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현장에서 가장 박수를 받는 이들이 있다. 바로 소방관들이다. 화재 현장의 생생한 목격담에는 화마와 싸운 소방관들의 미담이 실과 바늘처럼 따라다닌다.
하지만, 지난달 21일 안동과 예천에서 발생한 산불 현장에서는 귀가 의심되는 한 목격담이 들렸다. '산불을 끄지 않고 지켜만 봤다'는 소방관들에 대한 얘기였다.
주민들만 하는 얘기가 아니었다. 신임 공무원 영희(가명) 씨도 '코앞까지 번진 산불을 지켜만 보던 소방관들을 직접 봤다'고 했다.
한 주민은 "불 끈다고 옆집 철수도 정신이 없는데, 정작 소방관들이 불은 안 끄고 멀뚱히 불타는 산만 보고 있었다"고 일러바치듯 말했다.
화재 현장에서의 미담 주인공이었던 소방관들이 왜 산불 현장에서는 이처럼 비난을 받을까? 의문을 찾아 취재에 나선 기자는 인력 운영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게 됐다.
이날 주민들이 본 소방관들은 자신들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었다. 산불 발생 시 소방청은 '규정'에 의해 '가옥 및 시설물 등을 보호'를 우선으로 한다. 소방은 직접적인 화재 진화보다 방어선을 구축해 민가 피해를 예방하는 게 주 역할인 것이다.
실제 산불은 산림청 소속 전문 진화대가 직접 투입돼 불을 끈다.
소방 당국에도 직접 물어봤다. 소방 당국 관계자는 "산불은 바람을 타면 삽시간에 번지기 때문에 소방에서는 가옥 및 시설물 피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방어선을 구축한다"며 "소방이 산불 진화에 투입됐다가 민가로 산불이 번질 경우 더 큰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그렇다면 산불 시 각 기관의 역할과 임무에 대한 규정(매일신문 3월 1일 자 9면)이 현시점에서도 효율적일까? 경북 전역과 경남 동부 일부 산림을 책임지는 남부지방산림청이 산불 시 가용할 수 있는 인력은 예방 진화대 271명, 특수 진화대 85명 등 350여 명이 고작이다. 해당 지자체의 공무원 등도 투입이 되지만 전문 진화 인력은 극소수다.
반면, 현재 경북 내 소방 인력은 5천95명이다. 2018년 11월(3천332명)보다 1천763명이 늘어났다. 올해 335명이 더 충원되는 등 매년 증가세다. 이 중 화재 진화 인력은 약 80%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더 많은 진화 인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소방 인력은 규정에 의해 산불 진화에 직접 나서지 않는다.
산불이 나면 호스를 끌고 산을 오르락내리락하는 주민들과 잔불 정리로 녹초가 된 행정 공무원들의 눈에는 소방관들이 '강 건너 불구경'하는 것처럼 보여 다소 못마땅할 수밖에 없다.
규정이 다소 비효율적이라고 지적받는 이유다. 현재 사정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산불 진화 기관의 임무와 역할에 관한 규정은 2017년 시행됐다.
그러나 이후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소방은 국가직으로 전환됐고, 전국 소방 동원령 발동도 가능해졌다. 산불 시 가용할 수 있는 자원이 늘어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규정 때문에 산불에는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조직만 비대해지는 소방'이라는 불명예를 받고 있는 이유 중 하나다.
'개선광정'(改善匡正). 좋은 생각이 있다면 새롭게 고친다는 뜻이다. 조금 더 좋은 방법이 있다면 그 방법으로 개선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규정이 효율적 방안으로 강화돼 산불로 인한 국가와 국민의 재산 피해가 조금이나마 덜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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