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당열전-조두진] 국민이 '자기 허벅지 살'을 베어 먹겠다면 도리 없다

조두진 논설위원
조두진 논설위원

이 글은 중국 역사가 사마천의 '사기(史記)', 진수의 정사(正史) '삼국지',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일본 소설가 야마오카 소하치(山岡荘八)의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등 역사서와 문학작품 속 인물들의 운명에 비추어 현대 한국 정치 상황을 해설하는 팩션(Faction-사실과 상상의 만남)입니다. -편집자 주(註)-

▶ 무조건적 이재명 후보 지지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민주당 전국 순회 경선에서 89.77% 득표율로 6·3대선 민주당 후보로 선출됐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지금까지 여야의 당내 대선 후보 경선 및 당 대표 선거를 통틀어 최고 기록이다.

2022년 이재명 후보가 처음 민주당 대표가 됐을 때만 해도 당 지도부에 '비(非)이재명'계가 있었지만 지난 총선 때 비명계가 대거 공천 탈락하고 강성 친명이 그 자리를 차지하면서 민주당 내에 이 전 대표를 견제할 세력은 사라졌고, 이재명 일극(一極) 체제가 완성됐다.

이재명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 후보의 잦은 말 바꾸기와 막말, 숱한 범죄 혐의와 전과(前科), 위험해 보이는 외교·안보관, 무리한 법안 밀어붙이기를 전혀 개의치 않는다. 꺼리기는커녕 그의 모든 언행을 추종(追從)한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지지층의 평가가 이러하니, 이 후보는 앞으로도 지금까지와 엇비슷한 행보(行步)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 지금은 중도층 공략을 위해 '우 클릭'하고 있지만 말이다.

▶ 허벅지 살을 베어 배를 채운다

"군주의 도리는 백성을 먼저 보살피는 데 있다. 백성을 착취해 자신의 배를 채우는 것은 자신의 허벅지 살을 베어서 배를 채우는 것과 같다. 당장은 배가 부르지만 몸이 약해져서 곧 죽게 된다."

'정관정요(貞觀政要)' '군도(君道)'편에 나오는 내용이다. '정관정요'는 중국 당나라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당태종(재위 626-649)이 신하들과 나눈 대화 중 정치에 관한 부분을 당 태종 사후에 오긍(吳兢:670~749)이 정리한 책이다. 나라를 바로 이끌기 위한 그들의 고민과 방식이 담겨 있다.

당나라 때는 황제가 나라의 주인으로 최고 권력을 휘둘렀지만, 현대 민주주의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다. 국민이 '군주'인 셈이다. 국민이 무슨 힘이 있느냐고 할 지 모르지만, 한국 국민은 4년 마다 국회의원을, 5년마다 대통령을 갈아 치우는 막강한 권력자다. 자기 주도로 권력을 행사하는지, 정치인에게 놀아나는지는 모르겠지만.

▶ 군주·국민을 속이는 간신배들

군주가 주인이던 시대에 군주에게 아첨하거나 군주를 속이는 신하들이 있었듯,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정치 포퓰리스트들, 모리배(謀利輩) 정치인들이 국민에게 달콤한 말과 거짓 비전, 거짓 통계로 국민을 현혹한다. 이때 군주와 국민이 현명하게 살펴서 제대로 판단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하면 군주가 간신에게 놀아나듯, 국민 역시 정치인에 놀아난다. 문재인 정부가 주택·소득·고용에 관한 통계를 조작·왜곡해(감사원 감사결과) 임기 말까지 높은 지지율을 유지했던 것이 그런 예다.

과거 군주들 중에는 "백성의 허벅지 살을 베어 먹자"는 간신배의 말이 잘못인 줄 알면서도, 당장 편하고, 자신에게도 이득이 되기에 그 말에 따른 자들이 있었다. 간신배와 군주가 그렇게 뭉친 나라는 어김없이 망조(亡兆)가 들었다.

▶ 간신이 국가 멸망 부르지 않는다

국민들 다수는 정치인의 감언이설이 종국(終局)에는 나라와 국민을 말아 먹는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당장 자신에게 이득이 되기에 지지하는 경우가 많다. 나라가 망하면 고생과 치욕은 물론, 목숨도 위태롭지만 당장 편하고 달콤한 길을 가는 것이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나 모리배와 정치 포퓰리스트가 존재했다. 하지만 단지 몇몇 정치 포퓰리스트들, 몇몇 모리배 때문에 나라가 망하는 경우는 없었다. 현명한 군주가 그들을 견제하고 내쳤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민주주의 국가에서 몇몇 정치 포퓰리스트가 나라를 말아 먹을 수는 없다. 현명한 국민이 나쁜 정치에 철퇴를 내리면 막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국민(군주)이 달콤한 말에 귀 기울이면 '남미(南美)' 꼴이 난다.

▶ 허벅지 베어 먹는 달콤한 법안

윤석열 정부 임기 동안 국회를 장악한 민주당은 논란 많은 법안을 마구 밀어붙였다. 윤 전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와 한덕수·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행사한 거부권을 합하면 42회나 된다.

그 중 경제 관련 법안만 보자. 불법 파업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권을 제한하는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 또 '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 의무'를 신설한 '상법 개정안', 이는 경영진이 투자를 결정했는데, 그 투자로 인해 재무 상황이 악화돼 단기적으로 주가가 하락할 경우 주주들이 "회사가 주주 이익을 침해했다"며 회사 측을 상대로 소송을 걸 수 있는 법이다. 이 법이 통과되면 회사는 미래를 위한 투자를 꺼릴 것이다.

또 13조원이 투입되는 '전국민 25만원 지원법'과 시장에서 남는 쌀을 국가가 의무적으로 사들이고, 채소 등 가격 하락으로 발생한 생산자 손해를 국가가 보전(保全)해 주는 내용을 담은 '농업 4법(양곡관리법·농수산물가격안정법 등)'이 그런 법안이다. 요즘 쌀 농사는 거의 100% 기계화 되어 있다. 양곡법이 통과되어 가격과 판매가 보장된다면 농민들은 쌀 생산을 줄이기는커녕 늘릴 것이다. 쌀은 더욱 과잉 생산되고, 자급률이 매우 낮은 콩·밀 등은 여전히 농민들의 외면을 받을 것이다. 이런 법이 '자기 허벅지 살을 베어 먹고 배를 채우는 법'이 아니면 무엇인가.

▶ 尹은 불통이고 李는 소통?

윤석열 정부 당시 민주당 지지층과 많은 친야(親野) 언론은 윤 전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대해 "이런 불통 대통령은 없었다"고 비판했다. 이재명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그가 대통령이 되어서도 지금과 같은 법안을 고집할 경우), 우리는 농민과 소액 주주와 국회와 훌륭하게 소통하는 대통령을 얻는 대신, 국가의 쇠락을 목도(目睹)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국민(군주) 다수가 이 후보를 지지한다는 것은 '그의 정책을 지지한다'는 말이다. 군주(국민)와 신하(정치인)가 한 뜻이 되어 '제 허벅지 살'을 베어 먹겠다면 도리 없다. 그러나 기억하시라. 제 허벅지 살을 베어 먹고 "배 부르다"며 흡족해하는 국민에게 닥칠 미래는 하나 뿐임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가 지난 달 27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가 지난 달 27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제21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선출을 위한 수도권·강원·제주 경선 및 최종 후보자 선출 대회'에 참석하며 지지자들의 환호에 인사로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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