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 신내림 받은 아내와 갈라선 뒤 세 아이 돌봐…막내는 '중증 재생불량성빈혈'

홀어머니 아래서 힘겹게 지내다 가정 꾸렸지만 셋째 출산 후 협의 이혼
몸 불편한 어머니와 함께 세 아이 돌봐…의료비 지출 커 생계 막막
말수 줄고 기운 없어진 막내…엄마 빈자리 채워주고 싶지만 쉽지 않아

지난 5일 휴무인 서중일(가명·48) 씨가 아들 동우(가명·11) 군과 시간을 보내고 있다. 동우 군은 지난 6월부터 중증 재생불량성빈혈을 앓고 있다. 윤정훈 기자
지난 5일 휴무인 서중일(가명·48) 씨가 아들 동우(가명·11) 군과 시간을 보내고 있다. 동우 군은 지난 6월부터 중증 재생불량성빈혈을 앓고 있다. 윤정훈 기자

나는 '좀비'였다. 내가 친구들을 잡으면, 그 아이들이 좀비가 됐다. 좀비가 된 친구들은 아직 사람인 아이들을 잡으려고 책상 사이를 뛰어다녔다. 운동장에선 축구를 많이 했다. 나는 주로 골키퍼를 했고, 서준이는 늘 공격수만 하려고 했다. 좀비놀이랑 축구를 못한지 꽤 오래됐다. 요즘은 친구들이 다 바쁜 거 같다. 메시지를 보내도 잘 보지 않는다.

내가 아프다는 얘기를 듣고 집까지 찾아와 울었던 민재 형이 생각난다. 민재 형은 이제 6학년이, 서준이랑 다른 친구들은 5학년이 된다. 나만 멈춰있다. 나도 슬픈데, 아버지랑 할머니도 슬퍼 보인다. 다들 멈춰있는 거 같다.

◆아내에게 찾아온 '신(神)'… 변해버린 아내

서중일(가명·48) 씨의 아버지는 추억 한 줌 남기지 않고 떠났다. 그가 유치원에 다닐 무렵, 간경변증으로 눈을 감았다고 한다. 중일 씨는 그리워할 수조차 없는 아버지 대신 어머니의 등을 보며 자랐다.

어머니는 식당 설거지든 공장 일용직이든 닥치는 대로 일하며 육남매를 홀로 키웠다. 주어진 현실 속에서 나름 치열하게 살았다. 중일 씨는 고등학교 졸업 후 전문대의 건축설비과에 입학해 장학금을 받으면서 열심히 공부했다.

1998년 대학 졸업 후 제조업체에 입사해 생산직으로 근무하다 다른 회사에서 영업직으로 이직하는 등 여러 직장을 전전했다. 먹고 사는 게 바빠 결혼도 못했다. 사실 자신이 없기도 했다. 한평생 공백으로 남은 '아버지'란 존재는, 중일 씨에겐 두려운 미지였다.

두려웠던 세상으로 발 디딜 용기를 준 여자가 있었다. 서른다섯살, 중일 씨가 산림청 산하의 한 자연휴양림에서 시설관리직으로 일하던 때였다.

중일 씨가 근무하던 휴양림에 한 젊은 여성이 방문했다. 가족 여행을 왔다고 했다. 펜션 이용 관련 안내를 하며 잠시 본 게 전부였지만, TV 화면에서 보듯 화목해 보이는 가족이었다. 웃고 있는 그녀는 슬프도록 빛났다.

그날 저녁 홀로 관리사무실에 있는데 그녀가 왔다. 바비큐 파티라도 했는지, 고기가 한가득 담긴 접시를 들고서. 그것이 아내와 첫 인연이었다. 결혼 후 세 아이가 연달아 태어났다. 첫째 딸, 둘째 아들, 그리고 막내 동우(가명·11). 그렇게 중일 씨는 아버지가 됐다.

세 아이를 키우려면 돈이 많이 필요했다. 중일 씨는 휴양림 일을 관두고, 급여가 더 좋은 제조업체 일용직으로 이직했다. 넉넉하진 못해도 소소하고 행복한 삶이었다.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동우가 태어난 뒤 상냥했던 아내는 변했다. 처음엔 숨쉬기가 힘들다고 해 병원에 데려갔다. 대학병원에서 정밀검사까지 받았지만, 원인을 알 수 없었다.

그건 일종의 '신병(神病)'이었다. 아내는 집에만 틀어박혀 시간을 보냈고, 아이들을 돌보지도 않았다. 어느 날 퇴근하고 돌아오니 방 하나를 '사당'으로 바꿔놨다.

아내를 다그쳤다. 아내는 "신을 모셔야 한다"고, 자신이 모시지 않으면 세 아이 중 하나가 신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아내는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는 사람이 됐다. 그건 아내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협의 이혼했다.

◆11살 막내는 '재생불량성빈혈'…병원비까지 '막막'

세 아이에겐 '어머니'라는 공백이 남았다. 중일 씨는 밤낮이 바뀌는 일을 하느라 홀로 아이들을 돌볼 수 없었다. 그때부터 여든을 바라보는 모친이 세 아이를 돌봤다.

지쳐서 비명조차 지를 수 없는 벅찬 삶이 이어졌다. 불행은 사정을 봐주지 않고 막내 동우에게 들이닥쳤다. 지난해 6월 동우는 오르막길을 오르다 숨이 차서 주저앉았다. 얼굴에 핏기도 없어졌다.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 대형병원에서 '중증 재생불량성빈혈' 진단을 받았다. 몸에서 피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병이라고 의사는 설명했다. '누구보다도 튼튼한 아이였는데….' 가슴이 무너졌다.

지난해 10월 둘째 아이의 조혈모세포를 동우에게 이식하는 수술을 했다. 현재는 매주 한 차례 병원에 가서 수술 경과를 살피는 중이다. 조금이라도 무리한 활동을 하면 안돼서 학교도 가지 못하고 집에서만 생활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른다. 중일 씨는 막막하다. 이미 입원비, 수술비로 900만원을 썼다. 통원 치료에도 매달 70만원, 동우의 예후가 나빠져 혈소판주사 등 비급여 주사를 맞기라도 하면 100만원이 든다. 안 그래도 다섯 식구가 살기엔 월급 300만원은 빠듯했는데, 의료비 고정 지출로 더 힘들어졌다.

이 월급 300만원을 사수하는 것도 현재로선 버겁다. 어머니는 허리 건강이 좋지 않아 보행보조기 없이는 제대로 걷지도 못한다. 사람이 많은 장소는 동우에게 감염 위험이 있어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도 없다. 어쩔 수 없이 중일 씨가 매번 승용차로 동우를 데리고 병원에 다니느라 일을 하지 못하는 날도 많다.

오랜만에 찾아온 휴일, 중일 씨는 동우의 방문을 연다. 집안에서도 모자를 푹 눌러 쓴 채 누워있는 막내 아들이 보인다. 요즘 동우는 부쩍 말수가 줄고, 기운이 없는 것 같다. 어쩌면 어린 나이에 너무나 많은 공백을 겪어서 온 우울감인지도 모른다. 엄마의 공백, 친구들의 공백, 모두 채워주고 싶지만 쉽지 않다. '아버지'란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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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성금내역]

◆가정 폭력에서 벗어났지만 교통사고 당해 거동 힘든 정래원 씨에게 2,587만원 전달

남편 폭력에서 겨우 벗어났으나 교통사고 당해 거동 힘들어 일도 제대로 못하는 정래원 씨(매일신문 12월 19일자 10면)에게 2천587만1천167원을 전달했습니다.

이 성금엔 ▷국선도풍각수련원 3만원 ▷이정량 5만원 ▷신종욱 2만원 ▷이아영 1만원 ▷임예자 1만원이 더해졌습니다. 성금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암으로 남편 떠난 뒤 홀로 컨테이너에 살고 있는 남기현 씨에게 2,953만원 성금

남편은 위암으로 먼저 떠나보내고 힘겹게 아들 키워 현재 홀로 컨테이너에서 살고 있는 남기현 씨(매일신문 12월 26일자 10면)에게 56개 단체, 189명의 독자가 2천953만원을 보내주셨습니다. 성금을 보내주신 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에스엘(주) 200만원 ▷피에이치씨큰나무복지재단 200만원 ▷건화문화장학재단 150만원 ▷(주)대구은행 100만원 ▷(주)태원전기 100만원 ▷최상규이비인후과 80만원 ▷한미병원(신홍관) 60만원 ▷다우약품(윤종규) 50만원 ▷삼성기공(장태종) 50만원 ▷세무법인송정김천2 50만원 ▷신라공업 50만원 ▷한라하우젠트 50만원 ▷㈜태린(김규남) 45만원 ▷금강엘이디제작소(신철범) 40만원 ▷대백선교문화재단 40만원 ▷㈜신행건설(정영화) 30만원 ▷(주)동아티오엘 25만원 ▷구미현대병원 25만원 ▷㈜백년가게국제의료기 25만원 ▷(주)구마이엔씨 20만원 ▷(주)삼이시스템 20만원 ▷(주)우주배관종합상사(김태룡) 20만원 ▷경주천마운전전문학원 20만원 ▷대창공업사 20만원 ▷대흥분쇄기(한미숙) 20만원 ▷신성산업(김용환) 20만원 ▷(주)이구팔육(김창화) 10만원 ▷(주)태왕 (김수경) 10만원 ▷김영준치과의원 10만원 ▷달서구약사회 10만원 ▷대구동양자동차운전전문학원(최우진) 10만원 ▷두드림정신건강의학과 10만원 ▷베드로안경원 10만원 ▷선진건설(주)(류시장) 10만원 ▷세무사박장덕사무소 10만원 ▷세움종합건설(조득환) 10만원 ▷와우이벤트(황선자) 10만원 ▷우리들한의원(박원경) 10만원 ▷참한우소갈비집(신동애) 10만원 ▷창성정공(허만우) 10만원 ▷채성기약국(채성기) 10만원 ▷청산(우창하) 6만원 ▷국제정밀(김용근) 5만원 ▷다빈치커피대명마루점 5만원 ▷동산내과(박준석) 5만원 ▷동산내과(박경아) 5만원 ▷봉산교회(김명묵) 5만원 ▷이전호세무사 5만원 ▷전피부과의원(전의식) 5만원 ▷칠곡한빛치과의원(김형섭) 5만원 ▷흥국시멘트 5만원 ▷국선도풍각수련원 3만원 ▷동신통신㈜(김기원) 3만원 ▷매일신문구미형곡지국(방일철) 3만원 ▷사단법인대한민국힐링문화진흥원 1만원 ▷하나회(김미라)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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