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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225>난로회, 시월 초하루 세시풍속

미술사 연구자

작가 미상,
작가 미상, '상춘야연도(賞春野宴圖)', 비단에 담채, 58.3×37.5㎝,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매화꽃 핀 계절 3명이 불판 앞에 둘러앉아 고기 파티 중이다. 제일 왼쪽 갓을 안 쓴 분의 집에서 가까운 곳이다. 이 분은 주최 측 답게 긴 젓가락으로 뒤적이며 고기를 굽는 중이고, 그 옆에서는 고깃점을 입으로 가져간다. 한 명은 얼굴을 가리는 차면선(遮面扇)을 들고 뒷짐 진 채 이런 모습을 내려다본다. 이 분은 왜 서있는 걸까. 상중인지? 소고기를 못 드시는지? 채식주의자인지?

중국에서는 송나라 때부터 겨울이 되면 화로에 고기를 구워 먹는 난로회(煖爐會)가 있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난로회가 그림으로, 기록으로, 시로 전한다.

홍석모의 '동국세시기'(1849년)에 "서울 풍속에 화로에 숯불을 피워 전철(煎鐵)을 올려놓고 소고기를 굽는데 기름, 간장, 계란, 파, 마늘로 조미하고 산초가루를 뿌려 화롯가에 둘러 앉아 먹는다. 이것을 난로회라 한다"고 했다.

정조 때 시인 신광하는 '벙거짓골에 소고기를 굽다', '영전철자육(詠氈鐵煮肉)'에서 난로회 광경을 이렇게 묘사했다.

절육배전철(截肉排氈鐵)/ 고기 썰어 벙거짓골에 늘어놓고

분조옹화로(分曹擁火爐)/ 몇 사람씩 화로를 둘러앉는다

전고약회전(煎膏略回轉)/ 자글자글 구우며 대강 뒤집다

방저이허무(放筯已虛無)/ 젓가락을 뻗어보니 벌써 다 없어졌다

거국잉성속(擧國仍成俗)/ 온 나라에 유행하는 새 풍속은

신방근출호(新方近出胡)/ 근래에 북쪽에서 새로 들어온 요리법

의관감포체(衣冠甘餔餟)/ 의관을 갖춘 양반들이 맛있게 먹지만

군자원포주(君子遠庖廚)/ 군자라면 직접 요리하는 일을 멀리해야지

짧은 시에 조리 도구와 조리법, 이전에 없던 새로운 식도락으로 양반들 사이에 유행했다는 점, 군자의 체통에 직접 구워가며 먹는 일이 마땅치 않았던 점, 고기 쟁탈전의 눈치 보기까지 생생하다.

무쇠 벙거짓골인 '전철'은 불판 모양이 군인들이 쓰던 벙거지인 전립(氈笠)과 비슷해 붙여진 이름이다. 챙이 둥글고 넓은 전립을 뒤집어 놓은 모양인 벙거짓골은 움푹 들어간 가운데에는 채소를 데치고 둘레에 고기를 굽는다. 쇠로 만든 갓처럼 생겼고 테두리에 고기를 굽는다고 해서 철립위(鐵笠圍)라고도 했다. 이 그림 속 불판은 둥글넓적해 솥뚜껑을 뒤집어 활용한 듯하다.

닥쳐올 한기를 막기 위해 추운 계절을 앞두고 몸보신을 하는 시식(時食)인 난로회는 시월 초하루 세시풍속이었다. 오늘이 음력 10월 1일이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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