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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CEO] 박정규 RP(로보프린트) 대표 "안전은 가장 중요한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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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외벽 도색·방수 페인팅…위험한 작업 맡겨만 주세요"
해외 시장 염두 로보프린트→RP 사명 변경
“청년 추락사 아들 잃은 것 같아"

박정규 RP 대표. 채원영 기자
박정규 RP 대표. 채원영 기자

지난 8일 서울 구로구에서 아파트 외벽을 청소하던 20대 청년이 추락해 숨졌다. 추석 연휴를 앞둔 지난 17일 경기 화성시 한 아파트 신축 현장에서는 창틀 미장 작업을 하던 50대가 추락해 사망했다.

산업재해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산재 사망자 882명 중 37.2%가 추락사했다. 2019년에는 추락사 비율이 40.6%에 달했다. 매일 1명이 추락사하는 것과 다름없는 수치다. 지난 7월 유엔 무역개발회의는 195개국 만장일치로 한국을 선진국으로 격상시켰지만, 후진적 산재인 추락사는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대구에 본사, 경북 경산에 공장을 둔 로봇 기반 도색전문기업 RP(로보프린트)의 박정규 대표는 아파트 도색 현장에서 위험하게 일하는 작업자를 보고 '프린트를 벽에 붙여보자'는 사업 아이템을 떠올렸다. 경산 하양 공장에서 박 대표를 만났다.

-최근 한 청년의 안타까운 추락 사고 소식이 있었다. 느낀 점이 많을 것 같은데?

▶20대 아들을 키우는 입장에서 아들을 잃은 듯한 느낌이 든다. 어른들이 조금만 더 신경 썼다면 안타까운 죽음을 막을 수 있었다. 이런 일을 아르바이트생에게 맡기는 것도 문제다. 아파트 외벽 청소는 사람이 하기 위험한 일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 알면서도 매년 이런 사고가 반복된다. 하루빨리 바뀌어야 한다.

-사업 시작 계기가 궁금하다.

▶원래는 현수막 출력업을 했다. 어느 날 한 아파트 입주자점검의 날 현수막을 출력해 현장에 걸어주러 갔는데, 사람이 위태위태하게 외벽 도색 작업을 하고 있었다.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런데 막상 시작해보니 안 되는 이유가 있었다. 엔지니어였다면 기술적 한계를 예단해 포기했을 수도 있다. 계속해서 되는 방법을 찾았고 그렇게 6년간의 연구개발 끝에 지난 2009년 벽화 페인팅 로봇 아트봇(Artbot) 개발에 성공했고, 이듬해 로보프린트를 설립했다.

-사명을 RP로 변경한 이유는?

▶해외시장 진출을 염두에 둔 결정이었다. 현재 미국과 싱가포르 법인을 거점으로 본격적인 해외 판매를 준비하고 있다. 해외에 나갔을 때 로보프린트보다는 RP가 더 좋을 것 같았다. 의미로 보면 RP는 로보프린트의 약자이기도 하고 'Robot for People'의 약자이기도 하다. 사람을 위한 로봇을 만들겠다는 철학을 담았다.

-대표 제품은 무엇인가?

▶아트봇과 건축 도장로봇 피봇(PBOT)이 대표 제품이지만 같은 로봇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8개 제품이 모두 특색이 있다. 아트봇은 실사출력이 가능한 벽화 로봇이고, 도료비산방지기술을 적용한 피봇은 아파트 같은 대형 건축물을 도장한다. 이외에도 방수페인팅로봇 WBOT, 바닥도장로봇 FBOT, 트레일러 도색로봇 TBOT, 외벽 청소로봇 CBOT, 노면표시 도장로봇 RBOT, 외벽 면처리 로봇 BBOT(개발 중) 등이 있다. 동일한 플랫폼을 사용해 다양한 수요처에 적용할 수 있기에 '로봇 플랫폼 기업'이란 지칭이 더 어울리기도 한다.

-RP만의 경쟁력은 무엇인가?

▶생명존중의 가치를 추구하는 기업이라는 점이다. 우리 제품이 투입될수록 산업 현장에서 사람이 죽을 확률이 떨어진다. 위험한 작업을 로봇이 대신한다.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보호하는 것이다. 도색이나 포장 작업에는 유해성 물질이 포함되기 마련인데, 지금까지는 사람이 이런 위험에 노출된 채 일했다. 사람의 생명과 건강을 지킨다는 점이 RP의 최대 경쟁력이다.

-로봇 테스트필드의 대구 유치에 대한 생각은?

▶산업용로봇 위주로 흘러가던 지원정책이 서비스로봇 분야로 이동할 것이란 측면에서 굉장히 기대된다. 많은 서비스로봇 기업들이 테스트필드를 통해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고 상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국가가 구축한 공간에서 서비스로봇을 테스트하면 제품 신뢰도가 높아져 현장 적용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 같다.

-로봇 도색산업의 성장 가능성을 전망한다면?

▶국내 시장은 16조원 규모로 크다고 볼 수는 없지만, 세계로 시각을 넓히면 900조원의 거대한 시장이 있다. RP는 전 세계 시장을 대상으로 사업을 확대해나갈 것이다. 섣부른 포부로 들릴 수 있겠지만 로봇도색 시장에서 삼성 같은 기업이 되길 꿈꾸고 있다. 대구경북 로봇 인프라가 좋아 불가능한 꿈만은 아니다.

-어렵거나 힘든 점이 있다면?

▶가격이 입찰제도의 가장 중요한 지표이다 보니 어려움이 있다. 제품 입찰을 할 때 안전을 평가하는 항목이 없다시피 한데 이는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 현재는 가격이 입찰 성패를 가르는 가장 큰 기준이다. 안전은 여기 끼일 틈이 없다. 입찰제도 안에서 안전을 더욱 중요하게 평가하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자유로운 한 마디.

▶사업 시작 전 사기를 당해 신용불량자 신세를 진 적이 있었다. 집에는 빨간딱지가 붙었고 채권자들은 집 문을 두드렸다. 생을 마감할까 생각도 했지만 가족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배달 아르바이트로 번 돈 110만 중 50만원으로 중고 현수막 기계를 사 다시 시작했던 것이 지금까지 왔다. 모두 어려운 시기인데 힘내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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