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확철 아버지는 나에게 수퍼맨이었다. 소규모 다락논과 밭을 작농하는 농부였던 아버지는 수확철이되면 달빛 아래에서 어머니와 함께 벼베기를 하셨다. 어린시절 드넓어보였던 논에 심겨진 벼는 수퍼맨이 다녀갔는지 하루 밤사이에 모두 베어져 있곤 했다. 이때 나는 아버지가 수퍼맨일거라고 생각했었다.
사실 아버지는 어머니와 결혼 전에는 대한민국의 수퍼맨이셨다. 6·25 전상군경 7급인 아버지는 누구보다 희생 정신이 투철하셨던 만큼 그때 그 시절 전장을 누비던 기억이 오랫동안 남아 있으셨던 분이었다. 그렇다보니 아버지는 전쟁 당시 만들어졌던 '전선야곡'을 자주 부르곤하셨다. "가랑잎이 휘날리는 전선의 달밤 소리없이 내리는 이슬도 차가운데..." 아버지의 흥얼거리는 노랫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한없이 수퍼맨 같던 아버지는 사실 힘든 일을 하시거나 무거운 물건을 들게 되면 '끙, 끙'데며 힘들어 하시기도 했다. 1952년 6·25 전쟁 참전 중 왼쪽 다리에 총알이 박히는 부상을 당하셨고, 이 후 제대로된 치료를 받지 못해 고통을 안고 사셨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센 우리 아버지는 4남매를 키우셨다. 아버지는 정말 부지런하고 책임감 강하고 우직하신 분이다.
이런 나의 수퍼맨이 최근 하늘나라로 떠났다. 아버지는 성주의 한 요양병원에서 생활해 오셨는데, 지난해까지만해도 어머니와 함께 계셔서 식사를 잘하시곤 하셨다. 그런데 어머니가 먼저 떠나신 뒤로는 입맛이 없으신지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시고 그 좋아하시던 고기도 잘 드시지 않으셔서 기력이 쇠해지셨다. 전세계적으로 코로나19가 확산하는데다 대구에서 많은 확진자가 나오자 아버지에게 병문안까지 못가게 되는 상황이 벌어져 석 달정도 면회를 가지 못하기도 했다. 면회조차 되지 않는 상황에서 아버지는 갑작스럽게 하늘나라로 가셨고, 임종도 지켜보지 못해 너무 죄송스럽다.
부디 어머니와 함께 하늘나라에서 만나셔서 자식걱정 하지 마시고 재미있게 계셨으면 좋겠다. 아들 이재진(미주병원 행정관리 이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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