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중기의 필름통] 영화 ‘루이스 웨인: 사랑을 그린 고양이 화가’

영화 '루이스 웨인: 사랑을 그린 고양이 화가'의 한 장면. CJ ENM 제공
영화 '루이스 웨인: 사랑을 그린 고양이 화가'의 한 장면. CJ ENM 제공

6일 개봉한 '루이스 웨인: 사랑을 그린 고양이 화가'(감독 윌 샤프)는 '고양이 화가' 루이스 웨인(1860~1939)의 삶과 아픔을 그린 전기영화다. 그는 평생 고양이만을 그렸다. 사람들처럼 기도하고, 웃고, 옷을 입혀 의인화한 고양이 그림으로 사랑받았다. 지금처럼 반려묘라는 인식이 없던 100년 전 그 시절, 그의 고양이에 대한 애정은 많은 이에게 밝은 위로를 선사했다.

고양이는 우스꽝스럽고 겁이 많지만, 때론 용감한 동물이다. 우리 인간 또한 그렇다. 간혹 바보 같은 짓을 하고 겁에 질려 아무 것도 하지 못하지만, 끝내 용기를 내 나의 삶을 살아간다. 루이스 웨인처럼 말이다.

이름 있는 가문에서 태어난 루이스(베네딕트 컴버배치)는 아버지의 사망 이후 어머니와 다섯 명의 여동생을 부양해야 하는 가장의 짐을 지게 된다. 그러나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 동물에 대한 애정이 각별해 동물 그림 프리랜서 삽화가로 겨우 생계를 꾸려간다.

어느날 여동생의 가정교사였던 에밀리(클레어 포이)에게 첫 눈에 반한다. 그러나 신분이 다르고, 에밀리가 10살 연상이었기 때문에 반대에 부딪친다. 그럼에도 신분을 초월한 결혼으로 자신의 사랑을 확인한다. 행복했던 결혼은 에밀리의 암투병으로 다시 고비를 맞는다. 결국 결혼 3년 만에 에밀리를 떠나보낸다.

에밀리의 빈 공간을 채워준 것이 고양이 피터였다. 피터는 아내와의 산책 중에 만난 빗속에서 떨고 있던 길고양이였다. 에밀리는 피터를 안고 집으로 데려와 반려묘로 삼는다. 루이스는 아내를 기쁘게 하기 위해 피터를 그리면서 캣 아트의 세계로 들어간다. 에밀리는 병마와 싸우면서도 계속 그림을 그리라고 유언을 남긴다. 아름다움으로 가득 찬 세상, 누구보다 먼저 그 아름다움을 알아내라는 말이었고 고양이에서 그 아름다움을 찾아낸다.

영화 '루이스 웨인: 사랑을 그린 고양이 화가'의 한 장면. CJ ENM 제공
영화 '루이스 웨인: 사랑을 그린 고양이 화가'의 한 장면. CJ ENM 제공

영화는 19세기 빅토리아시대 고풍스러운 모습을 잘 담아낸다. 의복과 가구, 생활상을 고전적인 짙은 색감으로 보여준다. 특히 촛불과 자연광 조명을 통해 더욱 깊은 색채감을 준다. 화면비도 옛 인상주의 화가들의 캔버스처럼 4대 3이어서 고전적인 맛을 더한다.

통상 화가의 삶을 그린 영화들은 색감이 화려한 편이다. 이 영화의 경우 마치 유화 그림 속 풍경처럼 아름다운 화면을 보며준다. 루이스와 에밀리, 피터가 앉아 있는 숲의 전경은 모네의 그림처럼 환상적이다. 여기에 다양한 종의 고양이들이 들어오면서 훨씬 생동감 넘치는 장면들이 연출돼 보는 것만으로도 아름답게 느껴진다.

루이스의 삽화 실력은 갈수록 는다. 양손으로 빠르게 그리는 화법은 독보적이었다. 잡지 '일러스트레이티드 런던 뉴스'의 정규 삽화가가 되면서 런던의 유명인사가 된다. 그러나 그의 삶은 더욱 쪼들린다. 고양이 그림이 담긴 잡지와 엽서 등이 유럽과 영어권 국가에 미친 듯이 팔려 나갔지만, 저작권에 무지해 그 어떤 추가 수익도 얻지 못한 것이다. 거기에 어릴 때부터 괴롭히던 망상과 환청은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심해져 정신분열 수준으로 악화된다. 차츰 그의 고양이 그림도 어두워진다.

루이스는 20살에 가장이 된다. 생활고와 늘어나는 부채, 여동생의 조현병 투병과 에밀리에 대한 그리움, 갈수록 심해지는 자신의 망상 등으로 평생을 삶의 무게에 찌들어 살았다. 고양이 그림으로 사람들에게 밝은 희망을 주었지만, 그의 삶은 점점 나락으로 빠진다.

영화는 에밀리가 죽기 전까지만 해도 밝고 경쾌하다. 루이스 또한 엉뚱하면서 활기차다. 고양이 그림도 우스꽝스럽고 귀엽고 아기자기하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그의 고양이 그림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괴기해진다. 거칠고 날카롭고 무서운 모습이다. 내면의 갈등과 분투가 그림에 반영된 것이다.

영화 '루이스 웨인: 사랑을 그린 고양이 화가'의 한 장면. CJ ENM 제공
영화 '루이스 웨인: 사랑을 그린 고양이 화가'의 한 장면. CJ ENM 제공

'루이스 웨인: 사랑을 그린 고양이 화가'는 이처럼 루이스의 다층적인 내면을 잘 형상화한 영화다. 거기에는 루이스 역을 맡은 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연기 몫이 크다. 그는 젊은 루이스에서부터 머리가 새하얗게 샌 병들고 늙은 루이스까지, 캐릭터에 몰입된 놀라운 메소드 연기를 보여준다. 엉뚱하면서 고달픈 천재의 양면을 마치 본인 인 것처럼 연기해 관객의 몰입을 끌어낸다.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2018)에서 영국 여왕 앤을 연기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올리비아 콜맨이 내레이션을 맡았고, '조조 래빗'(2019)에서 연출과 히틀러 역 연기를 맡았던 타이카 와이티티도 깜짝 출연한다. 윌 샤프는 베네딕트 컴버배치와 함께 '셜록'에 출연했던 배우 출신 감독이다.

원제 'The Electrical Life of Louis Wain'은 "루이스가 전기를 삶의 가장 놀라운 비밀들을 여는 열쇠라고 불렀다"는 내레이션에서 보듯 가장 생동감 넘치고 짜릿한 루이스 웨인의 삶을 뜻한다. 사랑스러운 고양이를 만났을 때 흐르는 짜릿한 행복감 같은 것 아닐까. 112분. 12세 이상 관람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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