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고 푸른 저 남산 / 蒼翠終南岳(창취종남악)
우주 사이에 우뚝하게 섰네 / 崔嵬宇宙間(최외우주간)
거기 올라가서 굽어보니 / 登臨聊俯瞰(등림요부감)
한강도 실개천처럼 졸졸 / 江漢細潺湲(강한세잔원)
"묏버들 가려 꺾어 보내노라 님의 손대/ 자시는 창밖에 심거 두고 보소서/ 밤비에 새잎 곧 나거든 날인가도 여기소서" 다 알다시피 조선시대 홍원 출신의 기생 홍랑(洪娘)의 시조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님이 바로 그녀와의 애절한 사랑으로 유명한 고죽(孤竹) 최경창(崔慶昌)이다.
위의 시는 고죽이 불과 아홉 살 때 남산에 올라가서 서울을 굽어보며 지었다는 시다. 남산에 올라가서 바라보면 해발 632m의 관악산, 해발 836m의 북한산, 해발 740m의 도봉산, 해발 638m의 수락산 등 훨씬 더 높고 수려한 산들이 모두 다 시야에 들어온다.
도성에서 남산을 바라보면 남산도 낮은 것은 물론 아니지만, 고작 해발 262m에 불과한 남산이 '우주 사이에 우뚝 서있다'니? 머리에 소똥도 벗겨지지 않은 꼬맹이 시인의 수사적 과장이 어지간하다. 자기가 서 있는 남산이, 아니 남산 위에 서 있는 자기 자신이 우주의 중심이기 때문일 게다. 우주의 중심에서 바라보니 그 장대하던 한강조차도 고작 실개천에 불과하다. "만국의 서울들이 개미둑에 불과하고/ 천가의 호걸들이 초파리로 보이구나(萬國都城如蟻垤/ 千家豪傑若醯鷄)"라고 일갈했던 서산대사 휴정의 시와 다를 바가 없다.
"성암산 꼭대기에서 보니/ 경산이 콩알만 하다./ 남매지 못도/ 눈물방울만 하다./ 장난감 기차가 꼼틀꼼틀 지나간다./ 개미 자동차가 기어간다./ 빌딩들이 귀엽다./ 내가 대장이다./ 모두 내 부하다." 이제는 어른이 되었겠지만 박언극이라는 어린이가 경산초등학교 4학년 때 지었다는 동시 '성암산에서'다.
"으하하!/ 네가/ 그 으리으리하던/ 청와대였니?// 으하하!/ 아니 네가 정말/ 그 콧대 높던/ 63빌딩 맞아?" 다 큰 어른이 쓴 되다 만 동시 '산 위에서 서울 구경'이다.
이 세상 잘 난 사람들아. 저 높은 산에 올라가서 그대들이 하는 일을 한번 찬찬히 굽어 봐라. 그 무슨 대단한 일을 하는 줄 알고 어깨에 힘을 주고 으스대지만, 알고 보면 별 것 아니다. 이 세상 지치고 기죽은 사람들아. 높은 곳에 올라가 그 잘난 세상을 한번 굽어 봐라. 그대가 세계의 중심이고, 그대가 바로 대장이다. 그 잘난 사람들 모두가 그대의 부하들에 불과하다.
이종문 시조시인, 계명대 한문교육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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