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무빙’, 본격 한국형 슈퍼히어로물의 탄생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무빙’, 한국적 정서 가득한 슈퍼히어로들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무빙' 공식 포스터.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무빙' 공식 포스터.

이른바 '한국형'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면, 어딘가 서구에서 했던 것들을 우리도 해냈다는 정도의 성취를 떠올리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무빙에 붙는 '한국형'은 다르다. 본격적인 의미의 한국형 슈퍼히어로물의 탄생이 예감되기 때문이다.

◆초능력 억누른 채 사는 사람들

슈퍼히어로하면 어딘가 마블이나 DC가 그려낸 판타지적 존재들을 떠올리게 된다. 군살 하나 없어 보이는 몸에 딱 달라붙는 멋진 슈트를 입고 인간은 도저히 할 수 없는 하늘을 날거나 물 속을 유영하는 그런 존재들. 하지만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무빙'의 슈퍼히어로는 다르다. 공중부양을 하는 능력을 타고 난 봉석(이정하)은 뚱뚱하다. 멋진 슈트 따위는 없다. 게다가 초능력을 마음껏 발휘해 사람들을 구하거나 하는 영웅적 행위도 좀체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거꾸로 이 능력을 숨기려고 안간힘이다. 너무 행복하거나 아니면 너무 화가 나 감정이 요동치면 저도 모르게 몸이 붕 떠오르는 걸 막기 위해 늘 발목에는 모래주머니를 차고 있고, 가방에는 무거운 바벨을 넣고 다니고 엄마 미현(한효주)은 늘 고봉밥과 돈까스를 식사를 내놓는다. 봉석이 뚱뚱한 건 의도적인 선택이다. 남들 앞에서 공중부양 하는 걸 애써 숨기려는 선택.

물론 봉석은 어린 시절 TV 속 번개맨을 보며 자신도 날고픈 욕망을 가지지 않았던 건 아니다. 한 아이가 놀이터에서 번개맨을 흉내 내며 정글짐에서 뛰어내려 영웅이 된 모습을 보고 질투한 봉석은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 더 멀리까지 뛰어내렸다(사실은 날았다). 하지만 그 일은 봉석을 흉내 낸 아이가 크게 다치는 결과로 이어졌고 엄마는 "네가 잘났다는 듯이 친구들 앞에서 뽐내듯이 보여 준" 봉석의 행동은 "하나도 멋있지 않고" 영웅도 아니라고 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지도 못하는 건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하지만 미현이 굳이 봉석의 초능력을 억누르는 건 그것이 위험하다는 걸 알고 있어서다. 그 역시 남다른 초감각의 능력을 갖고 있고 그래서 과거 정부의 비밀임무를 수행하기도 했지만 그건 결코 행복한 삶이라 보긴 어려웠다. 또 정부 기관은 이들의 능력을 써먹고 이용할 뿐, 용도가 끝나면 적국에 의해 폐기처분되는 상황이 와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초능력은 선택받은 자들의 혜택이 아니라 이들에게는 이용당하다 버려지는 족쇄나 마찬가지다. 봉석 또한 그런 삶을 사는 걸 미현은 원치 않는 것이다.

게다가 한 때 정부기관에서 일하다 은퇴한 이들을 하나하나 제거하는 미국에서 파견된 프랭크(류승범)라는 초능력자가 등장한다. 한국이 초능력자들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미국으로서는 탐탁찮고, 그래서 힘의 헤게모니를 유지하기 위해 미국은 그들을 제거하려 하고 그 능력을 이어받은 2세들까지 위협하는 상황에 놓인다. '무빙'의 초능력자들은 이처럼 초능력을 드러내기보다는 그 능력을 숨겨야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상황에 놓여 있다.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무빙' 공식 포스터.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무빙' 공식 포스터.

◆고3의 현실이 겹쳐진 슈퍼히어로

초능력을 가진 존재들이 그 능력을 숨긴 채 최대한 평범하게 살아가려는 이 특이한 상황은 두 가지 현실을 은유한다. 그 하나는 입시교육에 내몰린 고3 학생들로 대변되는 꿈과 가능성을 억압 받는 청소년들의 현실이다. 봉석이 고3 학생이라는 건 우연한 설정이 아니다. 그는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엄마의 이야기를 어려서부터 계속 들어오며 자신이 날 수 있다는 걸 애써 부인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어느 날 그의 앞에 희수(고윤정)가 등장하면서 애써 눌러왔던 억압이 풀려버린다. 희수 앞에서 감정이 요동치면서 점점 허공으로 떠오르는 자신을 주체하지 못하고 결국 부양하고 만 것. 하지만 희수는 엄마와 달리 그의 능력을 인정해준다. "넌 이상하지 않아. 조금 다르고 특별할 뿐이야." 그러면서 세상에는 너 같은 사람도 나 같은 사람도 있다고 말해준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희수 역시 특별한 존재로서 그걸 드러내는 순간 자신에게 쏟아지던 시선들을 기억한다. 회복능력을 가진 그가 학교폭력을 당하는 친구를 위해 나섰고, 그로 인해 그의 정체가 드러나면서 결국 그 학교를 떠나게 됐기 때문이다.

같은 고3 학생이지만 봉석과 희수의 현실은 쉽지 않다. 봉석은 날 수 있는 능력을 감추기 위해 살아오면서 자신의 가능성들을 모두 지워버리며 살아간다. 반면 희수는 잘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도 집이 가난해 선생님의 조언대로 체대 준비를 한다. 이들은 한국의 입시제도의 현실에 놓여 있는 고3 학생들의 모습을 은유한다. 저마다의 가능성을 가진 특별한 존재들이지만, 입시제도라는 틀 안에서 모두가 성적을 향해서만 살아가며 평범해지는 봉석과 희수의 모습이 바로 우리네 학생들의 모습이 아닌가. 날개를 꺾어 날 수 있는 방법조차 잊어버리며 살아가는 우리네 청소년들에 대한 안타까운 시선을 '무빙'은 초능력자라는 설정으로 에둘러 말하고 있다.

게다가 이런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존재들인 학생들을 필요한 능력만 원하는 대로 이용하려는 국정원 비밀기관의 모습은, 마음껏 사랑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어 하는 학생들의 모습과 대결구도를 만든다. 능력에 대해 세상이 요구하는 것과 아이들이 원하는 건 다르다. 아이들은 행복해지고 싶어 하지만, 세상은 그 능력을 통해 권력을 잡고 유지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이 특별한 초능력자들의 이야기는 어른들이 원하지만 아이들은 원치 않는 삶의 부딪침을 다루고 있다.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무빙' 공식 포스터.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무빙' 공식 포스터.

◆한국의 지정학적 상황으로 은유

흥미로운 건 '무빙'에는 미국과 일본, 중국, 북한으로 둘러싸여 있는 한국의 지정학적 상황 또한 슈퍼히어로물의 방식으로 담겨 있다는 점이다. 미 대사관 외교관으로 위장해 일하는 CIA 요원은 국정원의 기밀부서를 이끄는 민용준(문성근)을 찾아와 이 부서에서 초능력을 가진 2세들을 키운다는 것이 사실이냐며 민감하게 반응한다. 알고 보면 봉석이 다니는 정원고등학교는 이런 능력을 가진 아이들을 특별관리하며 체대 입시 준비라는 명목으로 테스트를 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민용준이 이끄는 기밀부서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은퇴한 초능력자들을 찾아가 지시받은 대로 제거하고 그 2세들까지 찾아다니는 프랭크는 다름 아닌 CIA의 지시를 받는 초능력자다. 즉 프랭크가 작전을 수행하고, 은퇴한 초능력자들은 그 능력을 숨긴 채 살아가며 이들을 제거하는 것에 민용준이 불쾌한 듯 반응하면서도 암묵적으로 거기에 동조하는 모습에서는 여러모로 미국과 한국의 지정학적 특징이 투영되어 있다. 즉 북한, 중국과 마주하고 있어 어느 정도의 힘을 갖기를 바라면서도 그 능력이 미국을 넘어서는 건 결코 용납하지 않으려는 미국의 입장이 그것이다. 또 당장 미국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지만 그러면서도 남모르게 힘을 키워놓으려는 한국의 입장이 또한 담겨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는 당연히 북한이 개입하게 된다. 남측에 초능력자들이 존재한다는 건 분단 대치 상황에 놓여 있는 북한에는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무빙'은 이처럼 허공을 날아다니고 다쳐도 회복능력을 갖는 등의 초능력을 소재로 한 슈퍼히어로물이지만, 그 안에는 진정한 의미로서 '한국적'이라고 할 수 있는 우리네 현실과 정서들이 담겨있다. 무엇보다 이 슈퍼히어로물에서 느껴지는 '사람 냄새'가 다르다. 엄청난 스케일의 세계관을 갖고 있는 작품이면서도, 세세한 인물들의 디테일들을 놓치지 않는 시선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시각적인 즐거움을 주는 스펙터클만이 아니라, 보는 이들의 아기자기한 감정들을 요동치게 만드는 이 한국적 슈퍼히어로물에 우리는 물론 전 세계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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