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중기의 필름통] 영화 ‘어떤 영웅’

도덕적 딜레마 이겨낸 주인공의 치열한 자기 찾기 여정

영화 '어떤 영웅'의 한 장면.
영화 '어떤 영웅'의 한 장면.

가방을 주우면 주인에게 돌려주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선행으로 출발한 이 일은 점점 꼬여만 간다. 선행에 의심이 입혀지고, 친절은 오해로 번져나간다.

이란의 거장 아쉬가르 파라디는 사소한 일에서 윤리의 딜레마를 건져 올리는 감독이다.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2011), '세일즈맨'(2016) 등이 그랬다. 수면에 던져진 작은 돌멩이가 만드는 파문은 잔잔하다가 결국 큰 울림으로 관객에게 몰려온다. '어떤 영웅' 또한 그런 돌팔매질과 같은 영화다.

주인공 라임(아미르 자디디)은 돈을 갚지 못해 감옥에 간 남자다. 두 달여 만에 나온 귀휴 기간에 금화가 든 가방을 줍는다. 금화를 팔아 빚진 돈만 갚으면 감옥에서 나올 수 있다. 그러나 라임은 주인을 찾아 가방을 돌려준다.

라임의 선행은 뉴스가 되고 그는 영웅 대접을 받는다. 자선 행사에선 라임을 위해 모금까지 하게 된다. 그가 영웅이 되자 의심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선행의 증거를 요구하는 이들에게 둘러댄 거짓말은 또 다른 오해로 커져간다.

라임은 평범한 소시민이다. 재소자지만 흉악범이 아니다. 사채를 끌어 사업을 하다 돈을 갚지 못해 고소당한 것이다. 금화만 팔면 자신의 모든 고민을 해결할 수 있다. 돈에 궁해 본 사람은 이해할 수 있는 딜레마다. 나의 양심을 내려놓으면 내가 살 수 있는 길이 생긴다.

그러나 라임은 그 유혹을 이겨낸다. 가난하고 힘들지만 양심이 있고, 무엇보다 명예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가 그 증거를 요구할 때 자신의 선행을 증명해 줄 일이 막막해 진다. 금화를 찾아간 주인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걸작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1987)처럼 찾아 헤맬 수밖에 없다.

영화 '어떤 영웅'의 한 장면.
영화 '어떤 영웅'의 한 장면.

'어떤 영웅'은 도덕적 딜레마를 이겨낸 선한 주인공의 치열한 자기 찾기 여정을 그린 영화다. 그러면서 이 사단의 발단이 개인의 문제만인가를 짚어낸다. 교도소장은 재소자 중 영웅이 났다면서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자선단체는 그를 통해 기부금 모집에만 기를 쓴다. 덩달아 시의회는 라임에게 의회 행정직을 약속한다.

라임은 이렇게 일이 커져가는 것이 부담스럽다. 말을 더듬는 아들까지 내세워야 하는 상황이어 아버지로서 못마땅한 일이다. 큰 물결에 휩쓸리는 나뭇잎 같아 불안 불안하다. 시의회를 찾아갔다가 일이 터진다. 수습할 길이 막막했던 그는 거짓을 꾸미게 되고, 순진한 그의 마음은 악의로 변질된다.

라임의 발걸음을 쫓아가면서 관객은 가슴을 졸이게 한다. 주인공을 짓누르는 현실에 안타까워하며 그의 구겨진 처지가 펴지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이란 영화들을 보면 한국의 예전 모습이 오버랩돼 공감되는 지점이 많다. 친구의 숙제 공책을 전해주려고 헤매던 그 착한 아마드처럼 착한 사람들의 흔적들이다. 주인공 라임을 비롯해 집안의 반대에도 그를 위해 온 몸을 던지는 여자 친구, 라임을 도우기 위해 애를 쓰는 라임의 매형 등이 가난했던 그 시절 인정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먼지가 날리는 흙담에 정겨운 전파상, 자전거가 달리는 시장 바닥 등 사람 사는 흔적 또한 그런 느낌을 들게 한다.

돈이 없어도 지켜야 하는 명예도 마찬가지다. 자식을 위해, 여자 친구를 위해, 자기를 믿어주는 친지들을 위해 버리면 안 되는 마지막 자존심 같은 것이다. 라임은 불안하고, 힘겨운 현실을 그 명예로 견뎌낸다.

영화 '어떤 영웅'의 한 장면.
영화 '어떤 영웅'의 한 장면.

라임을 연기한 아미르 자디디는 이란 테니스 국가대표를 지낸 배우다. 라임 역할을 위해 체중을 감량해 왜소한 한 남자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늘 흔들리던 눈빛에 안절부절 못하던 그가 평정을 찾아 차분해 지는 표정 연기는 인상적이다.

라임을 괴롭히던 채권자의 딸 나자닌 역의 배우 사리나 파라디는 감독의 친딸이다.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로 베를린국제영화제 여자연기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라임은 과연 영웅일까. 사회의 영웅 놀음에 자신 또한 동조했으니 영웅이라 칭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지켜할 선을 지킨, 인간으로서 아버지로서 지켜야 할 그 험난한 도덕적 행동이 '어떤' 영웅으로 기억될 수는 있지 않을까.

'어떤 영웅'은 제74회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받았다. 개인의 명예와 윤리, 사회의 책임과 한계 등을 잘 그려낸 수작이다. 127분. 12세 이상 관람가.

김중기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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