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송'한 대학들, 사상 최악의 인문사회 취업난…사라지는 신입생…초중고부터 이과 쏠림

지역 인문사회大 신입생 지원율 갈수록↓ 취업률도 평균 비해 낮아
학령인구 감소·취업난 여파로 초·중·고교부터 문과 소외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6월 모의고사가 치러진 지난 6월 9일 오전 대구 수성구 경북고등학교에서 3학년 학생들이 시험을 보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6월 모의고사가 치러진 지난 6월 9일 오전 대구 수성구 경북고등학교에서 3학년 학생들이 시험을 보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계명대가 성서캠퍼스 영암관에 창의융합인재 양성을 위한
계명대가 성서캠퍼스 영암관에 창의융합인재 양성을 위한 '인문창의융합라운지'를 구축했다. 계명대 제공

대구권 대학은 인문사회 학과·전공의 떨어지는 인기를 실감하고 있다. 해마다 신입생 경쟁률이 낮아지고, 최근에는 코로나19의 여파로 미충원되는 사례도 생긴다. 재학생은 물론 졸업생들은 진로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하락하는 취업률이 이들의 처지를 말해준다. 이제는 고등학교는 물론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도 문과보다 이과를 선호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인문사회 졸업생들의 고군분투

지역대학의 인문사회 출신들은 갈수록 취업 시장에서 설 자리가 줄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기존에 문과 학생들이 지원하는 분야에서도 이과생들이 강세를 보이면서 취업이 더 힘들어졌다는 하소연이다.

지역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 전선에 들어선 지 2년째인 A(29) 씨의 원해 전공은 어문학과지만, 취업을 위해 경제통상학과를 복수로 전공했다. 이를 바탕으로 A씨는 지역 공기업을 목표로 했지만 계속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사기업으로 방향을 틀었지만, 이 역시 쉽지 않았다. 갈수록 채용 인원이 줄고, 신입 사원들에게 요구하는 경력이 많아지고 있어서다. 특히 디지털 역량을 중시하면서 취업 시장의 이과생 선호가 더 높아진 것을 체감하고 있다.

A씨는 "문과생들이 지원하던 금융 분야의 경우 요즘 은행 전용 애플리케이션으로 웬만한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 보니 점포가 통폐합되고, 채용하는 인원도 줄고 있다"며 "채용을 해도 은행들은 문과생보다 앱을 관리하는 등 이과생들을 선호하는 곳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문과생들도 살아남기 위해 디지털 역량을 키워야 하는 시대다"며 "주위에 문과 친구들 가운데 디지털 역량을 기르고자 관련 시험을 준비하는 경우가 많다. 나도 데이터 분석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고 있으나, 공부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라고 털어놓았다.

지난해 지역 4년제 대학을 졸업한 B(26) 씨는 인문사회 중 그나마 취업이 잘 된다는 경제 관련 학과를 졸업했다. 무역이나 물류 회사의 구매팀에서 일하길 원하지만, 상황은 녹록하지 않다.

B씨는 "목표했던 분야는 전통적으로 경영·경제나 무역·물류 전공을 우대했는데 요즘은 산업공학이나 기계, 반도체 등을 전공한 이과생들을 선호하는 곳이 많아졌다"며 "아무래도 구매 업무 담당자는 자재의 특성을 잘 이해해야 하는데, 특히 반도체 부품 회로나 소자에 대해선 이과생들이 잘 알기 때문에 강세를 보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상회복세에 힘입어 대학가 취업 관련 행사가 활기를 띠고 있다. 26일 경산시 경일대학교 학술정보원에서 열린
일상회복세에 힘입어 대학가 취업 관련 행사가 활기를 띠고 있다. 26일 경산시 경일대학교 학술정보원에서 열린 '2022 KIU 취업매칭데이'를 찾은 취업준비생들이 구직 상담을 받고 있다. 우태욱 기자 woo@imaeil.com

◆신입생 인기 식고, 취업 지표는 악화

지역대 인문사회의 위기는 각종 지표에서 드러난다. 신입생의 지원율이 갈수록 떨어지는 가운데 취업률도 대학 평균보다 낮은 편이다.

23일 교육부 대학알리미의 2019~2021년 공시자료를 분석한 결과, 인문·사회과학대학이 있는 대구권 대학 5곳의 관련 학과들 신입생 경쟁률과 졸업생 취업률이 전반적으로 하락 폭을 보였다.

우선, 경쟁률을 보면 2019~2021년 사이 경북대는 어문계열이 대부분 하락했다. 대표적으로 국어국문학과(13.8대1→10.8대1)와 노어노문학과(17.6대1→7.9대1), 독어독문학과(12대1→9.3대1), 불어불문학과(12.4대1→8.5대1) 등이다.

사립대에선 ▷계명대의 러시아어문학전공(7.2대1→4.9대1)과 사학과(9.9대1→5.9대1) ▷영남대의 사회학과(6.1대1→4.3대1)와 역사학과(6.2대1→4대1) ▷대구대의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10대1→6.8대1)와 심리학과(9.2대1→5.6대1) ▷대구가톨릭대의 심리학과(7.2대1→4.4대1) 등이 눈에 띄는 감소 폭을 보였다.

대구권 대학 5곳의 평균 취업률은 50% 중반대 수준인데, 아래로 떨어진 인문사회 학과들이 속출하고 있다. 2019~2021년(공시 기준) 사이 경북대의 경우 노어노문학과 취업률이 75%에서 41.7%로 급격하게 낮아졌고, 불어불문학과(60→30.8%)와 심리학과(44.8→34.4%)도 하락 폭이 컸다.

사립대를 보면 ▷계명대의 러시아어문학전공(66.7→31.6%)과 독일어문학전공(36.4→23.8%) ▷영남대의 문화인류학과(55.3→33.3%)와 영어영문학과(52.1→38.4%) ▷대구대의 독어독문학과(57.1→20%)와 사회학과(67.9→40%) ▷대구가톨릭대의 사회학과(55.6%→33.3%) 등의 졸업생 취업률이 낮아졌다.

지역 한 대학의 교수는 "전반적으로 학령인구가 줄어 경쟁률이 낮아지는 가운데 최근에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신입생을 모두 충원하지 못하는 학과·전공도 생겨나고 있다"며 "여기에 정부가 4차 산업혁명 등 미래 첨단산업 인재 육성을 위한 각종 지원정책을 내세우면서 인문사회 학과(전공)로의 진학 분위기가 갈수록 얼어붙고 있다"고 지적했다.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6월 모의고사가 치러진 지난 6월 9일 오전 대구 수성구 경북고등학교에서 3학년 학생들이 시험을 보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6월 모의고사가 치러진 지난 6월 9일 오전 대구 수성구 경북고등학교에서 3학년 학생들이 시험을 보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초·중·고교에서부터 외면받는 문과

문과 소외 현상은 일찍이 초·중·고교에서부터 나타나고 있다. 전국의 상위권 고등학교 3학년 학급 가운데 거의 70% 이과반이었다. 종로학원은 지난 6월 전국 자율형사립고 28곳과 지난해 대입에서 서울대 합격자를 10명 이상 배출한 일반고 24곳 등 모두 52곳의 고교를 대상으로 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전체 3학년 학급 564개 가운데 68.6%인 387개가 이과반이었다. 문과반은 31.4%(177개)에 불과했다. 이들 학교의 지난 2015학년도 수능 응시 비율에서 이과(과탐)가 53.7%, 문과(사탐)가 46.3%로 거의 반반이었던 것과 비교해 이과 쏠림이 심해진 것이다. 이 조사에서 대구의 대륜고 이과 비율은 8년 전 57.6%에서 올해 69.2%로 11.6%포인트(p) 높아진 것으로 확인됐다.

향후 이과 쏠림 현상을 장기적인 예측할 수 있는 초등·중학생에게도 비슷했다. 종로학원이 지난 5월 초등학생과 중학생 학부모 2천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결과, 전체 응답자의 81.1%가 이과를 선호한다고 답했다. 특히 남학생은 90.2%, 여학생은 69.8%가 이과 진학을 희망한다고 했다.

이러한 경향은 지난해 시작된 통합 수능 체제에서 이과 수험생이 수학 점수에서 유리한 특성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나아가 이과 수험생이 인문 전공을 지원해 합격하는 일명 '문과 침공' 현상이 일어나는 등 문과의 설 자리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교육계 전문가들은 통합 수능이 2년 차에 접어든 올해 수능에서 문과 침공이 심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입시사이트 유웨이닷컴이 지난달 456명의 수험생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과생(미적분·기하 선택자) 응답자의 54.9%가 '정시모집에서 인문계 모집단위에 지원할 용의가 있다'고 대답했다. 이는 지난해 7월 조사 때 31.3%보다 23.6%p 대폭 늘어난 수치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이과 학생이 문과를 교차로 지원하는 이유는 내선에서도 상대적으로 더 유리하기 때문"이라며 "지난해 입시에서 이과 학생의 문과 지원이 예상보다 더 많았기에 올해도 교차지원이 상당한 변수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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