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골든걸스’, 디바들의 걸 그룹 도전기

KBS ‘골든걸스’, 박진영이 이끄는 인순이, 신효범, 박미경, 이은미 걸 그룹 도전

KBS '골든걸스'. KBS 제공
KBS '골든걸스'. KBS 제공

인순이, 신효범, 박미경, 이은미. 말이 필요 없는 디바들이다. 나이도 적지 않다. 그런데 이들이 하나의 팀이 되어 걸 그룹이 된다? KBS '골든걸스'는 그 기획 자체가 도발적이다. "과연 이게 가능해"라고 묻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게 진짜 된다고? 박진영의 상상이 현실이 되는 순간

누군가를 찾아가는 박진영의 발걸음이 꽤 무겁게 느껴진다. 무수한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중심 축의 역할을 해왔고, 그걸 통해 실제 아이돌 그룹들을 여러 차례 만들었던 그에게 이런 모습은 어딘가 낯설다. 그가 가장 먼저 만나는 인물은 의외로 신효범이다. '난 널 사랑해'라는 곡으로 여전히 우리의 뇌리 깊숙이 무대를 장악하는 디바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가수. 데뷔 36년차 선배이니 박진영 또한 긴장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해 보인다. 물론 신효범을 '누나'라고 편하게 부르는 박진영이지만 그가 긴장하는 건 자신의 제안이 다소 황당할 수 있어서다.

"난 음악에 대해서 뭔가 계속 타올라. 1980년대, 90년대 소울 음악이 너무 좋은데, 사실 우리 회사에서 나오는 아이돌 걸 그룹, 보이그룹이 그런 걸 전혀 안하니까. 그래서 갑자기 내 머릿 속에… 미경이 누나, 누나, 은미 누나, 인순이 선배님을 걸 그룹을 한 번 만들면 어떨까…" 조심스럽게 내놓는 박진영의 그 제안에 신효범은 한 마디로 이렇게 답한다. "미친 거지."

신효범은 미쳤다고 했지만, 이 장면은 KBS '골든걸스'가 앞으로 그려나갈 무대들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높여 놓는다. 박진영의 제안은 실제로 '미친 소리'처럼 들리는 게 사실이다. 절친들인 신효범, 이은미, 박미경은 모두 36년차, 34년차 그리고 39년차 가수들이고 인순이는 심지어 46년차 가수다. 게다가 물론 젊은 시절 인순이는 그룹 활동을 한 적이 있지만 모두가 솔로로서 대부분의 가수 활동을 해왔다. 이들이 디바라 불리는 건, 혼자서도 무대를 꽉 채우는 가창력의 소유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을 한 데 모아 걸 그룹을 한다니. 미친 소리가 아니고 무엇이겠나.

하지만 방송 프로그램으로서나, 혹은 어떤 콘텐츠 기획에 있어서 '미쳤다'는 표현은 '좋다'는 의미로 쓰이는 경우도 있다. 그 누구도 상상해보지 못한 아이템이 나올 수 있어서다. 박진영의 상상은 그런 의미에서 처음에는 디바들이 헛웃음을 짓게 만들지만, 또한 그들을 웃게 만든다. "아니 재밌는 상상이긴 하다"라고 신효범이 반응을 보인 건 그래서다. 이건 제작진도 시청자들도 마찬가지다. 이게 과연 되는 이야기일까 싶어지는 것.

게다가 어찌 어찌 이 네 명의 디바들을 설득시킨 박진영이 제안한 첫 번째 미션은 더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 신효범이 트와이스의 'Feel special'을 부르고, 박미경이 아이브의 'I AM'을 부르며, 인순이가 뉴진스의 '하입보이'를, 또 이은미가 청하의 '벌써 12시'를 부르라는 것이 그 미션이다.

시청자들도 상상할 수 없는 미션인데, 놀라운 건 이를 실현해내는 디바들의 면면이다. 연습에 연습을 거쳐 각자 간이 무대에 올라 선보이는 자리, 박진영은 이들의 노래와 퍼포먼스를 보며 연실 놀라움의 탄성을 지른다. "이게 된다고?" 자신도 확신할 수 없었던 '미친 제안'이 현실이 되는 순간 터지는 탄성. 바로 이 지점에서 '골든걸스'라는 프로그램의 매력이 폭발한다.

KBS '골든걸스'. KBS 제공
KBS '골든걸스'. KBS 제공

◆디바들의 현재 적응기가 끌어내는 공감대

흔히 기성세대들을 '실버'라고 부르듯이, '골드'라는 표현에는 아마도 연령대의 의미가 담겨 있을 게다. 그도 그럴 것이 벌써 데뷔 30, 40년차에 이른 디바들이 어느 정도의 세대라는 걸 우리는 상상할 수 있다. 이것은 음악적으로도 그렇다. 이들이 처음 활동을 시작하던 때는 '아날로그' 음반과 공연의 시대였다. 무대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당대의 가수들에게 필요했던 건 좌중을 압도하는 가창력이다. 한 마디로 무대에서 객석 저 뒤편까지 쩌렁쩌렁 울리는 폭풍 성량과 초절정 고음이 마치 가수들이 반드시 장착해야할 무기처럼 여겨지던 시대였다.

하지만 요즘은 어떤가. 디지털 음원의 시대이고, 공연보다 언제 어디서나 음악을 반복적으로 듣는 시대다. 그러니 너무 센 소리들은 오히려 듣기 불편해졌다. 초절정 고음은 한 번 들을 때 소름이 돋을지 몰라도 계속 반복해서 듣기엔 어딘가 부담스러워졌다. 자연스럽게 현재의 가요들은 이 변화된 환경에 적응했다. 고음에서 진성만을 강조하던 과거에 달리 아름답고 듣기 편안한 가성이 그 자리를 대치하게 됐다.

이러니 '골든걸스'에서 박진영에게 등 떠밀려 걸 그룹을 하겠다고 덜컥 나서긴 했지만 이들 디바들이 요즘 스타일의, 그것도 걸 그룹 노래를 소화하려면 그들이 해왔던 가창 방식을 바꿔야 하는 도전적인 상황이 생겨났다. 박진영은 이러한 트렌드 변화를 이야기하며 엄청난 성량으로 무대를 압도하던 신효범이나 인순이에게 스트리밍 시대에 맞춰 '말하듯' 노래 해달라고 디텍팅을 한다. 물론 요즘 트렌드에 맞게 퍼포먼스도 빠지지 않는다. '맨발의 디바'라 불리며 춤이라는 건 해본 적도 없는 이은미에게 걸 그룹으로서 다 함께 춰야 하는 춤을 요구한다.

지금까지 해왔던 방식들을 잠시 접어두고 지금 현 트렌드에 맞는 노래와 춤에 도전한다는 건 그래서 음악적 차원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된다. 그건 마치 기성세대들이 과거의 삶의 방식만을 고수하기보다는 현재의 삶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처럼 그려지기 때문이다. 아마도 연령대가 있는 기성세대들이라면 그래서 이들의 도전기에 대한 몰입감이 남다르게 다가올 게다. 그건 마치 같은 세대들이 공유할 수 있는 도전적 요소들을 담고 있어서다. 이런 점은 '골든걸스'가 KBS라는 고정 시청층의 연령대가 높은 공영방송과 잘 어우러지는 지점이다.

26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KBS 웨딩홀에서 열린 예능 프로그램 '골든걸스' 제작발표회에서 가수 인순이(왼쪽부터), 박미경, 신효범, 이은미, 프로듀서 박진영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26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KBS 웨딩홀에서 열린 예능 프로그램 '골든걸스' 제작발표회에서 가수 인순이(왼쪽부터), 박미경, 신효범, 이은미, 프로듀서 박진영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뻔한 오디션이나 음악 프로그램은 가라

새로운 출연자 조합과 새로운 지향점이 만나자 색다른 음악 프로그램의 결이 생겨난다. 물론 인순이, 신효범, 박미경, 이은미는 각각 솔로로서는 KBS '열린음악회' 같은 프로그램에서 종종 그 무대를 만나왔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을 한 프로그램으로 묶어내고, 그 지향점을 요즘 스타일의 걸 그룹 데뷔로 세워두자 뻔한 오디션이나 음악 프로그램들과는 다른 기대감이 생겨난다.

일단 구도부터가 뒤집어져 있다. 오디션이나 걸 그룹 데뷔 음악 프로그램이라면 이 모든 걸 주도하는 프로듀서로서의 박진영이 '슈퍼 갑'의 위치에 서기 마련일 게다. 하지만 출연자들이 내로라하는 디바들이고 선배들인지라, 박진영의 디렉팅은 '지시'가 아니라 '설득'이 되고, 어떤 경우에는 거의 '애원'에 가까운 요구가 된다. 하나의 팀으로서의 걸 그룹을 위해서는 먼저 '합숙'이 전제돼야 한다는 말에 모두가 난색을 표하자 박진영이 겨우겨우 허락을 구해내는 모습이나, 그렇게 막상 합숙을 하면서 노래 디렉팅을 하는 과정에서 한껏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이야기하는 박진영의 모습이 그렇다.

여기에 지금껏 디바들이 대중들에게 보여주지 않았던(아니 절대 하지 않았던) 것들을 보여주는 묘미 또한 쏠쏠하다. 특히 저항감(?)이 심한 이은미가 박미경과 듀엣으로 소녀시대의 'Twinkle'을 불러야 하는 상황에서 해보지 않았던 '섹시함'을 선보여야 한다는 말에 질색을 하고, 절대 입지 않겠다던 분홍색 의상을 결국은 입고 나와 "이게 뭔 일인지 모르겠어"라고 투덜대는 모습은 시청자들로서는 반색할만한 장면이다. 그건 이들의 새로운 매력을 발견하는 순간이면서, 동시에 그들이 지금도 껍질 하나를 깨고 새롭게 도전해가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게 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로그램과 더불어 이들의 활동도 기대된다. 실제로 탄생할 디바들의 걸 그룹이 어떤 음악으로 실제 가요계에 어떤 신선한 충격을 안겨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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