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중기의 필름통] 리뷰 ‘소년들’

영화평론가

비 오는 날 밤, 전북 완주군 삼례읍의 작은 슈퍼마켓에 세 명의 강도가 들이닥친다. 약간의 패물과 현금이 도난 당한다. 그러나 테이프로 입이 막힌 할머니가 질식사한다. 사건은 강도살인사건으로 커지고, 9일 만에 세 명의 소년이 범인으로 지목돼 검거된다.
노장 정지영 감독의 '소년들'은 이 사건이 경찰과 검찰에 의해 조작됐음을 고발하는 영화다. 1999년 일어난 삼례나라슈퍼 사건을 모티브로 극적인 장치들을 첨가했다.
억울하게 범죄에 휘말려 누명을 쓴 이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법을 잘 모르고, 주위에서 도와주는 이 없는 힘없는 소년들은 그렇게 진범으로 확정된다. 글자를 쓸 줄도 모르는 아이에게 진술서를 받고, 주먹으로 협박해서 자백을 받아낸 것이다. 이렇게 해서 경찰은 팀 전체가 1계급 특진하고, 팀장은 승승장구한다.
그러나 소년들은 감옥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사회에 나왔지만 여전히 살인자로 손가락질을 당한다. 결국 평생을 살인자로 살아가야 할 아이들은 억울함을 호소한다. "나는 살인자가 아니다." 그렇게 재심을 청구한다.
재심은 쉽지 않은 법적 절차다. 이미 확정 판결이 나서 종결된 사건을 다시 열 때는 판결에 중대한 결함이 발견됐을 경우에만 해당된다.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이 대표적인 에이다. 이때도 경찰이 폭행과 위법수사로 15살 소년에게 살인누명을 씌웠다가 16년이 지나 재심을 통해 결국 무죄로 선고 받았다.
양심을 가진 깨어있는 이들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소년들'에서는 형사반장 황준철(설경구)이 그 일을 맡는다. 그는 사건 다음해인 2000년 완주경찰서 강력반에 부임한다. 이때 사건에 진범이 따로 있다는 제보를 받는다. 위선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영화는 그의 캐릭터를 '미친개'로 집약시킨다. 한번 물면 놓치 않는 근성 있는 형사로 검거율도 높다. "이것이 무슨 수사여? 똥이제!" 그러나 그는 '조직에 똥칠하는 배신자'로 낙인 찍혀 부당한 처우를 받는다.
황준철은 영화를 위한 허구의 캐릭터이다.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을 진두지휘했던 황상만 형사를 모티브로 했다고 한다. '미친개'의 이미지에는 설경구 배우의 히트작 '공공의 적'에서 강철중 형사를 떠올리게 한다.

제보로 사건을 조사하던 2000년과 재심이 이뤄지는 2016년을 오가는 구성으로 영화가 진행된다. 설경구 배우도 16년의 간극을 잘 메워 나간다. 조직에 반하는 배신자로 오랜 시간 외지를 떠돌다 정년을 1년 앞두고 다시 이 사건을 파헤친다. 이젠 과거의 패기 보다는 인생의 종착점에서 양심에 거리낌 없는 선택을 한다.
영화는 선함을 강조하는 전형적인 '착한' 영화이다. 후반부 법정에서의 다툼 또한 충분히 예상가능하다. 웅장한 음악을 깔며 비장미와 감동을 전하려고 애를 쓴다. 영화의 악인이 최우성(유준상)이다. 그는 실적을 위해 소년들을 희생시키는 위법 수사, 자백 강요의 장본인이다. 뻔뻔함의 극치를 보여주는데, 영화는 선과 악의 격한 대결보다는 선한 황준철에 비중을 두었다. 그러다보니 극적 카타르시스가 약한 아쉬움이 남는다.
감독은 판에 박힌 법정 스릴러 보다는 이런 일이 재현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강해 보인다. 소외되고 약한 이들에게 선함을 베푸는 관심과 배려를 촉구한다.
여든을 바라보는 정지영 감독은 '부러진 화살'(2012), '남영동 1985'(2012), '블랙머니'(2019) 등 시대의 부조리를 다룬 사건에 관심을 가지고 영화로 만들어오고 있다. '소년들' 또한 그런 연장선이다.

'소년들'은 설경구, 유준상을 비롯해 쟁쟁한 배우들이 포진해 정지영 감독의 '행진'에 함께 동참한다. 검사 역의 조진웅, 아내 역의 엄혜란, 동료 경찰로 정원중, 박철민, 박원상, 허성태 등이 출연한다. 청년이 된 세 소년들에 김동영, 유수빈, 김경호와 서인국, 진경 등도 눈길으르 끈다.
'소년들'의 사건이 1999년이지만, 지금도 재현될 수 있는 일이다. 강압수사의 그림자는 여전하고, 자신의 영달을 위해 법을 오남용하는 약싹빠른 이들이 활개를 치는 세상,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누구도 나서지않고, 진실 또한 가려지는 방관자들의 세상이 되지 말기를 '소년들'이 보여주고 있다. '이 사건으로 처벌을 받은 경찰이나 검찰은 아무도 없다'는 자막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123분. 15세 이상 관람가.
김중기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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