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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의 시간] 정세랑, '옥상에서 만나요'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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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예진 언니가 뭔가 얄팍하고 누리끼리한 노트 같은 걸 하나 내밀었어.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주문서야." "고려대에 뭘 주문한다고요?" "이 바보 자식, 똑바로 들어. 오더(order) 말고 스펠(spell)이라고!"

소연 언니가 발끈했는데, 나도 모르게 몸을 뒤로 뺐어. 언니들이 단체로 맛이 갔나 싶었거든. 워낙에 사주 보러 다니고 그런 거 좋아하는 언니들이긴 했지만 나름 단단한 생활인들인데 이거 왜 이러나, 셋이 짜고 놀리는 건가 짧은 시간에 온갖 생각이 다 들었지. ​

"......고대로부터 내려왔다는데 왜 인쇄물이에요?" "고대로부터 내려온 걸 구한말이나 식민지 시대 초기에 인쇄한 거 같아." "어디서 구했어요?" "동대문. 청계천 쪽 헌책방." "......" "야, 안 믿기면 하지 마, 그만큼 절박하지 않으면 하지 말란 말이야!" "아, 알았어, 절박하다고, 절박해요."

언니들의 서슬에 질려, 나는 얼른 책을 받아 왔지… (소설집 '옥상에서 만나요'에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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