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우리 문재인 대통령'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 상주시 유세에서는 '우리 경북인'이라고 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도 토론회에서 '우리 윤석열 후보'라고 말했다. 정치인이 습관처럼 '우리'를 붙이는 것은 말버릇이 아니다. 이는 말버릇으로 포장한 전략이다. 왜 정치인은 '우리'를 강조하는가.
선거는 상대방보다 표를 더 얻는 경쟁이다. 바둑은 상대방보다 더 많은 땅을 차지하는 게임이다. 사람들은 선거를 바둑에 비유한다. 표를 얻는 전략과 땅을 차지하는 전략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바둑의 시작은 포석(布石)이다. 포석은 대략적으로 내 땅의 경계를 만드는 것이다. 포석이 끝나면 나와 상대 진영(陣營)이 구축된다. 선거도 마찬가지다. 내 편과 네 편을 나누면서 선거가 시작된다. 내 편이 '우리'다. 네 편은 '그들'이다. '우리'를 키우고 '그들'을 줄여야 선거에서 이긴다. 대통령 선거가 진영 싸움이라는 이해찬 씨 말은 불편하지만 사실이다.
우리나라는 국민 국가다. 모든 국민이 대한민국 구성원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국민이기 전에 사람이다. 사람에게는 집단에 속하려는 본능이 있다. 국가 수립 전에 친족, 인종, 종교, 지역을 바탕으로 한 집단이 있었다. 사람은 자신이 속한 집단에 충성하지만 라이벌(rival) 집단에는 적대적이다. 이것이 집단 정체성이다. 집단 정체성은 자신과 집단을 동일시하는 심리다. 라이벌 집단에 속한 사람이 고통을 당하면 쾌감을 느낀다.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다. 내게 이득이 없어도 같은 집단에 속한 사람이 잘되면 만족감을 느낀다. 출향(出鄕)한 사람이 출세하면 고향 사람들이 내 일처럼 좋아한다. "우리가 남이가?" 감정이다.
선거는 집단 정체성을 강화시킨다. 이에 따라 집단 간 갈등이 심화된다. 대통령 선거 관련 기사와 댓글을 보면 그 심각성을 알 수 있다. 같은 나라 국민인지 의심이 들 정도다. 우리나라 언론이 두 집단으로 나뉜 지는 오래됐다. '우리' 언론사는 '그들' 후보에게 불리한 기사를 매일 쏟아낸다. '우리' 독자들이 그 기사를 읽고 댓글로 엄청난 분노와 증오를 표현한다. '우리' 언론사 기사는 '우리'를 단단하게 묶는다. '그들' 언론사 기사는 '그들'을 결속한다. '우리'와 '그들' 사이에 소통은 없다. 이 글을 쓴 나 역시 집단 정체성에서 자유롭지 않다. 나도 모르게 마음속에 '그들'에 대한 과도한 적개심(敵愾心)이 생기곤 한다.
누가 대통령 선거에서 이기든 국민 절반은 환호하지만 절반은 좌절할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대통령이 된 것처럼 좋아하거나 선거에 진 것처럼 절망하게 된다. 대통령 선거 날 승리한 집단은 새벽까지 광화문에서 축제를 벌이지만, 패배한 집단은 텔레비전을 끄고 일찍 잠자리에 든다. 대통령 선거 다음 날부터 논공행상(論功行賞)과 정죄(定罪)가 시작된다. 논공행상은 승리한 집단이 권력이라는 전리품을 나누는 것이다. 국민 절반은 권력 부스러기라도 얻은 듯이 좋아한다. 대리 만족을 느낀다. 패배한 집단에 대한 정죄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포장된다. 역사 바로 세우기, 비정상의 정상화, 부패 척결, 적폐 청산. 어떻게 포장하든 정죄는 복수다. 죗값을 치르는 것이다. 국민 절반은 자신이 벌을 받는 것 같은 굴욕감을 느낀다. 이 상황은 비극인가 희극인가.
대통령 선거 다음 날부터 '우리' 언론사가 당선자에 대한 용비어천가를 부를 것이다. 승리한 집단이 대통령인수위원회를 구성한다. 대통령인수위원회가 빠르게 권력을 접수한다. 대통령 선거에서 이긴 집단은 6월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도 이길 것이다. 이제 출범한 정권에 힘을 실어달라는 호소는 늘 통한다. 또다시 패배한 집단은 거친 나무 위에서 자고 쓸개를 씹으면서 기다린다. '우리'와 '그들'은 2024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다시 맞붙는다. 두 집단은 '안정적인 국정 운영'과 '정권 중간평가'라는 진부한 구호를 들고나온다. 나라는 다시 둘로 쪼개지고 내전(內戰)에 빠진다. 나는 점쟁이나 무당이 아니고 신기(神氣)도 없지만 이 정도 예상은 할 수 있다. 대한민국에서 50년 넘게 살았고, 세상사는 반복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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