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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그럴 수도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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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리 소설가
이나리 소설가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버릇을 가진 친구가 있다. 나는 병원에 의지하는 대신 달리기를 해. 그럴 수도 있지. 요즘엔 뜨개질이 너무 재밌어. 그럴 수도 있지. 요새 살이 너무 많이 쪘어. 그럴 수도 있지.

그는 어떤 일이든 그럴 수도 있지, 라고 나른하게 대꾸했다. 나는 여유롭게 느껴지는 그 대답이 좋았다. 그러다 보니 조금씩 그 말을 따라하기 시작했다. 특히 내가 강의하는 학생들의 난해한 글들을 마주할 때, "그럴 수도 있지"라고 말하는 순간이 꽤 늘어났다.

사실 '그럴 수도 있지'는 내 생활에 평화를 주었다. 나와 다른 상대방의 삶을 깊이 받아들이지 않으니 마음이 편했다. 상대방은 나의 '그럴 수도 있지' 태도를 배려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친구는 최근 유기견 봉사활동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이 얘기를 전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좋은 일 하시네요"라고 말하며 친구를 추켜세우는데, 그런 상황이 너무 불편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 친구가 겪은 위화감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나는 유기견 출신의 늙은 개를 키우면서 비슷한 말을 종종 듣기 때문이다. 길바닥에서 주웠으니 유기견이라고 불리는 게 맞긴 하지만, 처량하게 유기된 상태는 아니었다. 길을 잃은 아주 작은 개였을 뿐.

나는 첫눈에 그 작은 개와 사랑에 빠졌다. 개를 키우기 시작하면서부터 '집사'가 되었다. 반려동물 문화에 호의적인 사람을 만나면 모든 집사가 그러하듯 내 새끼를 자랑하기 위해 멍석을 깐다. 그러나 잡종 유기견을 14년간 키웠다는 말을 전하게 되면 대다수의 반응은 하나였다. "대단하세요."

불쾌하진 않지만 불편하다. 우리는 특별히 좋은 일이나 대단한 일을 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말을 들을 정도로 특별한 일을 한 게 아니라서 듣기 거북해진달까. 봉사활동도, 유기견 보호도 오롯이 나를 위한 일일 뿐이다. 특히 나는 어떤 사명감을 가지고 일부러 잡종 유기견을 골라 키운 것이 아니기 때문에 "좋은 일 하시네요" 같은 말은 잘못 끼워진 퍼즐 조각처럼 위화감이 들곤 한다.

얼마 전, 알고 지내는 수의학과 학생으로부터 "누나, 좋은 일 하시네요"라는 말을 또 들어버리고 말았다. 그 순간, 나는 내 감정을 조목조목 설명하는 대신 '그럴 수도 있지' 태도로 받아들였다.

사실 '그럴 수도 있지'는 얼핏 들으면 이해하고 있다는 표현 같지만, 실상은 이해할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태도가 자칫 사람 간의 이해에 무관심해지는 지경으로 이를까 걱정되기도 한다. 어쩐지 요즘 들어서는 이상한 뉴스나 낯선 사건을 목격하게 되면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이 튀어나올 때도 있기 때문이다. 그 몰이해의 순간이 조금 서글프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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