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통합당의 ‘네 탓’

미래통합당 심재철 대표권한대행 등 의원들이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해단식에서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래통합당 심재철 대표권한대행 등 의원들이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해단식에서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경훈 논설위원
정경훈 논설위원

카스트로 정권 전복을 위해 쿠바인 망명자 1천500명을 쿠바 피그만(灣)에 침투시킨 미국 케네디 행정부의 '피그만 작전'(1961년 4월 17~19일)은 처참하게 실패했다. 예상했던 반(反)카스트로 민중 봉기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정보 누출로 침공군 100여 명이 죽고 1천200여 명이 포로가 됐다.

침공 실패 이틀 후인 21일 케네디는 기자회견에서 '작전'을 시인했다. 이에 한 기자가 왜 침공 실패 후 국무부는 말문을 닫고 있었느냐고 묻자 케네디는 이렇게 답변했다. "승리에는 아버지가 100명이나 되지만 패배는 고아일 뿐이라는 옛말이 있습니다."(There's an old saying that victory has hundred fathers but defeat is an orphan) 그러나 케네디는 이런 말로 정부의 침묵을 변명하지 않았다. "추가적인 발표나 구체적 논의를 한다 해서 책임을 면할 수 없습니다. 내가 이 정부의 최종 책임자이기 때문입니다"라며 모든 것이 자신의 책임임을 인정했다.

'승리=아버지 100명, 패배=고아'는 그 후 정치학 사전에 등재될 만큼 유명해졌는데 재미있는 것은 이게 케네디가 만든 말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1951년 독일 장군 에르빈 롬멜을 영화화한 '사막의 여우'에도 이 말이 나온다. 영화 속에서 독일 장군 게르트 폰 룬드슈테트는 롬멜(제임스 메이슨 분)에게 "꼭 기억하라"며 그렇게 말한다.

하지만 이것도 원조는 아니다. 언어학자 윌리엄 사피어에 따르면 '진짜 원조'는 무솔리니의 사위이자 외무장관이었던 치아노의 1942년 일기에 그 말이 있다고 한다. '잘되면 내 탓, 못되면 네 탓'은 동서양에 공통인 모양이다.

21대 총선에서 통합당이 참패한 원인을 놓고 온갖 소리가 난무하고 있다. 황교안 대표 사퇴 후 당내에서도 마찬가지다. 케네디의 말과 반대로 패배에 '100명의 아버지'가 나타난 꼴이다. 그런데 그 아버지는 '친아버지'가 아니다. '네 탓'만 있거나 '내 탓'인 척하지만 실제로는 '네 탓'인 말들만 난무한다. 차명진 의원에 대한 '막말 탓'도 마찬가지다. 여의도연구원이 그 막말 때문에 수도권 20~30곳의 당락이 바뀌었다고 했다는데 어찌 참패가 '막말' 때문만이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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