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천위를 비롯해 조상 제사가 가까워지면 종가 구들방 아랫목에는 술 익는 소리와 향기로 가득해 진다. 옛 선비들이 '신과 통하는 유일한 수단'으로 인정했던 '술'은 반드시 여인네인 종부의 손으로 빚어낸다.
이처럼 고택 종가 담장 내실에서 수백년을 전해오던 안동의 종가 술 '가양주'가 종가만의 기품과 문화·풍류를 고스란히 담아 종손과 종부들이 직접 빚어 일반에 선보이고 있다.
안동시와 (재)한국정신문화재단은 지난 26일 하회마을 충효당 뒷뜰에서 안동지역 종가의 술, '가양주'(家釀酒)를 기반으로 한 관광자원 활성화를 위해 '제1회 주회(酒會)'를 마련했다.
지난 1월 구성된 '안동 종가 가양주 진흥회'(회장 류창해, 서애 류성룡 종손)는 서애종가, 학봉종가, 노송정종가, 간재종가, 삼대종가, 지촌종가 등 안동지역 종가를 중심으로 가양주의 우수성과 전통성을 홍보하기로 뜻을 모았다.
이날 '주회'에는 박록담 한국전통주연구소장, 전통문화콘텐츠 기획자인 한덕택 서울예대 교수, 국가대표 전통주소믈리에 전진아 박사, 한국술연구회 전재구 회장 등 전통주 전문가와 와인메타 장기학 대표 등 MZ세대 술 관련 콘텐츠 전문가들이 참석했다.
안동지역 종가 종손과 종부를 비롯해 유림 어르신, 기관·단체장들도 함께해 고택 담장을 너머 소비자들에게 선보일 '종가의 술, 가양주'를 맛보며 덕담을 나눴다.
이날 선보인 가양주는 하회마을 충효당에서 420여 년 전 서애 선생이 즐겼던 술 가운데, 지난해부터 류창해 종손과 이혜영 종부가 빚은 '옥연'(玉淵) 약주와 소주, '향료'(香醪) 막걸리 등 3가지 술이었다.

'옥연'은 쌀·찹쌀 및 국내산 전통 누룩을 정월 첫 해일(亥日)에 시작해 해일마다 세번에 걸쳐 빚어낸 '삼해주'(三亥酒)로 100일 이상의 저온 발효, 숙성을 거쳐 깊고 풍부한 맛을 내는 약주와 약주를 끓여낸 35도, 25도의 소주로 '감주'(甘酒)로 단맛을 낸다.
'향료'는 말 그대로 '향기로운 막걸리'로 서애 선생의 '책력'에 수록된 가양주 레시피를 재현한 탁주다.
지난 2022년 11월 24일 문화재청과 국외소재 문화재재단이 일본에서 환해 공개한 '유성룡비망기입대통력'(1600년 경자년 달력) 본문 여백에는 술과 관련된 글들이 빼곡히 적혀있다.
여기에는 '감주'(甘酒), '향료'(香醪·향기로운 막걸리), '점주'(粘酒·찹쌀술), '도인주'(桃仁酒), '백자주'(栢子酒) 등 5가지의 술 제조법을 비롯해 술을 급하게 빚는 방법, 술 제조법, 술에서 빨리 깨는 방법, 악기를 다스리는 술 만드는 방법, 가을 보리싹으로 술을 빚는 서청법(黍淸法) 등 다양한 술 레시피가 기록돼 있다.
류창해 종손은 "서애 할배가 즐겨 찾던 옥연정사에서 이름을 딴 '옥연'(玉淵)으로 술 이름을 짓고, 대통력에 나오는 술 만드는 방법대로 가양주를 빚었다"며 "하회 불천위 제사때 맛을 볼 수 있었던 집안 술을 일반에 선보여 충효당 종가의 맛을 알릴 것"이라 말했다.

이날 주회에는 삼해주인 학봉종가 '금계주', 좁쌀로 빚은 노송정종가의 '노송주', 솔잎과 청보리로 빚은 약술 간재종가 '숙영주', 종가 비법이 담긴 지촌종가 '이수동주', 아침 이슬을 받아 빚어 '조성당일기'에 전해지는 삼대종가 '추로주', 고려개국주로 만들어진 '태사주' 등 안동의 종가 술이 선보였다.
안동시와 한국정신문화재단은 안동의 전통주가 가진 '접빈'(接賓)과 '의례'(儀禮)의 의미를 대내외에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관광자원으로 만들기 위해 지속적인 가양주 주회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동원 한국정신문화재단 대표는 "주회의 활성화가 스탠다드 관광상품 패키징 개발로 이어져 관광경제의 견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하겠다"며 "오는 10월 월영교 일대에서 전통주 박람회를 통해 안동 종가 술 홍보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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