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좀비버스’, 리얼과 가상 사이 K좀비의 예능판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좀비버스’, 좀비 세계관 속 색다른 캐릭터쇼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좀비버스' 포스터.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좀비버스' 포스터.

이제 'K좀비'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한국의 좀비 장르는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됐다. 그렇다면 예능판은 어떨까.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좀비버스'는 바로 그 예능판 K좀비의 세계를 가져왔다.

◆실감나는 '좀비 유니버스'

'이 작품은 좀비 유니버스 안에서 펼쳐지는 리얼 생존 게임을 다루고 있습니다. 출연자들은 자신의 의지로 행동하며 좀비에게 물린 후 죽으면 좀비로 변하게 됩니다. 이들의 과몰입에 주의를 요합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좀비버스'가 고지하며 시작하는 자막에는 이 예능 프로그램이 가진 독특한 특징이 담겨 있다. 즉 '좀비 유니버스'가 가상이라는 건 누구나 알 고 있다. '킹덤'이나 '지금 우리 학교는' 같은 좀비물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가상으로 제작진이 짜놓은 세계관 위에서 '좀비버스'가 보여주려는 '리얼 생존 게임'이다. 그런데 가상 앞에서 리얼은 어디까지 가능할까.

두 가지 의미에서 '리얼'은 가능하다. 즉 리액션이 리얼일 수 있다. 제 아무리 가짜로 짜놓은 판이라고 해도 그 자체가 주는 스릴이나 공포감은 우리가 이미 여러 차례 경험을 통해 겪어봤던 것들이다. 대표적인 게 과거 놀이공원이나 유원지 등에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을 비명 지르게 만들었던 '귀신의 집' 체험 같은 것이다. 그것이 가상으로 꾸며 놓은 것이란 걸 알면서도 우리는 스릴과 공포를 느낀다.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여름만 되면 공포 체험 특집이 예능 프로그램의 단골소재가 됐던 것도 바로 이런 가상의 판에서도 보이는 리액션의 리얼함이 주는 웃음과 공포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건 사실 우리가 공포영화를 보는 그 체험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건 영화일 뿐이지 않은가.

하지만 우리는 오싹한 그 세계에 과몰입하며 두려움에 눈을 감기도 한다. 즉 '좀비버스'에 등장하는 좀비들은 가상이지만 이미 좀비물을 통해 익숙한 세계인데다, 그래서 물리면 좀비가 될 것 같은 과몰입을 유발한다. 리액션은 리얼로 터져 나온다. 두 번째 의미의 리얼은 '선택'에서 나온다. 어쨌든 이 가상을 과몰입을 통해 받아들이고 그 세계 깊숙이 들어오게 되면 출연자들은 특정 상황에서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질 수 있고, 그래서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는 측면에서 리얼이 된다.

가상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 두 가지 측면의 리얼은 모두 '과몰입'을 전제해야 가능하다. 가짜라도 진짜처럼 믿게 만드는 실감이 요구된다. '좀비버스'의 관건이 되는 이 부분을 채워준 건 다름 아닌 K좀비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실감나는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들과 미술, 분장팀이 갖고 있는 인프라다. 영화에서도 진짜처럼 공포를 안겨주던 그 K좀비의 디테일들이 있어 '좀비버스'라는 세계가 가능해진다. 방송 촬영 도중 한 여성이 남성의 목을 물어뜯고, 뜯긴 자리에서 진짜처럼 피가 솟구치는 장면은 순식간에 좀비 세상을 여는 열쇠가 된다. 장난인 줄 알았다가 창문이 깨지며 좀비가 굴러 떨어지고, 여기저기 물어뜯기며 아비규환이 되어가는 홍대거리의 풍경이 펼쳐지면서 출연자들은 자연스럽게 과몰입을 통해 이 세계 속으로 들어온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좀비버스' 스틸컷.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좀비버스' 스틸컷.

◆과몰입 깨는 웃음과 흥미로운 전개

허구로 만들어진 K좀비물이었다면 그 공포의 긴장감을 계속 이어가겠지만, '좀비버스'는 예능이다. 리얼 리액션이 주는 재미가 분명하지만, 거기에 웃음 또한 빠질 수 없다. 그 웃음은 때때로 과몰입이 깨지거나, 베테랑 예능 출연자들이 의도적으로 그걸 깨는 순간에 터져 나온다.

예를 들어 차를 타고 아비규환의 홍대 앞으로 벗어나 어딘가로 갈 때 마트를 본 출연자들이 당장 필요한 생필품을 이야기할 때 노홍철이 "나 초콜릿 하나 사면 안 되겠지?"라고 툭 던지는 상황이 그렇다. 그 순간 과몰입이 살짝 깨지고, 그래서 다른 출연자들이 애써 웃음을 참으려는 상황이 발생할 때 오히려 웃음이 터지는 것. 이것은 다분히 리얼 버라이어티적인 캐릭터쇼의 요소들인데, '무한도전'으로 잔뼈가 굵었던 노홍철이 이 지점을 놓칠 리 없다. 여기에 박나래, 딘딘 또한 가세하면서 과몰입을 슬쩍 슬쩍 깨나가며 만들어지는 웃음들이 이어진다. 반면 이시영은 실제 복서에 만만찮은 피지컬을 갖고 있다는 측면에서, 또 걸그룹 빌리의 멤버인 츠키는 너무나 평범해 진짜 쩔쩔 매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정반대로 리얼을 강조하는 출연자들로 등장해 프로그램에 균형을 맞춘다. 그리고 이들로 시작한 출연진은 마트에서 새로이 만난 유희관, 조나단, 파트리샤, 꽈추형(홍성우), 덱스까지 합류하면서 본격적인 리얼 생존 게임 속으로 들어간다.

리얼 생존 게임은, 주유소에서 기름 넣어 도망치기, 마트에서 생필품 챙기기, 주차장에서 키가 맞는 차를 찾아내고 가로막고 있는 차들 사이를 빠져나오기 같은 평시라면 하나도 미션이 될 것 같지 않지만 좀비들이 득시글대는 상황 속에서는 결코 쉽지 않은 상황 속에서 펼쳐진다. 여기에 공장에서 철창에 갇힌 동료 구해내기, 놀이공원에서 좀비들 사이에 갇힌 사람들 구하기 등등 여러 공간을 통한 다양한 게임들이 더해졌다. 물론 그간 무수한 리얼 버라이어티쇼에서 다양한 게임들이 미션으로 제시됐지만, '좀비버스'는 좀비라는 특징이 더해지면서 미션 자체가 새롭게 다가오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제작진의 야심이 느껴지는 거대한 스케일과 극적 반전이 들어 있기도 하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좀비버스' 스틸컷.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좀비버스' 스틸컷.

◆캐릭터쇼의 묘미…리얼에 대한 의구심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좀비버스'의 매력은 캐릭터쇼로서의 묘미다. 특히 최근 예능 대세로 떠오른 덱스의 맹활약은 '좀비버스'에서도 대체 불가다. 군대 서바이벌부터 연애 리얼리티, 게임 서바이벌 같은 특정 상황에서의 남다른 리얼 서바이벌의 모습을 강점으로 가졌던 덱스는 '좀비버스' 같은 가상의 위기 상황에서도 마찬가지의 리얼한 자세를 보여준다. 어찌 보면 연기를 하는 좀비들조차 당황했을 법한 덱스의 놀랍고도 과감한 행동들은 프로그램 끝까지 이어지며 그가 왜 요즘처럼 리얼을 요구하는 예능판의 대세가 됐는가를 증명해 보여준다.

노홍철 역시 '무한도전' 시절부터 리얼 캐릭터로 끄집어냈던 '무한 이기주의'를 '좀비버스'에서도 여지없이 보여주며 동료지만 빌런으로서의 자극점과 재미요소들을 만들어낸다. 여기에 적당히 이기적이면서도 적당히 솔선수범하는 꾀돌이 딘딘이나, 일찌감치 좀비에게 물려 점점 좀비가 되어가는 상황 속에서 두려움과 분노 때론 헌신까지 보여주는 박나래도 매력적이고, 은연중에 리더십 역할을 하는 꽈추형과 여성 히어로 같은 적극적인 모습으로 전면에 나서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이시영도 빼놓을 수 없다.

그렇지만 너무 유기적으로 스토리나 흐름이 잘 맞아 돌아가서일까. 아니면 이러한 캐릭터 기반 리얼 게임 예능에 베테랑인 출연자들 때문일까. 어쩔 수 없이 제기되는 건 리얼에 대한 의구심이다. 과거 '무한도전'이 좀비 특집을 했을 때를 떠올려 보라. 결국 겁에 질린 박명수가 혼자 살기 위해 사다리를 오른 후 그걸 치워버림으로써 엄청난 스케일로 준비한 것들이 순식간에 끝나버리는 결과를 만들지 않았던가. 그 특집은 그래서 실패로 돌아갔지만, 시청자들에게 그 실패는 이 프로그램이 가진 리얼리티를 납득시킨 바 있다.

이것과 비교하면 '좀비버스'는 거의 완벽하게 맞아 돌아가는 스토리들을 보여줬다. 갖가지 미션들 속에서도 또 캐릭터들의 일관된 모습을 통해서도 그렇다. 그래서 대본이 혹시 있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나왔고 여기에 대해 제작진은 100% 리얼이라고 선을 그었다. 만일 진짜 리얼이라면(아마도 그럴 가능성이 높지만) 그간 캐릭터쇼라는 가상의 경험치들이 많아져 이제 그걸 풀어가는 데도 능숙해졌다는 뜻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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