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살 때 환자로 만나 이제는 대학을 가고, 미술학원 강사까지 하는 윤재는 팔은 괜찮은데 다리 경직 때문에 조금 뒤뚱거리며 걷는 뇌성마비환자다. 걸으면 표가 나다보니 어릴 때부터 따돌림을 많이 당했고, 학교 체육시간에는 무슨 종목인가와 상관없이 아예 참여할 수 없었다고 했다.
인지가 좋은 윤재는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걸 일찍부터 절감했고 그날따라 속상한 일이 있었던지 어느 날 7살 꼬맹이가 집에 와서는 엄마한테 울면서 따졌단다.
"엄마는 날 왜 낳았어! 이럴거면 그냥 낳지 말지!"
임신초기부터 좀 불안하다는 말을 들어 임신기간 내내 조심했다는 엄마에게 윤재는 차라리 자기를 낳지 말았어야 한다고 아픈 말을 했단다. 윤재 엄마는 마음이 너무 아팠지만 울면서 악다구니를 쓰는 윤재를 꼬옥 안아주며 이렇게 대답했단다. "엄마는 윤재를 만나고 싶었어. 이렇게 안아보고 만져보고 싶었어. 윤재야, 라고 불러 주고 싶었어. 엄마는 윤재도 엄마를 만나고 싶어할 거라고 생각했어. 엄마는 지금 윤재 엄마라서 행복한데, 윤재는 안그래?" 그날 윤재와 윤재엄마는 부둥켜 안고 펑펑 울었단다.
체육을 할 수 없었던 윤재는 늘 교실에 남아 그림을 그렸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은 그게 전공이 되었고 직업이 되었다. 미대에 입학했고, 내 에세이집 표지그림을 그려 주었고, 개원한 병원에 개업선물이라며 본인이 그린 그림도 가지고 와 주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윤재에게 꽃길만 펼쳐지는 건 아니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려고 지원한 입시미술학원에서 다리가 불편하니 강사로 일하긴 힘들겠다는 소리를 들었다. 20여년동안 편견과 싸워온 윤재는 학원 원장님을 찾아갔단다. "3시간동안 뛰는 건 힘들지만 서 있는 건 문제없습니다. 제 실력때문이라면 상관없지만 제 다리때문이라면 재고해 주십시오." 그리고 윤재는 당당히 채용이 되었고 이제는 병원에 진료보러 올 시간 빼기도 힘들만큼 바쁘게 학교와 학원을 오가고 있다.
이 얘기를 들려주면서 윤재 어머니는 이렇게 얘기했다. "누구나 부족한 부분은 있겠지요. 키가 작을 수도 있고, 공부를 못할 수도, 달리기를 못할 수도 있어요. 그건 어쩔 수 없어요. 특별 대우를 바라면 안 돼요. 하지만 최선은 다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 다리가 불편하다고 하나씩 포기하다보면 나중엔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을 거예요. 뽑히고 안 뽑히고 상관없이 하고 싶은 말이라도 하고 와야 후회가 없을 거라고, 그래서 윤재한테 니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보라고 했어요" 윤재 어머니를 10년 넘게 알고 지내면서 늘 시크하다고만 생각했는데, 너무 멋있어서 엄지척을 했더랬다.
윤재는 아직도 이 생에서 자기의 운명과 싸우고 있다. 자기를 이렇게 태어나게 한 신과 한 판 승부를 뜬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산단다. 그렇게, '엄마는 날 왜 낳았어!' 라고 악다구니를 쓰던 아이가, 멋진 어른이 되어 간다. 그 모습을 지켜볼 수 있어서 난 참 감사하다.
손수민 '손수민재활의학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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