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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훈 칼럼] 종북 세력 합법적 기생 공간으로 전락할 22대 국회

정경훈(매일신문 논설주간)
정경훈(매일신문 논설주간)

동서 냉전기 서독 정치는 동독의 손에 놀아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1972년 4월 27일 사회민주당 소속 빌리 브란트 총리에 대한 불신임 투표 부결이다. 당시 야당인 기독교민주당 총재 라이너 바르첼은 브란트 총리의 대(對)공산권 유화정책인 '동방정책'이 좀 더 좋은 조건으로 추진돼야 한다며 불신임 동의안을 냈다. 여야 모두 통과를 예상했다. 브란트의 사민/자민당 연합은 자민당 일부 의원의 이탈로 원내 과반수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는 가결 선인 249표에서 2표가 모자란 부결이었다. 놀랍게도 바르첼의 기민/기독교사회당 연합에서 반란표가 나온 것이다. 서독 검찰의 수사 결과 기민당의 율리우스 스타이너 의원이 동독 정보기관 슈타지(Stasi·국가보안부)로부터 5만마르크를 받고 반대표를 던진 것으로 드러났다. 또 다른 이는 오랫동안 기민/기사 연합 원내대표로 있었던 기사당의 레오 바그너로, 역시 슈타지로부터 5만마르크를 받았다.

바그너는 부인했지만 거짓말이었다. 슈타지의 해외 공작 책임자였던 마르쿠스 볼프는 독일 통일 후 기민당 의원들에게 1표당 5만마르크를 줬다고 확인해 줬다. 통일 후 공개된 '로젠홀츠'(장미 나무)라는 슈타지 문서에 따르면 바그너는 '뢰베'라는 가명으로 활동한 '비공식 협조자', 즉 '간첩'이었다.

이뿐만 아니다. 소련은 1970년대 중반 서유럽을 겨냥해 신형 중거리 핵미사일 SS-20(소련 명칭은 RSD-10)을 동독과 체코슬로바키아 등에 배치했다. 이에 대응해 사민당 소속 헬무트 슈미트 당시 서독 총리는 발사 7분 만에 모스크바에 떨어지는 미제(美製) 퍼싱Ⅱ 핵미사일의 서독 배치를 결정했다. 이것 말고는 서독 안보를 지킬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재래식 전력에서 NATO(28개 사단, 탱크 6천500대)는 바르사뱌조약군(58개 사단, 탱크 1만9천 대)에 상대가 안 됐다.

그러나 서독에서는 SS-20 배치에는 눈감은 채 미제 미사일 배치는 안 된다는 거센 반대 시위가 일었고 서독 의원들은 이에 뇌동(雷同)했다. 그리고 슈미트 총리는 자당(自黨) 좌파 의원의 미제 미사일 배치 반대표에 밀려 사퇴해야 했다. 이런 '안보 자해'의 비밀은 통일 후 드러났다. 이 시기 서독 하원의원 중 최소 25명 이상이 동독의 돈을 받은 간첩이었던 것이다.

여기에는 브란트 불신임 투표 부결을 노리고 서독 의원들을 매수하려 했던 사민당 원내총무 칼 비난트도 있다. 그가 '슈트라이트'라는 가명으로 간첩 활동을 하며 동독에서 받은 돈은 100만마르크에 달한다.

대한민국의 22대 국회도 이 꼴이 될 것이라는 우려를 떨칠 수 없다.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하는 비례 정당 더불어민주연합의 비례 의원 공천에서 종북·반미 세력이 당선 안정권에 배치됐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의 위헌 정당 판결로 해산된 통합진보당 후신인 진보당 몫의 정혜경·전종덕·손솔 등이 각각 5, 11, 15번을 받았다. 이들은 모두 경기동부연합이 주축이 된 민주노동당, 통진당, 민중당 등에서 활동했다. 또 반미(反美) 친북(親北) 성향 인사가 참여한 '연합정치시민사회'에서 추천한 '국민 후보'로,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을 한 이주희 변호사도 당선 가능권인 17번을 받았다.

이들이 국회에서 어떻게 행동할까? 내란 선동·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이석기 전 통진당 의원이 이들에게 오버랩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이들이 외교통일위, 정보위, 국방위 등에 배치될 경우 문제는 특히 심각해진다. 우리 안보와 직결된 국가 기밀의 지속적·심층적 누설 가능성이 활짝 열리는 것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의원 1인당 9명인 보좌진도 종북주의자로 채워질 수 있다. 이석기 사건을 수사한 전 국정원 수사관에 따르면 이석기 보좌진은 모두 통진당 내 RO(지하혁명조직)의 핵심 간부들이자 대부분 국보법 위반자들이었다. 비례 당선 안정권 4명만 기준으로 해도 36명의 종북주의자가 추가로 국회에 진입하는 것이다.

이를 저지하려면 유권자가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종북·반국가 세력의 국회 진입을 모두 막을 수는 없지만 최소화할 수는 있다. 그런 점에서 4·10 총선은 우리가 현민(賢民)인지 우중(愚衆)인지를 자문케 하는 실존적 물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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