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중기의 필름통] 알프스 배경으로 한 두 남자의 인생과 우정…리뷰 ‘여덟 개의 산’

두 소년이 장년에 이르기까지 40년의 삶과 우정 그려내
알프스 산자락 마을 배경…한 폭의 그림 같은 장면들

영화 '여덟 개의 산'의 한 장면.
영화 '여덟 개의 산'의 한 장면.
영화 '여덟 개의 산'의 한 장면.
영화 '여덟 개의 산'의 한 장면.

거대한 설산을 머리에 인 오두막, 맑은 호수와 빙하, 눈과 바람, 그리고 두 사람.

20일 개봉하는 '여덟 개의 산'(감독 펠릭스 반 그뢰닝엔·샤를로트 반더미르히)은 번잡한 세상을 떠나 성찰의 시간을 갖게 해주는 아름답고, 숭고한 영화다. 두 소년이 장년에 이르기까지 40년에 걸쳐 함께 하는 우정이 줄기지만, 영화는 많은 생각의 가지들을 뻗어 마음을 충만하게 만든다.

이탈리아 북부 알프스 산자락 마을. 도시소년 피에트로(루포 바르비에로)는 11살 동갑의 브루노(크리스티아노 사셀라)를 만난다. 둘은 산과 계곡을 뛰어다니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피에트로가 아버지를 따라 도시로 나가면서 둘을 떨어져 여름을 보내게 된다. 나이가 들면서 둘은 다른 길을 걷게 되지만, 피에트로의 마음은 늘 브루노가 있는 그 산을 향한다.

'여덟 개의 산'은 외줄기 삶을 살아가는 우리를 거대한 산의 한 모서리에 던져 놓고 "뭐, 별거 아니지?"라는 듯 하찮게 만든다. 인간은 아득바득하지만, 빙하는 수천년의 기억을 담고 그대로 있다. 눈에 덮이고, 때로는 석양에 불타지만 산 또한 태고의 모습 그대로다.

청년이 된 피에트로는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 어릴 때 함께 산을 오르던 아버지와도 관계가 소원해진다. 도시를 방황하는 여느 청년들과 같은 존재일 뿐, 작가의 길 또한 멀기만 하다. 브루노는 항상 산을 지킨다. 소를 키워 우유를 짜고 치즈를 만든다.

알프스에 오두막을 지어달라는 아버지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 둘은 다시 만난다. 돌을 날라 집을 짓는다. 그리고 그 집은 둘에게는 유일한 마음의 안식처가 된다.

영화는 침묵의 아름다움이 뭔지를 잘 보여준다. 외롭고, 슬프지만 그냥 홀연히 네팔을 여행하는 피에트로나 자식을 낳고 가정을 이루며 힘들게 살아가는 브루노 또한 마찬가지다. 떠났다가 다시 만나고, 함께 이름을 부를 뿐이다. 그 사이 나무는 계절을 입고, 산 그림자는 시간을 그려낸다. 둘은 번다한 삶의 표현보다 자연의 소리로 대신한다.

노스텔지아를 자극하는 음악이 가슴을 적신다. "나는 당신을 계속 생각해요. 거의 매일." '스웨덴의 밥 딜런'이라고 불리는 다니엘 노르그렌의 포크 선율과 서정적 가사가 음유시인의 흥얼거림처럼 마음을 울린다.

영화 '여덟 개의 산'의 한 장면.
영화 '여덟 개의 산'의 한 장면.
영화 '여덟 개의 산'의 한 장면.
영화 '여덟 개의 산'의 한 장면.

영화는 항상 산을 스크린에 가득 채운다. 심지어 화면 비율 또한 2대 1도 아닌 1.37대 1의 비율로 촬영했다. 산처럼 뾰족하다. 산이 주인공이고, 인간의 서사는 삶의 부스러기처럼 느껴진다.

성년이 된 피에트로의 도시 친구들이 와서 "자연이 아름답다"고 말한다. 브루노는 이것은 나무이고 풀이고, 구름이고, 호수이지 그렇게 뭉뚱그려 말하지 말라고 한다. 인간조차 옮겨 심은 나무처럼 그 속에 하나의 존재라는 것이다.

아버지와 함께 등반했던 그 산을 피에트로가 다시 오르면서 회한에 젖는다. "나는 아버지처럼 되지 않을거야"라며 아버지 가슴에 못을 박았던 기억.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 가슴에 담는다.

피에트로가 브루노에게 이렇게 말한다. "잘 봐. 이게 세상이야. 여덟 개의 산이 있고, 그 중심에는 가장 높은 수미산이 있어. 가장 높은 수미산에 오른 사람과 여덟 개의 산을 다 여행한 사람 중에 누가 더 많이 배울까?" 수미산은 인도 신화에 나오는 성스러운 산이자, 불교의 세계관을 나타내기도 한다.

피에트로와 브루노의 상반된 삶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피에트로는 항상 떠난다. 네팔의 작은 마을에서 아이들의 웃음을 듣고, 흔들리는 오색 깃발에 마음을 내려놓는다. 그러나 브루노는 그 산자락을 떠나지 못한다. 가난을 견디지 못한 아내와 딸이 떠나도 그는 그 산을 떠날 수가 없다. 도시로 나가 직장을 잡으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지만, 그는 그런 선택을 하지 못한다. "산을 나에게 아무런 해를 입힌 적이 없어."

'여덟 개의 산'은 이탈리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문학상인 스트레가상과 프랑스 3대 문학상인 메디치 상을 수상한 파올로 코녜티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영화 '뷰티풀 보이'(2019)로 잘 알려진 펠릭스 반 그뢰닝엔 감독과 그의 부인 샤를로트 반더미르히가 공동 감독을 맡았다.

알프스의 변화하는 모습을 제대로 담기 위해 해발 2천m에 세트를 직접 지어 촬영했다. 산 중턱의 맑은 호수와 계곡, 눈 덮인 오두막, 야생화와 청량한 하늘 등 장면마다 한 폭의 그림 같다. 그 속에 녹아든 두 남자의 삶 또한 그 그림처럼 아름답기 그지없다. 20일 개봉 예정. 147분. 12세 이상 관람가.

김중기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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