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만 유대인을 대량 학살한 핵심 인물 중 한 사람이 15년의 도피 생활 끝에 붙잡혀 재판을 받게 되었다. 살아있는 악마를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은 재판정으로 몰려들었고 37개 국으로 TV 생중계되었다. 그러나 인간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죄를 저지른 전범이 포악한 성정을 가진 괴물일 거라는 사람들의 기대는 산산이 부서졌다. 그는 너무나 평범하고 가정적인 사람이었다. 나치에 의한 유대인 학살, 즉 홀로코스트는 광신도나 반사회적 성격장애자가 아닌 상부의 명령에 순응한 지극히 평범한 사람에 의해 자행되었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다. 1961년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지켜본 정치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이를 '악의 평범성'이라 불렀다.
"전 지시대로 했습니다. 명령대로 따라야 했죠. 그들이 죽는 것과 상관없이 명령을 수행해야 했습니다. 행정적인 절차라는 게 있죠. 그 가운데 일부를 제가 맡은 것뿐입니다." 아르히만의 항변에서도 드러난 악의 평범성이란, 평범한 관료들이 아무 생각 없이 명령에 복종하고 근면하게 직무를 수행하지만 '악'마저 성실히 반복해 무뎌진 윤리관으로 악행을 저지른다는 뜻이다. 악의 평범성의 핵심은 자신이 믿고 따른 명령이 참인지 거짓인지, 정당한 건지 부당한 건지 사고하고 판단할 수 없는 무능력에 있다.
역사적 참극의 책임이 아이히만과 같은 직접적인 가해자 몇몇에게만 있는 건 아니다. 관료들의 악행과 무능력을 그냥 두고 본 동시대 사람들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 왜 유대인들은 저항하지 않았는가? 수용된 유대인은 많았지만, 각 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자기 목숨을 걸고 저항해야 하는 일이었다. 결국 '나만 아니면 돼'라는 생각이 600만 명의 비극을 낳았다. 흥미로운 한 연구에 따르면 '순종적인 사람들이 나쁜 짓도 잘 순종해서 따라 한다'는 것이다. 순종적이고 착한 사람들이면 착하게 살아야 하는데 이 사람들은 누가 시키면 원래 말을 잘 듣기 때문에 시키는 대로 잘 따른다는 것이다.
악의 평범성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결코 깨닫지 못한' 아이히만을 설명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당시의 상황을 '그냥 두고 본'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이기도 하다. 슬프게도 당시 나치즘의 광기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미미했다. 나치처럼 직접적인 살인은 하지 않았지만, 양심의 기능이 정지된 평범한 다수의 방조자와 방관자가 있었기에 홀로코스트가 가능했다. 인간의 악이란 그렇게 멀리 있지 않다.
그래서 교육이 필요하다. 교육이란 모르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교육은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이끄는 힘이다. 교육의 목표는 보다 나은 실천적 판단과 의사결정을 내릴 힘을 기르는 데 있다. 지역교육의 목표가 용을 키워 서울로 올려 보내는 것이 아니라, 비판적 사유와 행동하는 개천의 건강한 시민을 길러낼 때 대구의 미래는 현재보다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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