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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칼럼] ‘별의 순간’… ‘별거 아닌 순간’

이재명 경기지사, 윤석열 전 검찰총장. 연합뉴스
이재명 경기지사, 윤석열 전 검찰총장. 연합뉴스
김교영 편집국 부국장
김교영 편집국 부국장

대구 중앙로에 가면, 식당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환영, 두 분이 국수 한 그릇'. 웬만한 식당에 가면 '1인 1주문'인데…. 가격마저 놀랍다. 잔치국수 한 그릇 2천 원. '좋은 약은 값이 싸다'는 문구도 웃음 짓게 한다. 어르신들이 눈치 보며 메뉴 가격을 살피지 않아도 된다. 주머니 헐렁한 어르신들이 후루룩 허기를 달랜다. 마음이 환해진다.

친구가 휴대전화를 되찾은 사연을 들려줬다. 택시에 두고 내렸다고 한다. 흔하고 뻔한 스토리라고 짐작했다. 얘기가 길어질 듯해서 말을 끊었다. "그래서 기사에게 3만 원을 줬냐, 5만 원을 줬냐?" "아니, 최신형이어서 5만원을 줬는데, 안 받더라." 아! 반전이었다. 귓등으로 듣다가 귀를 쫑긋 세웠다. 친구는 자신의 휴대전화에 전화를 걸었다. 택시 기사가 받았다. 손님이 뒷좌석에 휴대전화가 있다며 건네줬다고 했다. 기사는 친구의 주소를 물었다. 급하지 않으면 지나가는 길에 전해 주겠다고 했다. 3시간 뒤 기사를 만났다. 휴대전화를 돌려받았다. 친구는 기사에게 사례금 5만 원을 꺼내 드렸다. 기사는 사양했다. 친구는 '택시 요금'이라도 하라며 3만 원을 전했다. 기사는 손사래를 쳤다. "손님 태우고 가는 길에 들렀으니 요금은 필요 없어요."

구순(九旬)의 모친이 해 주신 얘기다. 어머니는 보행 보조기를 끌고 산책을 자주 하신다. 다리가 불편하고 숨이 차서 틈틈이 쉬셔야 한다. 당신 혼자 길가에 앉아 있으면 말을 건네는 학생이나 '젊은이'(어머니에게 70대 이하는 모두 젊은이다)가 더러 있단다. "할머니 괜찮으세요?" "집이 어디세요, 모셔다드릴까요?" 소소하지만 이런 소중한 순간들이 세상을 지켜간다. 이름 없는 풀꽃들이 세상을 가꿔 가듯이.

'바보 이반'은 톨스토이가 러시아 민담을 재구성한 작품이다. 바보인 이반이 농부에서 왕이 되기까지의 이야기다. 톨스토이는 '바보 이반'을 통해 귀족을 비판한다. 무위도식하는 귀족이 힘들게 사는 농민을 착취한다고. 또 바보처럼 성실하게 사는 사람들이 훨씬 행복해질 수 있음을 강조한다.

바보 이반은 왕이 된 뒤에도 농사만 짓는다. 월급 받고 편히 살던 신하와 똑똑한 사람들은 불만이다. 바보의 나라에선 살 수 없다며 모두 떠난다. 그곳엔 이반과 같은 바보들만 남는다. 이들은 함께 땀 흘리며 화목하게 지낸다. 이 나라에서 법은 단 하나. '손바닥이 단단하게 굳은 사람들은 식탁에서 음식을 먹을 수가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먹고 남긴 음식 찌꺼기를 먹어야 한다.' 톨스토이는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잘사는 세상을 꿈꿨다.

가진 자는 더 가지려 한다. 약삭빨라야 살아남는다. 남을 밟고 일어서야 한다. 가난은 개인의 탓으로 돌린다. 물질 만능, 무한 경쟁, 약육강식, 각자도생, 세습주의 사회다. 월급을 몽땅 모아도 내 집 마련이 불가능하다. 계층 이동의 사다리는 사라졌다. 청년들은 '영끌' '빚투'로 내몰린다. 아이들의 꿈은 '건물주'가 돼 버렸다. 기득권층은 보수-진보 가리지 않고 능력 만능주의에 빠져 있다.

그래도 사회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세상에는 바보 이반들이 꽤 있다. 이들이 있기에 세상은 무너지지 않는다. 아무리 어둠이 깊어도 아침은 찾아온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정치인들이 달콤한 말을 내뱉는다. 말대로라면 공정과 정의가 차고 넘친다. 대선 주자들은 '별의 순간'을 잡으려 한다. 겪을 만큼 겪고, 속을 만큼 속은 국민은 잘 안다. '별의 순간'은 그들만의 것이고, 국민에겐 '별거 아닌 순간'이 될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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