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중기의 필름통] 스타일리시한 대사 돋보이는 가이 리치의 신작…‘스파이 코드명 포춘’

영화평론가

'스파이 코드명 포춘'의 한 장면.
'스파이 코드명 포춘'의 한 장면.
'스파이 코드명 포춘'의 한 장면.
'스파이 코드명 포춘'의 한 장면.

'스파이 코드명 포춘'(감독 가이 리치)은 첩보액션물이다.

톰 크루즈의 '미션 임파서블:데드 레코닝 파트 원'이 개봉된 지 한 달 만에 찾아온 가이 리치식(?) 스파이들의 '밀당' 첩보물이다. 톰 크루즈 대신 한 주먹 하는 제이슨 스타뎀이 출연하고, 올해 63세의 휴 그랜트가 빌런으로 등장한다.

영화는 한 남자의 경쾌한 발소리로 시작된다. 그 박자에 맞춰 한 보안시설이 무장 괴한들에게 털리는 총격전이 겹쳐진다. 총격은 무음으로 처리되고 구둣발 소리만 요란하게 울린다. 가이 리치의 스타일리시한 오프닝이다.

그리고 지령이 떨어진다. 무장괴한들에게 강탈당한 것은 전 세계의 안보를 위태롭게 할 수 있는 '핸들'이라는 이름의 장비다. 영국 정보국은 이를 찾아올 드림팀을 구성한다. 제 멋 대로지만 맡은 임무는 완벽하게 수행하는 오슨 포춘(제이슨 스타뎀)이 대장이고, 미모의 스파이 사라 피델(오브리 플라자)과 명사수 J.J. 데이비스(벅지 말론)가 그를 지원한다.

'스파이 코드명 포춘'은 가볍게 볼 수 있는 킬링 타임용 영화다. 적당한 격투가 있고, 카체이싱이 있고, 총격전도 있다. 무엇보다 빌런과의 은밀한 '밀당'이 신세대 첩보물의 맛을 선사하는 영화다.

전 세계 최대의 무기 암거래상 그렉 시먼즈(휴 그랜트)가 '핸들'을 거래한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오슨 포춘팀은 그렉이 주최하는 자선행사에 잠입한다. 그랙이 좋아하는 할리우드 배우 대니 프랜시스코(조시 하트넷)가 미끼이다. 초호화 유람선에 올라탄 그들은 대니에게 홀린 그렉을 상대로 '핸들'의 행방을 쫓는다.

'가이 리치식(?) 첩보물'이라고 표현한 것은 그의 감각적인 연출 때문이다. '알라딘'(2019)으로 잘 알려진 가이 리치는 뮤직비디오 연출자 출신으로 영화계에 새바람을 몰고 온 감독이었다. 1999년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와 2001년 '스내치' 등 영국식 블랙 유머가 담긴 색다른 영화로 관객의 환호를 받았다.

연출과 함께 각본까지 쓰면서 그의 영화에서 빠지지 않는 특징이 있었으니 바로 대사를 통해 스타일리시한 맛을 선사하는 것이다. 짧게 치고 빠지며 주고받는 대사는 캐릭터들을 생동감 넘치게 만들었다.

이 영화 또한 그의 독특한 유머가 살아 있다. 말수가 적은 오슨 포춘이 시니컬하게 뱉어내는 단답형 대사들이 빌런인 억만장자 그렉, 요란한 할리우드 배우 대니, 음담패설도 마다하지 않는 미모의 팀원 사라 피델 등에게 잘 스며든다.

'스파이 코드명 포춘'의 한 장면.
'스파이 코드명 포춘'의 한 장면.
'스파이 코드명 포춘'의 한 장면.
'스파이 코드명 포춘'의 한 장면.

제이슨 스타뎀은 '리볼버'(2005)와 '캐시트럭'(2021)에 이어 첩보물로 다시 가이 리치와 호흡을 맞췄다. 첩보물이어서 그의 액션이 주가 되지는 않지만, 간간히 터져 나오는 액션의 타격감이 살아 있다.

세월의 흔적이 얼굴에 가득 피어난, 휴 그랜트 또한 미워할 수 없는 낭만 빌런으로 정감을 준다. 유머러스하고, 예술적 감성이 있고, 무엇보다 영화를 사랑하는 돈 많은 부자 '아저씨'의 풍모를 잘 보여준다. 해킹과 도청 전문가인 사라를 연기한 오브리 플라자도 매력을 발산한다. 팀의 두뇌 역할을 하는 사라는 미모로 그렉의 호감을 사고, 몸을 사리지 않는 총격을 보여준다.

미국과 영국, 프랑스, 스페인, 튀르키예 등 전 세계 로케이션으로 눈도 즐겁게 한다. 액션 또한 중무장한 무장 헬기에서 미사일이 발사되고, 낭떠러지 절벽에서 펼쳐지는 자동차 추격전 등 첩보물에 있을 법한 액션신은 어김없이 등장한다.

'가이 리치'라는 명성이 이 영화의 장점이 되지만, 한 편으로 기시감이 드는 진부함 또한 어쩔 수 없는 그의 몫이다. B급 유머와 판에 박힌 첩보물의 클리셰가 그의 연출 스타일과 엮이면서 '어중간한' 어떤 지점에 놓이고만 것이다.

캐릭터들은 각자가 매력적이지만, 모아놓으니 모래알처럼 푸석하고 네트워크를 뚫고 드나드는 고난도 첩보도 너무나 간단하고, 살육의 총격전 또한 지나치게 수월하다. 첩보물의 생명인 긴장감 대신 수다스러운 화려함만 남은 것이다. 속독하면서 책장을 빨리 넘기는 재주만 뛰어난 느낌이다.

킬링 타임용 스파이 액션을 원하는 관객들에게는 무난할 수 있지만, 가이 리치의 매력을 원하는 관객들에게는 '어중간'하다. 114분. 15세 이상 관람가.

김중기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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