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나의 예술, 나의 삶]한국화가 남학호

한국화가 남학호가 그의 화실에서 트레이드 마크가 된 조약돌 연작
한국화가 남학호가 그의 화실에서 트레이드 마크가 된 조약돌 연작 '석심' 작을 그리고 있다.
남학호 작
남학호 작 '석심'

"삶의 어려움은 의지로 극복할 수 있듯, 하려는 일 또한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자연을 마주하면서 우공이 산을 옮기 듯, 아무리 힘이 들어도 나는 자연을 화폭 속으로 옮겨 놓으려고 애쓰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죠. 나의 첫 번째 스승은 바로 자연입니다."

우공이산(愚公移山)의 공력을 들여 올해로 화업 40년을 달려온 한국화가 남학호(61)의 예술론이다. 노력과 재능이 합쳐 시너지효과를 내면 당연히 작품은 빛을 발하기 마련인 법. 한국화법에 뿌리를 두고 서양화법의 궤도를 넘나들고 있는 그가 30년째 몰두하고 있는 조약돌 그림은 이제 그의 트레이마크가 됐다.

대구시 수성구 수성2가 대로변에 자리한 건물 2층의 '근석당'(近石堂·80㎡)은 '돌을 가까이하는 집'으로 작가가 24년째 둥지를 틀고 어떤 일이 있어도 '하루 8시간 이상 그림 그리기'를 철칙으로 삼아온 화실이다.

작가는 1978년 계명대 전국학생미술대회 동양화 부문 대상을 받으면서 4년간 대학 장학증서를 부상으로 얻었지만 가정 형편상 입학을 못했다. 하지만 고교를 졸업한 이듬해인 1979년 경상북도미술대전에서 100호 크기의 작품 '낙선재의 후원'이란 작품으로 입선을 하면서 본격적인 화가의 길에 나서게 된다. 이때 그의 나이는 약관 20세로 화업 40년의 시발점이 됐다.

천생 화가를 천직으로 여긴 그는 이후 1997년 만학도로 대구대 미술디자인대학 한국화과에 입학했고 2004년에 동대학원을 졸업, 작가적 재능에 더한 창작의 이론적 동력을 얻게 된다.

작가의 고향은 경북 영덕군 병곡면으로 고향의 자연 환경이 많은 예술인들을 배출한 곳이기도 하다.

"20분 정도 나가면 깊은 산속을 만날 수 있고, 인근 곡창지대인 송천들이 눈을 탁 트이게 하며 더 나가면 검푸른 동해바다와 맞닥뜨리는 고향 풍경은 언제나 제 마음 속에 풍성한 감성을 불러일으키기에 넉넉했습니다."

남학호의 그림과의 인연은 유년시절부터 시작한다. 초교 때 벽화에 그려진 공룡그림에 감명을 받아 어렵사리 구한 그림책을 보며 따라 그리기도 했고, 중·고교 때는 오원 장승업이 몰골법(沒骨法·윤곽선 없이 색채나 수묵을 사용해 형태를 그리는 화법으로 화조나 화훼 및 조충도에 주로 사용)으로 그린 '호치도'에 충격을 받아 당시 시골 고향에서 미술책을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찾아 헤매기도 했다. 그러다가 월전 장우성 선생의 '백두산 전도' 화집을 보고 수묵산수화의 매력에 푹 빠져 들었다. 작가는 이때부터 자연관찰에 관심을 두게 됐고 계곡이나 산 등 자연과 마주할 때마다 그 속살을 어떻게 화폭에 옮겨볼까 하는 생각을 버릇처럼 갖게 됐다.

"10대 후반 때부터 느낀 자연사랑은 지금까지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으며 이후 이런 관찰 버릇은 천석고황(泉石膏肓)이 되어 그림 그리는 데 많은 도움이 됐죠."

남학호는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수묵화를 비롯해 자연의 형상들을 화폭에 옮겼고 전국의 풍광 좋은 산과 들을 찾아 유랑하기도 했다. 그에 따르면 이 시기에는 심지어 꿈에서 조차 좋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 산천을 돌아다녔다고 한다. 즉, 낮에는 몸으로 그림 소재를 찾아 그 풍광에 감동하고 밤에는 꿈에서 그림을 그렸다는 것.

실제로 이 시기 그의 수묵풍경화를 보면 풍경의 단순한 재현이나 형식의 답습에서 벗어나 물상의 이치와 섭리 터득을 최상으로 치는 사의성(寫意性)을 중시한 전통 수묵화의 가치에 충실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심산유곡, 나목, 계절의 변화, 폭포, 계류 등 이 시기 그의 채색 수묵화에 등장하는 오브제들은 그가 말한 자연예찬의 마음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또 다른 화풍으로 조약돌 그림인 '석심'(石心)시리즈의 등장은 1990년 초겨울 매일신문사 매일화랑에서 공식적인 첫 개인전을 하면서 세상에 선을 보였다.

해변 조약돌이 그의 화폭으로 들어오게 된 계기는 어느 날 고향 바닷가에서 조약돌이 보석도 아닌 데 하나 둘 주머니에 넣고 가는 걸 목격하고 있는데 화가 자신의 그림자가 그 조약돌 위에 드리워지는 걸 보고 '아! 조약돌과 내가 인연이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던 중 우연히 책에서 조약돌 예찬에 관한 글을 읽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석심'시리즈를 그리기 시작했다.

남학호의 '석심'은 극사실적 표현에 가깝다. 따라서 보는 이에 따라서는 "사진과 같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이에 대해 작가는 "조약돌의 단순 재현이 아니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는 붓 터치와 마티에르의 사용에 있어서 자신만의 독특한 기법을 사용하기 때문에 아무나 따라 그릴 수가 없다. 기본적으로는 점묘법과 반짝이는 조약돌의 비늘 같은 형상을 여러 번의 중첩을 통해 조약돌 특유의 발색을 드러나게 하는 그의 화법이 완성되기까지 30년 공력이 내재돼 있다.

또 언제부터인가 그의 '석심'시리즈에는 나비가 등장했다. 나비는 짝 잃은 원앙의 애틋한 사랑의 상징이자 행복과 장수, 복을 가져다주는 남학호의 조형언어이다. 조약돌 역시 장수를 의미하고 있다. 그렇다면 돌은 나비를 품고 나비는 돌과 생명을 함께한다는 그의 '석심'시리즈는 불로장생을 염원하는 인간 욕망을 돌과 나비로 형상화한 주술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는 올해 화업 40년을 기념해 수성아트피아 초대 개인전을 지난 7월 말에 열었다.

"돌이켜보면 지난 40년은 진짜 화가가 되기 위한 준비기간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젠 조약돌의 새로운 조형미를 찾고 이와 연관된 선상에서 자연을 캔버스에 담고 싶습니다."

요즘 남학호는 신천을 산책하면서 강물에 어른거리는 도심 아파트의 빛 반사와 물속 사물들이 어울려 빚어내고 있는 이미지들에 관심을 갖고 이것들을 캔버스에 옮길 방법에 대해 고뇌하고 있다. 그의 말마따나 자연에 대한 문리를 알아가는 과정이 화가 남학호가 추구하는 캔버스의 화법인 셈이다.

사진 글 우문기 기자 pody2@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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