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중기의 필름통] 36년 전 납치사건 모티브로 한 액션 스릴러…영화 ‘비공식작전’

영화 '비공식작전'의 한 장면.
영화 '비공식작전'의 한 장면.

1986년 레바논에서 한국 외교관이 납치된다. 그러나 그 어떤 연락도, 몸값 흥정도 없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1년 8개월이 지났다. 모두가 88서울올림픽 개막 준비에 정신이 없을 때라 이 사건은 쉽게 잊혀 진다.

'비공식작전'(감독 김성훈)은 이 납치사건을 모티브로 하는 액션 스릴러다. 배우 하정우와 주지훈이 짝을 맞춘 버디 무비에 '끝까지 간다'(2014), '터널'(2016)로 긴장감 넘치는 수작 스릴러를 만들었던 김성훈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1987년 외무부 중동과에 근무하는 민준(하정우)은 어느 날 전화 한 통을 받는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톡톡거리는 소리. 한국 외교관만 쓰는 신호다. '저는 대한민국 외교관 오재석입니다'. 민준은 납치된 외교관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그를 구출하는 작전에 자원한다.

1987년은 격동의 시기다. 민주화 시위가 격렬했으며, 호헌조치가 철폐되고 직선제가 쟁취돼 제13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있던 때다.

그래서 구출작전은 공식적으로 진행될 수 없었다. 오로지 말단 사무관인 민준과 그가 베이루트에서 만난 한국인 택시드라이버 판수(주지훈)에게 이 위험한 임무가 맡겨진다. 둘은 첫 대면부터 티격태격하며 엇박자를 연출한다.

영화는 이 둘이 끌어가는 좌충우돌, 티격태격, 티키타카 플롯이다. 둘은 뼛속까지 정의롭거나 사명감이 투철한 캐릭터들이 아니다. 민준은 미주나 유럽 발령을 꿈꾸지만, 5년 째 중동과에 붙박이다. 거기에 후배에게도 승진이 밀린다. 미국 근무의 꿈은 꿈에서나 꾸라는 고참의 말. 이번 일만 잘 마무리되면 드디어 미국 발령을 꿈꿀 수 있게 된다.

판수는 월남전에도 참전했지만, 번 돈을 모두 사기 당하고 위험한 중동, 그것도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택시를 몰고 있다. 사기꾼 기질이 다분한, 믿을 수 없는 인물이다.

이런 둘이 테러가 난무하는 베이루트에서 총탄 세례를 받으며 납치된 외교관을 구출하기 위해 온 몸을 던진다. 1980년대 가장 위험한 지역답게 베이루트에는 온갖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공항경비대는 몸값을 노리고 민준을 잡으려 하고, 무장단체 또한 몸값과 인질을 잡기 위해 추격해 온다.

자살폭탄 테러에 총격, 그 사이를 뚫고 도망치는 추격전이 꽤 긴장감 넘친다. 좁은 계단을 질주하며 추격을 따돌리거나, 건물과 건물 사이를 뛰어다니며 쫓기는 장면 등은 가슴을 조마조마하게 한다. 특히 총격신은 탄환이 옆을 스치듯 타격음이 살아 있다.

영화 '비공식작전'의 한 장면.
영화 '비공식작전'의 한 장면.
영화 '비공식작전'의 한 장면.
영화 '비공식작전'의 한 장면.

공무원으로 우직한 민준, 노란색 격자무늬 바지를 입은 사기꾼 판수. 서로 다른 생각으로 손발이 맞지 않던 둘은 생사를 건 모험을 겪으며 서서히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머나먼 전쟁통 속에서 믿을 수 있는 것이라야 둘 뿐이다. 인질을 구출하기에 앞서 자신들의 생명이 더 위험하다. 어쨌든 알아서 살아남아야 한다.

그들이 믿던 고국은 "이런 판국에 사람 목숨 하나가 대수야!"라는 식이다. 믿을 수 있는 것은 역시 위정자들이 아니다. 이런 구조는 '터널'에서 붕괴된 잔해 더미에 방치된 생존자들과 안일한 당국자들의 대치와 유사하다.

영화는 이런 긴장 속에서 드라마의 완급 조절을 잘 해낸다. 배우 하정우는 특유의 유머와 진정성 넘치는 눈빛 연기로 평범한 외교관의 '영웅적인' 역할을 잘 소화해 낸다. CIA 출신 중동전문가 카터(번 고먼)와 맞대면하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역시 믿고 보는 하정우다.

다만 주지훈의 캐릭터 연기는 판에 박힌 듯하다. 익살은 과도하고, 허세는 퍼석하고, 웃음은 가공적이다. 민준과 판수가 위험을 함께하면서 갈등과 화해의 과정을 거치는데, 판수가 착한 사람으로 변모하는 과정이 매끄럽지 못한 것도 겉핥기식 캐릭터 연구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민준이 타인을 위해 희생할 줄 아는 외교관으로 성장하지만, 판수는 겉도는 캐릭터로 제자리다.

영화 '비공식작전'의 한 장면.
영화 '비공식작전'의 한 장면.

'비공식작전'은 36년 전 사건을 모티브로 영화화했다. 레바논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실제 촬영은 모로코에서 이뤄졌다.

임순례 감독의 '교섭'(2022)이나 류승완 감독의 '모가디슈'(2021)가 오버랩 되기도 한다. 과거 대한민국 외교 역사에 남은 실화, 인질을 구출하기 위해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휴먼드라마라는 형식과 내용이 유사하기 때문이다.

'비공식작전'은 현장감 넘치는 액션과 하정우의 연기로 여름나기용 액션 스릴러로 무난한 영화다. 다만 레바논 현장과 함께 1987년 당시 긴박했던 국내 사정을 대치시켰으면 훨씬 더 드라마틱하고 긴장감이 넘쳤을 것이란 아쉬움이 생긴다. 긴 러닝타임 또한 그렇다. 132분. 12세 이상 관람가.

김중기 영화평론가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