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학의 마지막 치료법인 장기이식은 생사의 경계에 놓인 말기 질환자가 삶을 붙드는 유일한 희망이다. 다시 걷고 숨을 쉬기 위해선 타인의 삶에서 건너온 생명의 조각이 필요하다.
그러나 기적을 바라보는 환자들에게 새 숨결을 건넬 뇌사 기증자는 턱없이 부족하다. 기약 없는 기다림 속에 병은 날로 깊어지고, 매일 죽음의 문턱으로 밀려나는 사람들은 많아지고 있다.
◆ 뇌출혈에다 심장마저 고장
계명대 동산병원 14층 병동에서 아홉 달째 지내는 이동희(54·가명) 씨는 5초 이상 말을 잇는 것조차 버겁다. 짧은 한마디가 끝날 때마다 그의 입가에서는 '쌕쌕'거리는 거친 숨소리가 새어 나왔다.
동희 씨는 "몸을 기지개 켜듯 일으켜 세워야 숨이 몸 안으로 들어오는 것 같아요. 남들처럼 의자에 앉아 일상을 보내는 건 제게 꿈같은 일이지요"
호흡이 가빠졌던 건 2023년 여름이었다. 뇌출혈 후유증이 남긴 왼쪽 편마비를 극복해보려 나선 산책길에서 심장을 부여잡았다.
"심부전이 생겨서 약물치료로는 안 되겠습니다. 심장 이식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려야 합니다"
의료진은 동희 씨가 생사의 경계에 놓였다고 말했다. 대한심부전학회에 따르면 심부전은 5명 중 한 명이 1년 안에 사망할 정도로 치명적인 심장질환이다. 위암이나 대장암 등 주요 암 질환보다도 생존율이 낮다.

심부전으로 몸은 수시로 부었다. 발이 커지면서 평소에 신던 275㎜ 크기의 신발이 맞지 않았다. 동희 씨는 신고 벗기가 편한 다이얼 버튼 방식의 새 신발을 마련했다.
무엇보다 불편한 건 오른팔에 꽂힌 1m 남짓한 흰색 호스다. 심장 펌프 기능이 떨어진 동희 씨는 강심제(도부타민)가 흐르는 이 호스에 삶을 의존하고 있다. 하지만 길이가 짧아 작은 움직임 하나에도 제약이 생겼다.
아찔한 순간도 많았다. 왼쪽 팔을 쓸 수 없다 보니 물건을 집으려 오른팔을 뻗는 순간, 호스가 금세라도 빠질 듯 위태롭게 당겨졌다.
"심장 이식 전까지 제 몸에서 빠져서는 안 될 생명줄입니다. 급한 성격만큼 행동도 빨랐는데 몸을 생각해서 나무늘보처럼 움직일 수밖에 없었죠"

동희 씨는 어머니가 눈에 밟힌다. 이혼하면서 가족과 왕래를 끊은 아들의 몸을 씻기기 위해 80대 노모는 이틀에 한 번씩 병원을 찾고 있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하루빨리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언제 병원을 벗어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그처럼 심장 이식을 기다리는 환자들이 많아서다.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에 따르면 심장 이식 대기자는 2023년 기준 1천68명으로 5년 전보다 53.9% 늘었다. 고형장기(심장·폐·간·신장·췌장)로 보면 폐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증가 폭이다. 반면 같은 해 이식 건수는 245건에 그쳤다. 대기자 5명 중 한 명만이 타인의 심장을 받고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다.
심장 이식을 기다리다 숨지는 환자도 적지 않다. 2019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심장 이식 대기자는 1천110명. 이 중 절반이 넘는 634명이 이식을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실낱같은 희망 속에서 동희 씨는 매일 두 차례 재활 운동에 전념하고 있다. 기초 체력을 길러 이식에 적합한 몸 상태를 만들어 놓겠다는 의료진과의 약속을 지키고 있다.
◆ 가족 이식마저 무산에 망연자실

박민석(60·가명) 씨는 2019년 1월 말기 신부전 진단을 받았다. 혈액 투석 6년 차인 그는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고 토로했다. 신장 이식 대기자들이 평균 10년간 투석 생활을 이어가다가 합병증으로 사망한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신부전 진단을 받았을 때 신장 기능이 8%밖에 남지 않았다고 들었어요. 투석 없이는 금방이라도 죽을 목숨입니다"
처음에는 투병 생활이 이토록 길어질 줄 몰랐다. 혈액형이 B형으로 같았던 아내가 신장 한쪽을 내주겠다고 나서면서 희망을 품었다.
그런데 검사를 받던 아내의 소변에서 피가 비쳤다. '당장은 이식 수술이 어렵다'는 의사의 짧은 한마디는 민석 씨를 다시 투석실로 가둬놓았다. 이후에도 친누이가 신장을 떼어주겠다고 했으나 조카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가족 간 이식 가능성마저 사라진 그가 이제 기댈 곳은 일면식도 없는 기증자다. 이 만남이 몇 년 안에 이뤄질지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2023년 기준 신장 이식 대기자는 3만3천568명. 전체 장기이식 대기자(5만1천876명)의 64.7%를 차지한다. 신장이 전체 장기 중 가장 수요가 많은 만큼, 민석 씨의 좌절감도 깊어지고 있다.
끝을 모르는 투병 생활에 몸도 많이 상했다. 172㎝에 72~73㎏으로 건장했던 민석 씨는 56㎏까지 빠졌다.
요즘에는 자식 세 명이 마음에 걸린다. 결혼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려면 하루 일당을 주는 공사판에도 나가고 싶지만, 이틀에 하루는 투석 때문에 병원에 발이 묶인다.
망연자실한 가운데 중국에서 돼지 신장을 이식받은 환자가 보름째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는 뉴스를 접했다. 발전된 의학기술을 기대하지만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교차한다.
"하루하루 몸이 달라지는 것을 느낍니다. 별명이 날다람쥐일 정도로 산을 좋아했는데, 이제는 오르막길을 오를 체력도 없어요. 지금의 몸 상태라도 유지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 이식 대기 환자는 늘어나고 기증자는 줄어드는 현실

장기기증은 인간이 삶의 끝에서 실현할 수 있는 가장 숭고한 나눔이다. 한 사람의 마지막 숨결은 심장과 간, 신장 2개, 폐 2개, 췌장, 각막 2개까지 최대 9명의 꺼져가는 생명을 다시 일으킬 수 있다.
우리나라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은 장기기증이 실질적으로 뇌사자만 가능하다고 명시하고 있다. 법에 따라 뇌사 추정자가 발생한 병원은 이를 한국장기조직기증원(코다)에 의무적으로 통보해야 한다. 이후 코다 소속 코디네이터가 해당 병원으로 출동해 보호자 면담 등 장기 구득(기증자로부터 장기를 확보) 절차를 진행한다.
가족이 기증에 동의하더라도 모두 이식으로 연결되진 않는다. 장기 상태가 적합하지 않거나, 기증 결정을 번복하는 등의 이유로 실제 이식이 가능한 건수는 더 줄어든다.
뇌사 기증자 수는 해마다 줄고 있다.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에 따르면, 2016년 573명으로 정점을 기록한 뒤 2017년 515명으로 감소했고 지난해에는 397명까지 떨어지며 400명 선이 무너졌다.
반면 이식을 기다리는 환자 수는 증가하는 추세다. 전국 이식 대기자는 2021년 4만5천843명에서 2022년 4만9천675명, 2023년 5만1천876명까지 치솟았다.
이식 대기 중 사망하는 환자도 덩달아 늘고 있다. 2019년 2천145명이었던 사망자는 2023년 2천907명으로 35.5% 증가했다. 같은 기간 하루 평균 사망자는 5.8명에서 7.9명으로 늘었다.
우리나라는 해외와 비교해도 장기기증 건수가 크게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장기기증이식등록기구(IRODaT)에 따르면 2023년 한국 인구 100만명당 뇌사 기증자 수는 9.32명으로, 조사 대상 81개국 중 39위에 머물렀다. 기증 선진국인 스페인(49.38)과 미국(48.04)에 한참 못 미친다.

생명나눔에 대한 공감대도 부족하다. 지난해 장기기증 희망등록자는 7만563명으로 전년도(8만3천362명)와 비교하면 15.3% 감소했다. 전체 기증 희망등록자는 2023년 기준 178만3천284명으로 전체 인구 대비 3.4% 수준에 그친다.
더욱 암울한 건 희망등록 취소 건수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등록 철회자는 4천940명으로, 9년 전인 2015년(1천751명)과 비교하면 약 3배 가까이 늘었다. 취소 이유로는 '본인의 변심'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고 '가족 반대'가 뒤를 이었다.
이삼열 한국장기조직기증원장은 "최근 5~6년간 장기기증의 부침이 많이 있었다. 코로나19로 감소하다가 최근 의정갈등으로 전공의들이 병원을 이탈하는 사태가 벌어지면서, 뇌사자 가족들에게 설명과 동의를 구하는 과정이 어렵게 됐다"며 "기증 활성화 척도는 장기기증 희망등록률인데 미국 등 해외는 60% 이상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5%가 안 되는 상황이고 기증 문화 자체가 굉장히 미약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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