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지진 상처를 음악으로 치유하는 소녀…영화 '키리에의 노래'

이와이 슌지 음악 영화…부산영화제 때보다 분량 1시간 줄여

영화
영화 '키리에의 노래' 속 한 장면. 미디어캐슬 제공

키리에(아이나 디 엔드 분)는 동일본 대지진으로 삶을 송두리째 빼앗긴 소녀다.

초등학생이던 그는 자신을 구하러 온 언니와 함께 쓰나미에 휩쓸렸다. 키리에는 나무에 매달려 겨우 목숨을 부지했지만, 언니는 변을 피하지 못했다.

그는 가족을 모두 잃고서 무작정 오사카로 향하는 트럭에 몰래 탄다. 언니의 남자친구 나츠히코(마쓰무라 호쿠토)가 오사카에 있다는 얘기를 언뜻 들은 것 같아서다.

낯선 대도시에 도착한 키리에는 길거리 음악 공연에서 노래 실력을 뽐낸다. 어린아이의 재롱에 사람들은 환호를 보내지만, 키리에는 이들에게 감사 인사조차 전할 수 없다.

그는 대지진 충격으로 말소리를 크게 내지 못한다. 옆 사람만 귀를 기울여야만 겨우 들을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노래할 때만큼은 완전히 돌변한다. 마이크 없이도 거리가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목 놓아 노래 부른다. 말 대신 음악으로 자기 마음을 전하는 것처럼 들린다.

이와이 슌지 감독의 신작 '키리에의 노래'는 재난이 남긴 깊은 상흔을 노래로 치유해가는 청춘의 이야기다. 이와이 감독 특유의 감성에 음악이 어우러져 키리에의 성장기는 더 아름답게 보인다.

대지진 전후 어린아이 때, 고교생 시절, 거리의 음악가가 된 지금의 키리에 모습을 교차해 보여주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이 영화는 앞서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약 3시간에 달하는 감독판으로 공개됐다. '러브레터'(1995), '4월 이야기'(1998), '하나와 앨리스'(2004), '릴리 슈슈의 모든 것'(2005) 등 수많은 명작을 선보인 이와이 감독의 새 영화를 향한 기대감이 너무 컸던 탓일까. 영화제 당시 일부 관객은 노래를 부르는 부분이 필요 이상으로 길고, 스토리 또한 들쭉날쭉하다며 실망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러나 국내 개봉 버전은 감독판에서 약 1시간 분량을 자른 편집본이라 보다 간결하게 내용이 전개된다. 버스킹 장면 역시 상당 부분 줄였다. 키리에의 노래 한 곡을 통째로 담은 모습은 일부 클라이맥스에서만 볼 수 있다.

실제 가수인 아이나 디 엔드는 영화에 나오는 여섯 곡을 직접 만들었다. 이 가운데 한 곡은 이와이 감독이 가사를 썼다. 울부짖는 것처럼 들리는 허스키한 목소리와 생의 의지가 엿보이는 가사가 조화됐다.

아이나 디 엔드는 이 작품이 첫 영화지만, 노래는 물론 깊은 감정 묘사까지 썩 괜찮은 연기를 보여준다. 키리에의 매니저를 자처하는 친구 잇코 역의 히로세 스즈와 나란히 있는 그림은 이와이 감독의 대표작 '하나와 앨리스'를 떠오르게 한다. 이와이 감독 주특기인 불안정한 예쁜 소녀 보여주기는 이번에도 빛을 발한다.

그러나 스토리는 편집에도 불구하고 갈피를 잡지 못하고 나아간다. 이와이 감독의 따뜻한 시선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세 청춘의 이야기에 몰입하기에는 섬세함이 부족한 면이 있다.

11월 1일 개봉. 119분.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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