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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정성태] 전쟁과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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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태 꾸꿈아트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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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는 영화광이었다. 지금처럼 OTT 서비스가 없던 시절, 주말 밤이면 TV 앞에 모여 극장에서 놓친 영화를 겨우 챙겨 보곤 했다. 두터운 뿔테 안경을 쓴 영화평론가의 맛깔스러운 소개와 오프닝 음악은 지금도 귓가에 아련하다. 화약 딱총을 차고 휘파람을 흉내 내던 서부영화, 영화 '백경', 셜록 홈즈와 괴도 루팡 그리고 맥가이버를 따라 하던 기억도 선명하다.

그때 눈을 비비며 보던 '명화극장' 가운데 하나가 '전쟁과 평화'였다. 그 영화를 통해 처음 오드리 헵번을 알았고 '나타샤의 왈츠'도 기억 속에 남았다. 영화는 전쟁의 승리를 보여주지만, 그 전쟁이 벌어진 러시아 땅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의 처절한 고통도 함께 담아낸다.

장대한 전투 장면 속에서도 톨스토이는 귀족 청년들의 인간적 고민과 선택, 사랑과 상실을 세밀하게 그려낸다. 그는 원작의 에필로그에서 이렇게 말한다. "권력이란 대중에 의해 선출된 통치자들에게 명시적 혹은 암묵적 동의로 표명된 대중 의지의 총화다." 예술이 위대하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한 작품이 인간과 사회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 때다.

서론이 길었다. 그러나 현실은 영화보다 훨씬 냉혹하다. 요즘 뉴스의 첫 장면은 언제나 전쟁이다. 중동의 충돌은 기름값을 흔들고, 우리는 실시간 영상 속 공포와 불안을 마주한다. 화면 속 참혹한 장면들은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전쟁이라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경험한 우리에게 우크라이나 전쟁과 지금 이란의 전황은 먼 나라 이야기가 될 수 없다.

영화 속 인물들은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다. 그들의 갈등과 화해, 선택과 책임은 오늘날 우리가 실천해야 할 관용과 공감, 포용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나타샤의 두려움과 용기, 안드레이의 고뇌와 결단은 단순한 서사가 아니라 인간과 사회의 복잡한 현실을 보여주는 거울이다. 역사와 예술은 언제나 미래를 비춘다. 단재 신채호가 말했듯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문득 나는 딸에게 톨스토이의 책 '전쟁과 평화'를 선물할 생각을 해 본다.

현실이 아무리 가혹하더라도 예술은 삶을 성찰하게 하고 더 나은 인간으로 성장할 영감을 준다. 우리가 마주하는 뉴스와 현실은 영화보다 더 날카롭고 가상현실보다도 더 생생하다. 그러나 이야기 속 인물들의 선택과 교훈을 기억한다면 작은 공감과 이해가 모여 사회의 평화와 성숙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전쟁은 인간이 만드는 비극이지만, 평화 또한 인간이 선택해야 할 유일한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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