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중기의 필름통] 슈퍼스타이자 무명가수였던 그의 삶…‘서칭 포 슈가맨’

식스토 로드리게즈 지난 8월 별세…메모리얼 재개봉

영화 '서칭 포 슈가맨'의 한 장면.
영화 '서칭 포 슈가맨'의 한 장면.

세상에는 사람을 놀라게 하는 일들이 생기곤 한다.

이변이라는 말로, 또는 기적이라는 말로 놀라움을 표현하는데, 참으로 경이로운 일이 팝계에 일어났다.

때는 1970년대 미국으로 거슬러간다. 이때는 비틀스와 사이먼 앤 가펑클, 아바와 올리비아 뉴튼 존 등 대히트 가수들의 시대였다. 그러나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한 가수가 있었다. 음반 제작사 대표는 그가 밥 딜런을 능가할 음유시인이었다고 했다. 당연히 그는 그 가수를 찾아가 음반을 제작했다.

그러나 음반 판매는 6장이 고작이었고, 그 어떤 라디오 프로그램에서도 그들을 초대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폭망이었고 곧이어 그 가수는 사라졌다. 그는 예전에 하던 일로 돌아갔다. 벽돌공으로, 공사판 인부로 미국 하층민 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나 놀라운 일은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났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이하 남아공)에서 그의 앨범이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며 해적판이 속출한 것이다. 웬만한 집에는 세 가수의 LP가 있었는데 비틀스와 사이먼 앤 가펑클, 그리고 이 가수의 것이었다.

그의 이름은 식스토 로드리게즈(1942~2023). 지난 8월 8일 향년 81세로 세상을 떠난 비운의 가수 아니, 기적을 부른 음유시인이었다. 그의 기적 같은 삶을 기리기 위해 오는 11일 그의 다큐멘터리 영화 '서칭 포 슈가맨'(감독 말릭 벤젤룰)이 재개봉한다.

스웨덴 감독 말릭 벤젤룰은 이 영화가 세상에 공개된 지 3년 만인 2014년 사망했으니 감독과 주연이 모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말릭 벤젤룰은 로드리게즈의 실화를 알고, 다큐멘터리 제작에 들어갔으나 제작비를 못구해 스웨덴 한 라디오 방송국의 지원을 받아 겨우 영화를 완성했다.

식스토 로드리게즈의 생전 모습.
식스토 로드리게즈의 생전 모습.
식스토 로드리게즈의 데뷔 음반인 'Cold Fact' 표지.
식스토 로드리게즈의 데뷔 음반인 'Cold Fact' 표지.

이 영화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장편 다큐멘터리상 수상을 비롯해 전 세계적인 화제를 모았다. 한 가수의 인생유전이 이처럼 극명한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그가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음악성 또한 대단히 뛰어났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 2주 전 직장을 잃고/ 비가 샴페인을 머금고 에스토니아의 대천사가 날 취하게 했지/ 내 생애 가장 달콤한 키스는 내가 맛본 적 없는 것이니.' 그가 음반사에서 해고된 것이 크리스마스 2주 전이다. 마치 자신의 행로를 알고나 있었던 듯 이런 가사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로드리게즈는 두 장의 앨범, 1집 'Cold Fact'(1970), 2집 'Coming from Reality'(1971)를 발매했다. 'Sugar Man', 'I Wonder', 'Crucify Your Mind' 등 수록곡들은 통기타에 어울리는 음색에 독특한 멜로디, 시대를 거부하는 노랫말로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이때 한 미국인 여성이 'Cold Fact'의 앨범을 남아공에 있던 남자친구에게 가져간 것이 남아공 전파의 배경으로 알려졌다. 당시 남아공은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정책)을 고수하던 시기였다.

아파르트헤이트의 차가운 현실에서 그의 노래는 방송금지곡으로 지정될 정도로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그는 혁명의 아이콘이 됐다.

노래가 유행하면서 어떤 가수인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음반 가게를 하는 시거맨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는 로드리게즈의 곡 '슈가맨' 때문에 곧잘 슈가맨이라 불리기도 했다. 그가 사람들에게 물어보았으나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었다. 미국 사람은 알 줄 알았지만, 대부분 그의 곡조차도 몰랐다.

어떤 사람은 권총 자살을 했다고 했고, 무대에서 분신 자살을 했다는 이도 있었다. 그는 로드리게즈를 수소문한다. 단서라고는 오직 그의 노래 가사뿐. 기발한 추격 끝에 슈가맨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된다. 그리고 그의 삶이 세상에 알려진다.

영화 '서칭 포 슈가맨'은 제목처럼 그의 행방을 추적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당시 시대 상황과 그를 기억하는 이들의 증언이 곁들여지며 그의 곡이 얼마나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는지를 잘 보여준다. 마치 추적물처럼 긴장감이 넘치며, 사이사이 그의 아름다운 곡들을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

무엇보다 감동적인 것은 추적이 끝날 때쯤이다. 시대를 뛰어 넘는 기적의 순간이 관객을 감동시킨다.

예술가에게 필요한 미덕 중 최고는 진정성일 것이다. 진실이 거짓 없는 상태라면, 진정성은 참된 성질이다. 로드리게즈의 진정성이 미국에서는 외면당했지만, 그 참됨은 사라지지 않고, 먼 이국에서 발현됐으니 참으로 가치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86분. 전체 관람가.

김중기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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