러운데 고향이 한 순간에 혐오지역이 됐다"고 속상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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