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환 기자 rehwan@imaeil.com

기사

  • 경북대

    경북대 "알츠하이머 혈액 속 지질과 관련 있다" 최초 입증

    경북대학교 연구팀이 알츠하이머병 초기 증상인 후각 장애와 뇌실 확장이 혈액 인자인 'S1P(스핑고신-1-포스페이트)'와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고 14일 밝혔다. 혈액 속 지질인 S1P는 고밀도지단백(HDL)과 결합한 형태로, 뇌로 이동해 신경세포 생성과 뇌 구조 유지를 돕는 역할을 한다. 경북대 연구팀(수의학과 진희경·의학과 배재성 교수팀)은 혈중 S1P 수치를 인위적으로 낮춘 생쥐 모델에서 알츠하이머 초기 증상처럼 후각 반응이 둔해지고, 뇌실이 비정상적으로 확장되는 것을 관찰했다. 같은 결과가 알츠하이머 초기 환자 혈액 분석에서 확인됐다. 이에 따르면 환자들의 S1P 수치는 정산군보다 낮았고, 수치가 낮은 만큼 후각 인식 능력이 떨어지며 뇌실 크기는 증가했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또한 S1P를 포함한 혈장을 생쥐 모델에 정맥 주사할 경우, 신경줄기세포 수가 회복하는 데다, 후각 행동이 개선되고 뇌실 확장도 억제되는 효과를 확인했다. 알츠하이머 초기 증상이 S1P 감소 때문이라는 것을 실험으로 증명한 사례는 이번 경북대 연구팀이 처음이다. 진 교수팀 관계자는 "이번 연구가 향후 알츠하이머 조기 진단과 치료법 개발에 이바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2025-07-14 23:03:37

  • 영남이공대, 싱가포르서 글로벌 캡스톤디자인 해외연수 실시

    영남이공대, 싱가포르서 글로벌 캡스톤디자인 해외연수 실시

    영남이공대학교(총장 이재용)는 싱가포르에서 글로벌 캡스톤디자인 해외연수 프로그램을 실시했다고 14일 밝혔다. 지난 7일부터 12일까지 진행된 이번 연수는 싱가포르의 폴리테크닉 대학들과의 기술 교류와 산업 탐방을 통해 글로벌 실무 역량 강화를 목적으로 진행됐다. 기계공학과(스마트융합기계계열 전공심화과정) 학생 15명이 참가했다. 이번 프로그램은 교육부의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 사업의 일환으로 이뤄졌다. 대학은 글로벌 산업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실무형 인재를 양성하고자 다양한 국제 교류 기회를 적극 지원 중이다. 학생들은 학기 중 직접 설계한 캡스톤디자인 결과물을 바탕으로, 싱가포르 폴리테크닉과 니안폴리테크닉 대학 학생들과 함께 모빌리티 관련 캡스톤디자인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글로벌 시야를 넓히고 창의적 문제 해결 능력을 키웠다. 이재용 영남이공대 총장은 "앞으로도 모빌리티 기술 분야의 글로벌 협력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2025-07-14 22:45:40

  • 직원 구출 위해 들어간 맨홀에서 숨진 대표, 장기기증 결정

    직원 구출 위해 들어간 맨홀에서 숨진 대표, 장기기증 결정

    직원을 구조하기 위해 맨홀에 들어갔다가 의식을 잃고 숨진 40대 업체 대표가 장기기증을 하게 됐다. 14일 경찰과 의료계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오·폐수 관로 조사 업체 대표 A(48) 씨가 인천 모 대학병원 응급 중환자실에서 치료받던 중 사망했다. A씨는 지난 6일 오전 9시 48분쯤 인천시 계양구 병방동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심정지 상태로 구조된 뒤 의식을 찾지 못하고 8일 만에 숨졌다. A씨 유가족은 병원에 장기기증 의사를 밝혔고, 이날 오후 수술을 진행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당일 A씨는 맨홀 안에서 쓰러진 업체 일용직 근로자 B(52) 씨를 구조하러 갔다가 사고를 당한 것으로 파악됐다. B씨는 하루 만인 7일 오전 10시 40분쯤 굴포천하처리장 끝 지점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조사 결과 A씨 업체는 인천환경공단이 발주한 '차집관로(오수관) GIS(지리정보시스템) 데이터베이스 구축용역'의 재하도급 업무를 담당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한편 중부지방고용노동청은 광역중대수사과 소속 감독관 15명을 전담팀으로 구성하고 인천 맨홀 사고를 수사 중이다. 경찰도 12명 규모의 수사 전담팀을 꾸리고 현장 안전관리 주체를 특정한 뒤 업무상과실치사 혐의 적용 여부를 판단하기로 했다.

    2025-07-14 20:55:06

  • 대구보건대, '이주배경학생 진로직업체험' 6년 연속 운영한다

    대구보건대, '이주배경학생 진로직업체험' 6년 연속 운영한다

    대구보건대학교가 대구시교육청이 주관하는 '이주배경학생 진로직업체험 프로그램'을 6년 연속 운영한다고 14일 밝혔다. 대구보건대에 따르면 진로직업체험은 진로검사와 상담 프로그램, 직업 실습, 멘토 특강 등 4단계로 구성된다. 학생들이 자신의 적성과 강점을 발견하고 진로 방향을 구체화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핵심이다. 지역 중·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이주배경학생 등 50여명이 참여하는 이번 프로그램은 31일까지 총 8회, 40시간 동안 이어진다. 대구보건대병원과 연계한 보건의료 현장 직업체험과 국립중앙과학관, 조폐공사 화폐박물관 등 현장체험학습도 포함됐다. 이번 교육에는 임상병리학과와 간호학과, 치위생학과, 반려동물보건관리학과, 글로벌호텔조리학과, 뷰티코디네이션학과, 물리치료학과, 호텔제과제빵학과, 응급구조학과 등 9개 학과와 학생상담센터도 함께 한다. 전공 교수진과 현직 전문가들이 실습수업을 이끌면서, 학생들의 진로 이해와 현장 감각을 높이는 데 중점을 둘 예정이다. 이진환 학생상담센터 진로개발담당관(물리치료학과 교수)은 "이주배경학생들이 자신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이번 프로그램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2025-07-14 13:43:27

  • '기다리는 대신 나눔을 선택'…장기기증, 한영석 씨의 마지막 사랑

    '기다리는 대신 나눔을 선택'…장기기증, 한영석 씨의 마지막 사랑

    한 명의 생명을 살리고 떠난 마지막 선택이 우리 사회에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한영석(69) 씨는 뇌사 장기기증으로 폐장을 기증하며 사랑을 남겼다. 그의 생애와 가족의 결정은 생명 나눔의 숭고한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원장 이삼열)은 고려대 안산병원에서 한영석 씨가 뇌사 장기기증으로 소중한 생명을 살리고 하늘의 별이 되어 떠났다고 10일 밝혔다. 한 씨는 지난 6월 8일 교회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쓰러져 인근 병원으로 긴급 이송됐다. 병원 도착 당시 머리에 가해진 압력이 너무 커 기본적인 검사도 어려웠고, 의료진은 회복이 불가능한 뇌사 추정 상태임을 알렸다. 가족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 속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이후 가족들은 한국장기조직기증원과 상담을 통해 "아버지께서 이대로 돌아가시는 것을 기다리는 것보다는, 다른 이들에게 새 생명을 주는 것이 훨씬 가치 있는 일이라 판단했다"라며 기증에 동의했다. 한 씨는 뇌사 장기기증으로 폐장을 기증하여 한 명의 생명을 살렸으며, 가족들은 누군가의 몸속에서 아버지가 살아 숨 쉰다는 사실에 큰 위로를 받았다. 한 씨는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사랑을 실천하며 세상의 선한 영향력을 남기고 떠났다. 전라남도 해남군에서 9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난 한 씨는 음악과 영화, 테니스 등 예체능을 즐겼고, 오토바이에 두 아들을 태우고 영화관과 피자가게를 함께 다니던 다정한 아버지였다. 한 씨는 약 20년간 신장 투석 치료를 받았으나 특유의 긍정적인 성격으로 생활을 이어왔다. 간호사로 일했던 지인에 따르면 "정말 대단한 분이었다. 그렇게 긍정적일 수가 없었다"고 회고했다. 한 씨의 아들은 "제주도 여행을 함께 다녀오자고 했지만, 결국 못 갔던 것이 너무 마음에 남는다"며 "아버지의 신앙심과 긍정적인 마음을 본받아 더 따뜻하게 살아가겠다고 다짐했다"고 전했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 이삼열 원장은 "생명나눔을 실천해 주신 기증자 한영석 님과 유가족분들의 따뜻한 사랑의 마음에 감사드린다.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는 기적과 같은 일이 우리 사회를 더 건강하고 밝게 밝히는 힘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2025-07-11 10:00:21

  • 10년간 누워 지낸 11세 남아, 장기기증으로 하늘의 별 됐다

    10년간 누워 지낸 11세 남아, 장기기증으로 하늘의 별 됐다

    생후 두 달 만에 뇌 손상을 입고 10년간 누워 지내온 11세 어린이가 장기기증으로 3명에게 새 삶을 선물한 뒤 하늘의 별이 됐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은 김연우(11) 군이 지난 5월 24일 분당서울대학교병원에서 뇌사 판정을 받고 심장과 양측 신장을 기증하고 세상을 떠났다고 2일 밝혔다. 김 군은 생후 60일 만에 응급 뇌수술을 받았고, 이후 인공호흡기에 의존하면서 누운 상태로 생활했다. 2019년에는 심정지가 오면서 뇌 기증이 크게 떨어졌고, 시간이 흐르면서 장기 기능도 저하됐다. 이에 가족들은 김 군이 다른 누군가의 몸에서라도 삶을 이어가면 좋겠다는 뜻에서 기증을 결심했다. 김 군의 어머니는 "연우야, 엄마 아빠 아들로 태어나줘서 고맙고 이 세상에 오기까지 고생 많았어"라며 "우리 나중에 다시 만나면 하지 못했던 것들 다시 하자. 엄마 아빠가 미안하고, 우리 다음에 꼭 다시 만나자. 연우 때문에 행복했고 너무 사랑해"라고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이삼열 한국장기조직기증원장은 "최근 어린이 기증으로 마음이 무겁다.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환경과 의료 복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어려운 상황에서도 기증을 결정해 주신 연우 군 부모님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고 말했다.

    2025-07-02 09:44:11

  • 한국장기조직기증원, 생명나눔 문화 확산 캠페인 진행

    한국장기조직기증원, 생명나눔 문화 확산 캠페인 진행

    한국장기조직기증원이 오는 8월부터 신분증 발급 시 장기기증 희망등록을 안내받는 제도 시행을 앞두고 생명 나눔 문화 확산 캠페인을 펼쳤다. 기증원은 지난 25일 한국노인인력개발원, 한국도로교통공단과 함께 전북 지역 운전면허시험장에서 생명 나눔 문화 확산 합동 캠페인을 진행했다고 26일 밝혔다. 이번 캠페인은 신분증 발급 시 민원인에게 장기기증 희망등록을 안내할 수 있게 된 사실을 알리기 위해 마련됐다. 개정된 '장기등이식에관한법률'에 따르면 8월 21일부터 주민등록증과 여권, 운전면허증, 선원신분증 등 신분증을 발급받을 때 업무 담당자로부터 장기기증 희망등록 설명을 듣게 된다. 신분증 발급 외에 재발급이나 갱신 시에도 마찬가지다. 장기기증 희망등록 안내는 전국 5개 기관에서 이뤄진다. 주민등록증을 발급하는 동사무소 3천596곳과 여권 업무를 맡는 구청(257곳), 운전면허증 관련 경찰서(906곳)와 면허시험장(27곳), 선원신분증을 취급하는 지방해양수산청(11곳) 등이다. 기증원은 제도의 안착 위해 이달부터 신분증 발급 담당자를 대상으로 실무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이삼열 한국장기조직기증원장은 "생명 나눔은 고귀한 사랑의 실천이며 기증은 누구나 할 수 있는 나눔의 시작"이라며 "신분증 발급 과정에서 생명 나눔의 마음을 전달할 수 있는 기증 희망 등록에 많은 참여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2025-06-26 21:17:11

  • 새벽 아파트 화재로 숨진 7살 장기기증 절차 진행

    새벽 아파트 화재로 숨진 7살 장기기증 절차 진행

    최근 부산의 한 아파트에서 부모가 새벽 근무를 하러 나간 사이 불이 발생해 어린 자매가 숨진 가운데, 동생인 7살 여아의 장기기증 절차가 이뤄졌다. 26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부산진구 아파트 화재로 크게 다친 7살 A양이 병원에서 치료받다가 전날 뇌사 판정을 받게 됐다. 화재 당시 10살 언니는 현장에서 숨졌다. 자매의 부모는 뇌사에 빠진 둘째 딸의 장기를 기증하기로 결정했다. 현행 '장기등이식에관한법률'에 따르면 장기기증은 사실상 뇌사자만 가능하다고 명시하고 있다. 자매의 빈소는 따로 차려지지 않았지만, 유골은 이날 오후 경남 김해 낙원추모공원에 봉안됐다. 낙원추모공원 관계자는 "생명 나눔의 숭고한 정신을 기억하기 위해 두 자매의 안치단을 무상으로 제공했다"며 "아직 장기 및 조직 기증자를 위한 실질적인 예우 시설이 많지 않은 현실에서 장기기증자를 예우하는 노력이 더 많은 봉안시설과 기관으로 확산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24일 오전 4시 15분쯤 부산 부산진구 한 아파트에서 부모가 새벽 청소일을 하러 자리를 비운 사이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발생했다. 이 불로 집에서 자고 있던 자매(11세·7세)가 의식이 없는 상태로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다. 의료진의 적극적인 치료에도 언니는 숨지고 동생은 응급실에서 화재 발생 이틀 만에 숨졌다.

    2025-06-26 20:36:08

  • 한국 IT 발전 이끈 서상용 박사…장기기증으로 2명 살리고 하늘로

    한국 IT 발전 이끈 서상용 박사…장기기증으로 2명 살리고 하늘로

    30년이 넘도록 공학 분야에서 연구하며 국내 정보통신 기술 발전에 힘을 보탠 서상용(62) 씨가 장기기증으로 타인의 생명을 살리고 하늘의 별이 됐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은 지난달 29일 서 씨가 창원경상국립대병원에서 신장 양쪽을 기증하면서 두 명의 환자를 살렸다고 25일 밝혔다. 서 씨는 인체조직도 기증하면서 100여명의 기능장애 환자들에게도 희망을 줬다. 서 씨는 지난달 22일 대구의 어머니 집에서 쓰러진 이후 병원으로 이송됐다. 의료진의 치료에도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뇌사상태에 빠졌다. 가족은 평소 나눔을 실천했던 서 씨가 다른 생명을 살리고 떠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기증을 결심했다. 대구에서 3남 3녀 중 다섯째로 태어난 서 씨는 KT연구소에 입사한 후 34년간 공학 분야 박사로 근무했다. 은퇴 후에는 가족과의 시간을 소중히 여겼고 자전거와 탁구, 테니스 등 운동도 즐겼다. 서 씨는 조용하면서도 진중한 성품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는 삶을 산 것으로 전해졌다. 고인의 배우자 정난영 씨는 "여보, 그동안 가족을 잘 이끌어줘서 고마워요. 함께한 아름다운 날들을 오래도록 기억할게요. 사랑하고 존경하고 감사해요. 하늘나라에서도 행복하게 지내고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기다려줘요"라고 인사를 전했다. 이삼열 한국장기조직기증원장은 "아름다운 삶을 살다 가신 고인과 유가족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따뜻한 나눔의 마음이 많은 이들에게 희망이 됐다"고 말했다.

    2025-06-25 13:39:56

  • 매일신문 '들리지 않는 SOS, 가족을 짊어진 아이들' 시리즈 이후 법 개정 및 후원 문의 잇따라

    매일신문 '들리지 않는 SOS, 가족을 짊어진 아이들' 시리즈 이후 법 개정 및 후원 문의 잇따라

    가족돌봄청년의 실태를 조명한 매일신문의 '들리지 않는 SOS, 가족을 짊어진 아이들' 기획보도(6월 13일 등)가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대구시의회는 관련 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사회 각계 각층에서 후원 문의도 이어지며 지역사회에 온기를 더하고 있다. 24일 대구시의회에 따르면 김태우 대구시의원(수성구5)은 내달 열리는 임시회에 '대구시 가족돌봄아동·청년 지원에 관한 조례 개정안'을 대표 발의할 예정이다. 이번 개정안의 핵심은 가족돌봄청년의 연령 기준을 대폭 완화한 데 있다. 기존에는 '만 9세 이상~34세 이하'로 규정되어 있었으나, 개정안은 9세인 하한 연령을 없애고 상한 연령을 '39세 이하'로 확대한다. 이에 따라 더 많은 돌봄청년들이 제도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다. 시장의 책무도 강화한다. 개정안에는 돌봄청년의 발굴과 체계적 관리를 위해 3년마다 정기적인 실태조사를 의무화하는 내용이 담겼다. 기존 조례는 '실태조사를 실시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어 조사 주기가 불규칙했고, 정책 수립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어 왔다. 김태우 의원은 "9세 이하의 아동 중에도 가족을 돌보는 사례가 있어 연령 기준 확대가 필요했다"며 "실태조사도 한 번 시작하고 끝낼 게 아니라 최소한 3년 단위로 실시하면서 변화 추이를 살펴야 한다는 판단에서 개정안을 발의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따뜻한 후원의 손길도 이어지고 있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신도시에 거주 중인 독자 A(64) 씨는 알코올 의존증을 앓는 어머니 대신 지적장애 2급 동생을 돌보는 은혜(11·가명) 양의 사연에 공감하며 최대 100만원을 후원하겠다는 뜻을 전해왔다. 대구신세계백화점도 지역 내 가족돌봄청년 후원금 지원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를 위해 초록우산어린이재단과의 접촉하고 있다. 이외에도 독자들은 기사 속에 담긴 여러 돌봄청년들의 사연에 함께 눈물을 흘렸다. 은혜 양 사례를 접한 한 독자는 "멋 부리고 싶을 나이에 모든 걸 버티면서 바르게 자라고 있다는 게 너무 감사하다"며 "하루빨리 엄마가 (알코올 의존증) 치료를 받고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와 줬으면 좋겠다"고 응원했다. 시력을 잃은 아버지를 돌보는 우민(16·가명) 군의 사연을 접한 독자는 "가족을 부양하느라 내 미래를 버린다면 저 청년들에게 살아갈 의미가 무엇이 있겠느냐"며 "진정 복지가 필요한 쪽은 바로 여기"라고 말했다. 대구시 관계자는 "발굴의 어려움과 지원 절차의 진입 장벽 등 현장에서 마주한 핵심 과제를 보도를 통해 매우 정확하게 짚었다"며 "지속 가능한 사례 관리의 필요성에 공감하며 제도 개선과 정책 실행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매일신문은 4개 편의 '들리지 않는 SOS, 가족을 짊어진 아이들' 기획 기사를 보도했다. 하루에 반나절 이상을 돌봄에 쓰며 청춘을 반납한 가족돌봄청년들의 삶을 밀착 취재했고, 이를 바탕으로 지원제도의 문제점과 해법을 담는 데 주력했다.

    2025-06-24 15:46:47

  • "돌봄청년 발굴작업과 촘촘한 지원책으로 거듭나야" [들리지 않는 SOS, 가족을 짊어진 아이들] (4,끝)

    지난 2021년 대구에서 간병 살인사건이 발생한 이후 가족돌봄청년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지 4년이 흘렀다. 우리 사회에서 이들을 위한 여러 지원제도가 도입된 것은 가시적인 성과다. 하지만 충분한 수요를 반영하지 못해 사각지대가 발생한다는 점은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전문가들은 돌봄청년의 정확한 수를 파악하고, 이들이 생애주기별 과업에서 뒤처지지 않도록 복지 울타리를 촘촘히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문 닫고 나오면 모르는 돌봄청년인지 몰라…'발굴 작업 중요' 국내에서 가족돌봄청년 문제가 불거졌지만 관련 사업은 여전히 걸음마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박영주 대구행복사회서비스원 연구위원은 "가족돌봄청년 사업은 대구뿐만 아니라 타 시도에서도 하고 있지만 초기 단계"라며 "돌봄청년이 얼마나 되는지부터 고민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특히 발굴 위주의 정책 수립이 우선시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선 일선 행정라인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소희 대구대 청소년상담복지학과 교수는 "돌봄청년들을 찾아내기 위해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등 통계를 갖고 있는 행정복지센터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복지공무원들이 돌봄청년 발굴 사업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다 보니 뒷전으로 밀리고 있지만, 행정복지센터의 적극적인 움직임이 없다면 사실상 발굴이 어렵다"고 말했다. 돌봄청년들이 스스로 인지 정도가 낮기 때문에 관련 홍보를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초록우산의 가족돌봄 아동·청소년 지원방안 모색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가족을 부양하는 청년 가운데 자신이 가족돌봄자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비율이 56.5%에 달했다. 김민지 대구시행복진흥사회서비스원 부연구위원은 "가족돌봄청년들의 발굴이 더딘 이유는 가족 내에서 해결하려는 의지가 반영됐기 때문"이라며 "본인들이 돌봄청년으로서 지원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 수 있을 만큼 지자체에서의 홍보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돌봄청년들이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제출해야 하는 서류들을 간소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예컨대 생계비와 교육비, 의료비, 주거비 등을 명목으로 지급하는 자기돌봄비의 경우 ▷가족관계증명서 ▷가족 장애인증명서 ▷진단서 ▷건강보험납입증명서 ▷장기요양인정서 등을 제출해야 한다. 정 교수는 "엄마가 아픈 가정이라면 자식이 돌봐야 하는데, 다른 가족은 왜 엄마를 돌볼 수 없는지에 대한 증명서부터 온갖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며 "이 절차를 설명하는 순간 청년들은 '하지 않겠다'고 답한다. 가뜩이나 민감한 가정사를 알리고 싶어 하지 않는 상황에서 조건이 너무 까다롭다. 절차를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동행을 위한 지원책 개선 필요 돌봄청년을 위한 각종 복지 제도들이 더욱 촘촘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기존 제도와 중복되지 않으면서 청년들이 원하는 부분을 긁어줄 수 있는 지원책들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 연구위원은 "돌봄청년들은 기초생활수급자 혜택으로 경제적 도움을 받고 있다. 비슷한 혜택을 주는 것보다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며 "서울시의 경우에는 청년들에게 문화 체험 등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는데, 대구에서도 어떤 추가 지원이 필요로 하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적 지원 과정에서 소득수준으로 제한을 걸은 것도 문제로 여겨지고 있다. 조기현 돌봄청년커뮤니티 '엔(N)인분' 대표는 "보건복지부는 자기돌봄비를 지급하는 데 있어서 중위소득으로 제한을 걸었다. 돌봄 부담은 소득 수준과 상관없이 절대적으로 시간을 써야 하는데, 지금의 제도는 가난한 사람만 받아 가라는 것"이라며 "정부가 돌봄청년의 문제 실태를 제대로 알지 못했거나 기존처럼 열등 처우의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부연구위원도 "소득 수준을 볼 것이 아니라 '얼마나 지출되는가'를 봐야 한다. 300만원을 벌더라도 병원비가 200만원이 나가면 어려움이 큰 것"이라며 "돌봄청년들이 처한 상황들까지 총체적으로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돌봄청년에 대한 통합사례관리가 끊김 없이 지속될 필요가 있다는 제언도 나왔다. 정영태 대구시행복진흥사회서비스원 선임연구위원은 "통합사례관리로 선정되는 청년들은 교육급여부터 돌봄, 주거 개선 등이 지원되는데 일정 기간 이후 끝나게 된다"며 "한 번 서비스를 받고 다음 차례가 올 때까지 공백이 생기는데, 이 기간에 돌봄청년가정은 또 다시 문제가 생겨난다. 새로운 가구를 찾고 지원해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 번 지원으로 끝나기보다 계속 돌봐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가족돌봄에 대한 부담으로 지친 청년들을 돌봐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 2022년 돌봄청년 8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번아웃을 경험했다는 비율은 47.9%였다. 전체 청년(33.9%)과 비교하면 14%포인트 차이를 보인다. 정 교수는 "청소년기에는 친구들과 어울리고 진로도 선택해야 하는 생애주기별 과업이 있다. 하지만 아픈 가족을 돌봐야 하다 보니 자기 욕구를 스스로 억압하게 되고, 누적되다 보면 다른 사회적 문제로 발현될 가능성이 있다"며 "대인 관계에서 눈치를 본다는 등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인데, 성장 과정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줄일 수 있도록 멘토나 심리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 차원에서 지역 곳곳에 숨은 돌봄청년들의 관리가 어려운 만큼, 지자체의 행정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문도 있다. 양난주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서울에서는 '돌봄 SOS', 경기도는 '누구나돌봄', 광주에서는 '광주다움' 등으로 돌봄이 이뤄지는데 대구에서는 이와 같은 게 없다"며 "중앙정부에서 떨어지는 일만 수동적으로 하는 지자체가 아닌, 지역의 문제를 우리만의 방법으로 책임을 지겠다는 태도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전담기구·인력 신설 및 충원 시급 돌봄청년들을 제대로 지원하기 위한 전담기구가 지역 곳곳에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대구의 경우 2023년 8월 조례가 시행됐지만 아직 전담기구가 부재한 상태다. 그 대안으로 지난해 정부의 돌봄청년 전담기관인 '청년미래센터'가 확대돼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해당 센터는 인천·울산·충북·전북 등 4곳에만 설치돼 있다. 조 대표는 "청년미래센터가 시범사업으로 4곳에 두고 있지만 광역지자체에 하나씩 있는 센터가 전체 돌봄청년의 사례를 관리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전화로 서비스 연결시키는 것만 할 것이 아니라 어려움이 무엇인지 종합적으로 파악하고 문제의 근원을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센터 수가 적어 접근성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국내 최초로 전담기구를 만든 서울시의 사례를 눈여겨볼 만하다. 서울시는 지난 2023년 서울시복지재단에 업무를 위탁해 돌봄청년들을 발굴하고, 금융 등 각종 서비스를 연계시키고 있다. 지원 인력을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경은 경북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돌봄청년들이 겪는 어려움을 도와주고, 미래 비전을 제시해 줄 수 있을 정도의 역량을 갖춘 전문가 인력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또 이들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질을 평가하면서 인력을 차츰 늘려가야 한다"고 말했다. 대구시 관계자는 "사회복지관협회, 초록우산 등 기관들과 지난해 협약을 맺고 가족돌봄청년들을 지원하고 있다"며 "신학기를 집중 조사 기간으로 고려하고, 면담하면서 돌봄청년 사례들을 발굴하고 있다. 이외에도 각 구군과 대학에도 발굴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지원 사업 홍보 영상을 제작하는 등 앞으로 역량을 더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2025-06-22 15:23:43

  • "헌신적인 삶" 뇌사로 떠난 60대 여성, 두 사람에게 새 생명 선물

    60대 여성이 갑작스러운 뇌사로 생을 마감했지만, 그녀의 따뜻한 결심은 두 사람에게 새 삶을 안겨줬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은 지난달 22일 양산부산대병원에서 고 한인애(65) 씨가 뇌사 장기기증으로 양측 신장을 기증했다고 19일 밝혔다. 이 장기를 통해 각각의 환자 두 명이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됐다. 한 씨는 지난달 12일 자택에서 쓰러진 채로 남편에게 발견돼 병원으로 긴급 이송됐으나,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뇌사 상태에 빠졌다. 회생의 가능성이 희박한 상황에서 가족들은 고인을 붙잡는 것이 오히려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아닐까 고민했고, 평소 "삶의 끝에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해왔던 고인의 뜻을 되새기며 장기기증을 결심했다. 고인은 부산에서 2남 3녀 중 넷째로 태어나, 젊은 시절 보건소에서 일한 뒤 결혼 후 자녀와 가족을 위해 헌신적인 삶을 살아왔다. 늘 쉬지 않고 무언가를 하고, 작은 것이라도 남을 도우려는 따뜻한 마음씨로 주변을 돌봤다고 가족들은 회고했다. 자녀 정지혜 씨는 "하늘나라에서는 더 이상 가족 걱정은 하지 말고 건강하고 재미있게 지내시라"며 "우리도 엄마처럼 착하게 살려면 기증을 해야할 것 같다"고 인사를 건넸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은 고인의 고귀한 결심과 가족들의 숭고한 선택에 깊이 감사드린다"며 "기증자 유가족의 용기와 따뜻한 마음이 우리 사회 전반으로 널리 퍼지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2025-06-19 10:08:29

  • 반쪽짜리 지원…존재조차 파악 안 되는 돌봄청년 [들리지 않는 SOS, 가족을 짊어진 아이들] (3)

    반쪽짜리 지원…존재조차 파악 안 되는 돌봄청년 [들리지 않는 SOS, 가족을 짊어진 아이들] (3)

    돌봄청년들은 가족을 부양하는 데 많은 시간을 쏟으면서 생애주기별 과업을 놓치고 있다. 본인보다 가족의 인생을 우선 고려하는 탓에 삶의 분기점을 놓치고 미래 낙오자로 이어질 우려가 크다. 복지 울타리가 누구보다 절실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들의 정확한 현황조차 집계하지 못하고 있다. 지원 프로그램도 소득을 기준으로 제한하는 등 수요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통계조차 파악되지 않는 가족돌봄청년 대구에 거주하는 초등학교 5학년 황세희(11·가명) 양은 지난해 가족돌봄청년으로 사례 관리 대상에 이름을 올렸다. 유방암을 앓는 어머니 대신 지역아동센터를 찾고 어려움을 알렸다. 센터는 세희 양을 아동복지전문기관인 초록우산에 연계해 돌봄서비스 등을 받도록 했다. 세희 양은 "센터에서 부족한 공부를 시켜주고 있고 저녁밥도 챙겨준다. 혜택이 많은 것 같아서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를 앓고 있는 동생도 데려가고 있다"고 말했다. 가족을 부양하는 청년들 모두가 자발적으로 어려움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세희 양처럼 센터나 복지관을 직접 찾아 아픈 가족이 있다는 사실을 밝히는 돌봄청년은 극히 일부다. 초록우산 대구지역본부 관계자는 "먼저 가족돌봄청년이라고 밝히는 사례는 정말 손에 꼽힌다"며 "대부분 청년들은 복지제도와 같은 정보를 접하는 데 한계가 있고, 아픈 가족을 돌보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자신이 돌봄청년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족돌봄청년은 힘든 가정사를 외부에 알리기를 꺼리면서 정확한 수를 파악하기도 어렵다. 연구기관과 민간단체 등 조사 기관별로 돌봄청년의 연령이나 정의 등 기준도 제각각이다. 지난해 통계청이 펴낸 '한국의 사회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가족돌봄청년(13~34세) 추정치는 15만3천44명이다. 이는 ▷가구 내 6개월 이상 돌봄을 필요로 하는 가족원 존재 ▷돌봄이 필요 없는 중장년(35~64세) 가족이 없는 경우 등에 해당되는 사례들만 추린 수치다. 장종태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가족돌봄청년 현황 자료에 따르면, 복지부는 지난 2023년 실태조사를 통해 전국 돌봄청년을 9만2천93명으로 추산했다. 조사 과정에서 자료 활용 기준이 상이해 추정치 차이도 큰 상황이다. 대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대구시행복진흥사회서비스원은 지난해 2월 기준 지역에 5만1천332명이 있는 것으로 추산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설문조사에서 도출된 돌봄청년 추정 비율을 지역 인구에 적용한 수치다. 이와 달리 대구시는 전체 돌봄청년을 200명 안팎으로 집계하고 있다. 김지선 한국사회보장정보원 부연구위원은 "가족돌봄청년 수를 추정할 때 인구 총조사 자료를 근거로 하는 기관도 있고, 설문조사를 활용해 파악하는 곳도 있다. 어떤 데이터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추정치가 달라진다"고 말했다. ◆ 가족돌봄청년의 연령 범위가 제각각 2022년 초 정부가 가족돌봄청년 지원대책 수립 방안을 발표하면서, 각 지자체는 조례를 제정하며 법적 근거 마련에 나섰다. 초록우산이 펴낸 '가족돌봄 아동·청소년의 특성과 돌봄 현실에 기반한 지원방안 모색'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기준 전국에 91개의 가족돌봄청년 관련 조례가 제정되어 있다. 주된 내용에는 지원사업과 실태조사, 기관·단체와의 협력 등이 담겼다. 문제는 지자체마다 돌봄청년에 대한 연령 범위가 상이하다는 점이다. 지자체들은 최소 연령을 9~18세 범위에서 정했고, 최고연령 또한 18~39세 사이로 명시하고 있다. 돌봄청년을 고려하는 기준이 달라, 조사·발굴 과정에서 혼선을 빚을 우려도 크다. 대구에선 대구시와 서구, 달서구 등이 가족돌봄청년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한 상태다. 하지만 같은 대구 지역에서도 연령 범위가 통일되지 않는다. 달서구의 경우 돌봄청년을 9세부터 39세로 규정하고 있지만, 대구시와 서구는 최고연령을 34세까지로 제한했다. 달서구에 거주하는 35~39세의 돌봄청년이 대구 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면 지원 혜택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생기는 것이다. 조례는 있지만 뚜렷한 후속 대책이 없어 그 취지가 무색해지는 경우도 적잖다. 지난해 조례를 시행한 서구와 달서구는 지원계획의 수립이나 관련 사업을 수행한 적이 없다. 서구·달서구청 관계자는 "대구시에서 사업이 내려오는 걸 연계해서는 하고 있지만, 자체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사업은 없다"고 말했다. ◆ 빛 좋은 개살구에 그친 지원책들 최근 몇 년간 가족돌봄청년들을 지원하는 제도들이 속속 만들어졌지만, 청년들이 피부로 와닿는 데까지는 한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구시는 지난해부터 돌봄청년들에게 '일상돌봄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요양보호사 또는 가정관리사 등이 아픈 가족의 병원 동행부터, 집안일을 지원하면서 청년들의 어려움을 해소한다는 취지다. 하지만 일상돌봄서비스는 돌봄청년들의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해당 서비스는 매달 최대 72시간까지만 주어진다. 돌봄청년들이 하루에 2시간밖에 자기 시간을 가질 수밖에 없는 셈이다. 소득수준에 따라 차등화된 본인 부담금도 내야 한다. 일상돌봄서비스의 개선이 시급하다는 평가도 있다. 대구 한 일상돌봄 사회복지사는 "서비스 제공자가 가사 지원을 위해 집에 방문하는데, 요리를 해줄 경우 음식을 구매해서 가는 게 아니다"며 "이용자인 청년들이 장 봐놓은 걸 조리해 주는 정도에 그친다. 경제적 여유가 없어 식재료를 준비하지 못하는 상황이면 해당 서비스가 무용지물이 된다"고 했다. 지원 대상을 소득 기준으로 제한하는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대구시는 올해부터 초록우산 후원을 통해 돌봄아동청년에게 생계비와 교육비, 주거비 등 가족돌봄비 명목으로 가구당 최대 100만원을 지원하고 있다. 문제는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 중위소득 100% 이하만 해당된다는 점이다. 연령 또한 만 24세 이하로 범위를 좁혔는데, 이는 가족돌봄청년의 최고연령을 34세로 고려하는 대구시 조례와도 어긋난다. 정부가 돌봄청년의 적성과 진로 희망 등을 상담하면서 미래설계를 돕도록 하는 '청년미래센터'는 일부 지역에 그친다. 인천 미추홀구와 울산 중구, 전북 전주시, 충북 청주시 등 4곳에만 설치되어 있다. 사실상 대구에는 돌봄청년을 전담하는 기관이 부재한 상태다. 김재우 대구시의원은 "대구시는 조례에 명시된 지원계획과 시행계획을 수립하고 청년미래센터 같은 거점 기반 공간을 조성해야 한다. 또 전담 인력 배치와 자기돌봄비용 등 실질적인 지원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2025-06-17 14:57:01

  • 올해 1분기 장기조직기증 희망등록 작년보다 4% 증가…여전히 국민 5% 수준에 그쳐

    올해 1분기 장기조직기증 희망등록 작년보다 4% 증가…여전히 국민 5% 수준에 그쳐

    올해 장기·조직 기증 희망등록 사례가 지난해보다 소폭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누적 희망등록자는 여전히 기증 선진국에 비해 부족하고, 뇌사 장기기증 건수는 오히려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17일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 등에 따르면 올해 3월 말 기준 기증 희망등록 건수는 모두 2만8천980건(장기 1만6천194·인체 조직 1만2천786)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2만7천771건보다 약 4.4% 증가한 수치다. 국내 누적 기증 희망등록자는 사망자와 등록 취소자를 제외하고 253만9천84명이다. 전체 인구의 약 5% 수준으로, 국민 100명 중 5명만이 장기와 조직 기증을 희망하고 있는 셈이다. 희망등록률이 60%를 넘는 미국 등 선진국과 비교하면 한참 낮은 수치다. 현행법상 장기이식이 가능한 뇌사자 기증은 감소하고 있다. 올해 5월 말 기준 뇌사 장기기증은 143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95건)보다 26.7% 줄었다. 매달 약 29건의 기증이 이뤄지는 현 추세가 연말까지 이어지면 지난해 연간 기증 건수인 397건에도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한편 정부는 생명나눔 문화 확산을 위해 제도 개선에 나서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오는 8월 21일부터 신분증 발급 시 장기기증 희망등록을 안내하기로 했다. 주민등록증을 발급하는 동사무소와 구청(여권), 경찰서·면허시험장(운전면허증), 지방해양수산청(선원신분증) 등에서 이뤄진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올해 기증 여건이 지난해보다 좋지 않은 상황"이라며 "장기기증 희망등록 안내가 전국 동사무소와 면허시험장 등 누구나 방문하는 곳에서 이뤄지는 만큼, 기증 접점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2025-06-17 12:16:26

  • [들리지 않는 SOS, 가족을 짊어진 아이들] (2)

    [들리지 않는 SOS, 가족을 짊어진 아이들] (2)"나는 언제쯤 나를 살아도 될까요?" 돌봄의 굴레에 미래가 사라졌다

    누군가는 오늘을 발판 삼아 차곡차곡 미래를 설계해 나간다. 학창 시절에는 꿈을 찾고 청년기에는 취업을 준비하며, 언젠가는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꾸리는 삶을 그린다. 반면 아픈 가족을 부양하며 하루를 버티는 것이 전부인 가족돌봄 아동·청소년에게 '내일'은 늘 뒷순위로 밀려난다. 돌봄의 끝이 어디쯤인지 가늠조차 어려운 현실에서, 이들은 미래를 상상하는 일조차 사치처럼 느껴진다고 말한다. ◆ "제 꿈을 이룰 수 있을까요…?" 지난달 21일 오후 2시쯤 찾은 대구 동구의 한 오래된 주택. 40년이 넘은 이 집에서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하시은(14·가명) 양은 다시 외출할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어머니 이송희(48·가명) 씨의 정신과 진료와 정형외과 시술이 예정된 날여서다. 시은 양은 7살 무렵부터 어머니를 돌보기 시작했다. 송희 씨는 혼인신고조차 하지 않은 채 집 밖으로 나돌았던 남편 때문에 우울증을 앓다가 옥상에서 뛰어내려 크게 다쳤다. 이후 약물 부작용으로 치매 증상까지 나타나면서 혼자선 외출이 어려운 상태다. 병원에 함께 가는 날이면, 시은 양은 어머니가 진료실에 들어간 짧은 순간을 제외하곤 내내 곁을 지켰다. 말동무가 돼 주고 건망증으로 자주 잊어버리는 송희 씨의 기억을 되살려 준다. 3시간 가까이 병원을 돌다가 집으로 돌아왔지만 이미 하루가 다 지나간 기분이다. "병원을 같이 가지 않을 때는 약국에 가서 엄마가 복용하는 약을 대리 처방받고 있어요. 엄마는 항상 아프다면서 정해진 양보다 더 많이 드셔서 약이 항상 부족해요. 마약성 진통제도 있어서 약을 탈 때마다 약사 선생님께 눈치가 많이 보여요." 몸도 마음도 망가진 송희 씨는 항상 딸이 곁에 있어 주길 바란다. 그래서 시은 양의 휴대전화는 때를 가리지 않고 수시로 울린다. "수업하다가도 엄마가 전화 와서 '집에 좀 오면 안 되겠냐'고 하세요. 초등학교 때는 한 달에 4~5번 정도였고, 지금은 중학교 들어왔지만 2번씩은 부르는 것 같아요. 제가 없으면 엄마가 불안 증세를 보이세요." 올해 중학교 2학년이 된 시은 양은 비교적 이른 나이에 제과제빵사라는 꿈을 정했다. 아픈 엄마의 식사를 위해 부엌을 드나들면서 요리에 자신감이 생긴 것. 지난해에는 홈베이킹과 바리스타 자격증까지 땄다. 고등학교도 제과제빵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경기도 시흥시 한국조리과학고로 정했다. 하지만 꿈을 이룰 수 있을지 막막하기만 하다. 목표로 하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려면 거주지를 옮겨야 하는데, 자신이 없으면 대구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송희 씨가 마음에 걸린다. "전 프랑스나 영국으로 유학을 가서 제과제빵을 더 배우려는 생각도 있어요. 그런데 엄마가 편찮으시니까 제가 설계한 미래를 그대로 실현할 수 있을지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미래 계획에 어려움을 겪는 돌봄청년은 36.7%로 3명 중 1명꼴이다. 시은 양처럼 홀로 가족을 부양하는 주돌봄자의 경우 46.8%로 더욱 높게 나타났다. 이들이 자신의 미래를 꾸리지 못하는 이유로는 가족 돌봄에 많은 시간을 쏟고 있어서다. 시은 양은 평일에 하루 6시간, 주말에는 10시간 가까이 송희 씨를 돌보고 있다. 돌봄청년의 평균 돌봄시간이 주당 21.6시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시은 양은 두 배 이상 부담하는 셈이다. 최근에는 친인척이 시은 양의 꿈에 간섭하기 시작했다. 제과제빵은 돈이 많이 들어간다는 이유로 수입이 안정적인 '간호사'를 추천한 것. 아픈 어머니를 돌보려면 간호 계열이 더 낫다는 말까지 들었다. "억지로 간호 관련 책을 사서 읽어봤는데 너무 괴로웠어요. 간호사가 제 꿈이 아니잖아요. '이게 맞나'라는 생각이 매일 들면서 억지로 하다가는 병이 날 것 같았어요. 미래를 생각하는 과정에서 저를 둘러싼 환경은 아무래도 친구들과 차이가 큰 것 같아요." ◆"할머니 생각해서 아동학과 전공 포기했어요" 김가람(20·가명) 씨는 학교 교사와 관련된 전공을 택했지만 처음부터 꿈꾸던 진로는 아니었다. 중·고교 시절에 아동학과 진학을 희망하면서 수도권 대학에도 합격했다. 하지만 "우리 손녀가 대구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할머니 한마디에 꿈을 포기하고 대구에 남았다. 가람 씨는 친할머니와 살고 있는 '조손 가정'이다. 기억 속에 할머니는 관절통으로 거동이 어려울 만큼 아픈 사람이었다. 수술까지 받게 되면서 시장이나 식당에서의 소일거리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됐다. 생계를 책임졌던 할머니가 쓰러지면서 가람 씨는 곧장 가장 역할을 해야 했다. 대학생이 되자마자 결혼식 뷔페 아르바이트부터, 국가 근로장학생 등 소위 돈 좀 되는 일이라면 가리지 않았다. 2년 전부터는 할머니가 뇌경련으로 일어날 수도 없게 됐다. 대소변을 가리는 일부터 씻기는 것까지 모두 가람 씨가 담당해야 했다. 입원 기간에는 학교를 마치면 곧바로 병원으로 달려가 할머니를 돌봤다. 지금도 마찬가지. 대학생이지만 학교 수업을 무단으로 결석하고 할머니를 병원에 데려가야 할 때가 잦다. "저는 보살핌을 받기보다 항상 할머니를 돌보는 사람이었어요. 할머니가 병원에서 한글을 못 읽으시고 움직이시는 것도 어려워서 제가 곁에 있어야 해요. 진료가 끝나도 집에 보내드리고 나서야 다시 학교에 갈 수 있는데, 수업 진도를 따라가는 게 너무 벅차요." 할머니를 돌보느라 여느 또래처럼 대학 새내기를 누리지 못한 것도 아쉽지만 앞으로가 더욱 문제라는 가람 씨. 내년에 있을 교사 임용시험을 준비해야 해서다. 공부에 전념하고 싶지만, 학업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할머니가 방문 요양서비스를 받는 하루 2시간이 전부다. 이 시간이 끝나면 독서실에 있다가도 곧장 집으로 가야만 한다. "하루에 40~50% 정도는 할머니 돌봄과 가사 부담에 짓눌리고 있는 것 같아요." 초록우산에 따르면 가람 씨와 같은 돌봄청년들은 제대로 된 개인 시간을 갖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루 여가 시간이 '1시간 미만'이라는 응답이 6.5%, '1시간 이상 ~ 2시간 미만'은 18.8%로 집계됐다. 4명 중 한 명은 하루 2시간의 여유도 갖지 못하고 있다. 돌봄에 많은 시간을 쏟다 보니 사랑을 할 여유도 없었다. 최근에는 남자친구와도 이별을 하게 됐다. "만날 시간이 없었어요. 할머니 돌보는 것만 해도 힘들어요. 결혼은 돈과 마음에 여유가 있어야 할 수 있는 거잖아요. 저는 할머니를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이 너무 커요." 앞으로 이 돌봄의 굴레가 얼마나 이어질지 모른다는 사실이 더 막막하다. 병원 일정과 가사 부담까지 모두 짊어진 상황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스스로도 확신이 없다. "내년 11월에 임용시험이에요. 할머니가 병원을 오갈 때, 저 대신 도와줄 사람만 있어도 공부에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게 전혀 안 돼요." [들리지 않는 SOS, 가족을 짊어진 아이들] 연재 순서 1편_부양 떠안은 어린 가장〈strong〉2편_돌봄 굴레 속 사라진 꿈〈/strong〉3편_복지 사각지대에 내몰린 청소년4편_촘촘한 지원과 든든한 울타리

    2025-06-15 16:45:16

  • [취재현장-임재환] 장기기증 희망등록, 기자가 먼저 서명한 이유

    [취재현장-임재환] 장기기증 희망등록, 기자가 먼저 서명한 이유

    '등록번호 2041047'. 이달 2일 기자가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에 장기기증 희망등록을 하고 받은 숫자다. 국내에서 204만1천47번째 기증 희망등록자라는 뜻이다. 서른두 살의 나이에 조금 늦게 기증 의사를 밝혔다. 가족만큼이나 가까운 지인에게 이 사실을 전하니 '주변 사람들이 기증 의사를 알고 있으면 되지, 굳이 희망등록까지 할 필요가 있었냐'는 대답이 되돌아왔다. 생명 나눔 의사를 구두가 아닌 서면으로 남겨야겠다는 데에는 개인적으로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로는 뇌사에 빠져 법상 장기기증이 가능한 순간이 오면, 내 가족이 중환자실 앞에서 고통스러운 결정을 내리지 않기를 바랐다. 지난 두 달간 장기기증 기획 시리즈 취재 과정에서 만난 유족 7명은 중환자실 앞이 그렇게나 견디기 힘들었다고 전했다. 자식이 의식불명이라는 현실조차 받아들이지 못한 순간에 '타인을 위해 장기를 기증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받아 든 한 아버지는 24시간 내내 울부짖었다. 사랑하는 가족이 생전 기증 의사를 입 밖으로 꺼낸 적이 없다면 그 고통은 배가 된다. 식물인간과 달리 뇌사 상태는 다시 깨어난다는 기적이 없어서 기증 의사를 물어볼 수도 없다. 생명 나눔 뜻을 문서로 반드시 남겨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느꼈다. 두 번째 이유는 한 사람의 장기기증은 최대 9명에게 새로운 삶을 선물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조직까지 나누게 되면 100여 명이 되살아나는 기적이 펼쳐진다. 이틀에 한 번씩 신장 투석 주사를 꽂고 인공심장을 부여잡는 환자들이 다시 걷고 숨을 쉬는 데 힘을 보태고자 했다. 생을 마감하면 한 줌의 재로 사라질 장기들을 건네면서, 죽음을 앞뒀던 환자들이 인생의 제2막을 써 내려가길 바랐다. 마지막 이유는 기증 희망등록이 늘어날수록, 우리 사회에 생명 나눔 문화가 뿌리내릴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미국 등 기증 선진국은 60% 이상의 장기기증 희망등록률을 보인다. 반면 우리나라는 2023년 기준 전체 인구 대비 3.4% 수준에 그친다. 그 결과 실제 기증으로 이어진 건수는 큰 차이를 보인다. 같은 해 한국의 인구 100만 명당 뇌사 기증자 수는 9.32명인 반면, 미국은 48.04명으로 집계됐다. 한국 사회에는 부모님이 주신 신체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유교적 가치관이 남아 있다. 해외처럼 장기기증이 일상적인 문화로 자리 잡기 위해선, 더 많은 국민이 기증 의사를 공개적으로 표명하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 기자는 취재를 통해 생명 나눔을 가까이하면서 기증 희망등록을 하게 됐다. 장기기증이라는 주제가 낯선 사람들은 가족의 장기기증을 해야 할 때가 오거나, 본인이 장기를 이식받을 상황에 놓이지 않으면 그 가치를 헤아리기 어렵다. 다행히 오는 8월 21일부터는 신분증을 발급받을 때 장기기증 희망등록을 안내받는 제도가 시행된다. 주민등록증을 발급하는 동사무소와 구청(여권), 경찰서·면허시험장(운전면허증), 지방해양수산청(선원신분증) 등에서 이뤄진다. 일상에서 생명 나눔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반가운 움직임이다. 기증 희망등록을 하더라도 최종 결정은 남겨진 가족의 몫이다. 하지만 그 의사를 미리 밝히는 이들이 많아질수록, 우리 사회가 생명 나눔 활성화로 나아간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작은 결심들이 모여 장기기증이 문화로 받아들여지는 그 기적의 순간이 오길 바란다.

    2025-06-15 14:41:02

  • [들리지 않는 SOS, 가족을 짊어진 아이들]

    [들리지 않는 SOS, 가족을 짊어진 아이들] "가족을 돌보면서 청춘을 반납했습니다"

    지난 2021년 5월 8일 어버이날. 119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신고를 한 건 아들이었다. 당시 22살이던 이 청년은 10년 전부터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를 홀로 돌봐왔다. 심리적·경제적 압박을 버티지 못한 끝에, 아버지를 방치하면서 '간병살인'이라는 비극을 초래했다. 이 사건은 아픈 가족을 돌보는 청년들의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 계기가 됐다. 한때는 '소년소녀가장'이라 불리며 동정의 대상으로 여겨졌던 청년들의 민낯이 낱낱이 드러난 것이다. 이들의 고통스러운 삶은 현재도 여전하다. 대구의 초등학교 5학년 여학생은 술에 취한 어머니 대신 여덟 살 지적장애 동생을 챙기느라 지각하고 있다. 시력을 잃은 아버지의 병원 동행을 위해 학교를 결석해야만 하는 고등학생도 있다. 보살핌이 필요한 나이의 청소년들은 아픈 가족을 위해 어른보다 더 어른스럽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 대구시행복진흥사회서비스원 조사에 따르면 돌봄청년(311명) 중 절반 이상이 일상생활 도움과 생계비를 부담하고 있었다. 오늘 하루를 버티는 것이 전부인 돌봄청년들은 또래처럼 미래를 계획하는 일도 쉽지 않다. 건망증을 앓는 어머니의 분리불안으로 인해 그 딸은 희망하는 대학교를 포기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꾸리는 것이 사치에 가깝다는 대학생도 있다. 이렇게 가족돌봄에 내몰린 청년(13~34세)은 지난해 2월 기준, 대구에 5만1천여명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대구시행복진흥사회서비스원이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설문조사에서 도출된 돌봄청년 추정 비율을 지역 인구에 적용해 산출한 수치다. 2022년 초 정부가 가족돌봄청년 지원대책 수립 방안을 발표했지만, 정책은 수요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지원 대상을 소득 기준으로 제한하고, 이들을 지원할 인력과 전담기구는 부족하다. 매일신문은 지난 한 달간 초록우산 대구지역본부의 도움을 받아 가족을 부양하는 돌봄청년 8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하루에 반나절 이상을 돌봄에 쓰며 청춘을 반납한 이들의 삶에 가까이 다가가 봤다. 이를 바탕으로 돌봄청년의 지원제도의 문제점, 해법을 담은 시리즈를 4회에 걸쳐 보도한다.

    2025-06-12 18:18:00

  • [들리지 않는 SOS, 가족을 짊어진 아이들] 아픈 가족 손발 역할

    [들리지 않는 SOS, 가족을 짊어진 아이들] 아픈 가족 손발 역할 "책 한 장 넘길 여유도 없어요"

    보살핌이 필요한 나이에 가족을 등에 짊어진 청춘들이 있다. 아픈 부모와 동생, 조부모를 돌보며 시간 빈곤에 시달리는 이들은 '가족돌봄청년'이라 불린다. 또래들과 달리 학업과 교우 관계는 뒷전으로 밀려나기 일쑤다. 따돌림이 두려워 어두운 가정사를 입 밖에 내는 것조차 쉽지 않다. 아픈 가족을 부양하는 것이 당연하다며 어른보다 더 어른스럽게 살아가지만, 이들이 감당해야 할 심적 부담은 이미 한계를 넘어섰다. ◆ 시력 잃은 아버지 병원 위해 '결석' 대구 한 고등학교에서 1학년으로 재학 중인 최우민(16·가명) 군은 한 달에 한 번 학교에서 '인정 결석'을 받고 있다. 아버지 영석(가명) 씨의 병원 진료를 위해 하루를 통째로 비워야 해서다. 영석 씨는 급격히 나빠진 시력으로 사실상 실명 상태라 홀로 외출할 수 없다. 영석 씨의 눈에 문제가 생겼던 건 11년 전쯤. 따끔거림과 간지러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단순한 안구 질환이라 생각하고 여러 안과를 전전했지만 정확한 병명을 밝혀내지 못했다. 그러다 5년이 지난 시점에서 자가면역질환인 '베체트병'으로 인한 시력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됐다. 하지만 증상 발병 후 오랜 시간이 지난 탓에 손을 쓸 수가 없었다. 왼쪽 눈 시력은 0.03이 채 안 되고 오른쪽 눈은 보이지 않는다. 어머니는 아들의 두 돌이 안 됐을 무렵 이혼 후 집을 떠났다. 우민 군은 아버지를 돌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자신이라는 걸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 그렇게 6년 전부터 아버지의 보호자 역할을 하고 있다. 병원을 가는 날이면, 영석 씨는 안과부터 류마티스 내과까지 여러 진료과를 돌아야 한다. 우민 군은 앞이 보이지 않는 아버지를 대신해 복잡한 병원 서류를 작성하고 있다. 검사실을 오갈 때는 손을 꼭 잡고 함께 걷는다. 우민 군과 같은 가족돌봄청년들은 집안일의 부담도 함께 지고 있다. 지난해 대구시행복진흥사회서비스원이 311명의 돌봄청년을 조사한 결과, 음식 준비나 설거지를 맡는 비율은 49.2%로 절반에 가까웠다. 이는 비돌봄청년들과 비교하면 약 20%포인트 높은 수치다. 부모가 차려주는 밥을 먹어야 할 12살의 나이에 우민 군은 요리를 배웠다. 라면을 끓이며 불을 다루는 법을 익혔고, 콩나물국과 오뎅탕도 만들어 아버지 식사를 챙겼다. 집은 8평(26㎡) 남짓한 작은 공간. 조금만 쓰레기가 쌓여도 금세 냄새가 난다. 우민 군은 등교나 학원을 위해 집을 나설 때 빠짐없이 분리수거를 하고 있다. 은행 업무는 초등학생 때부터 터득했다. 숫자가 보이지 않는 아버지를 대신해 자금 관리까지 도맡았다. 학생이지만 일상은 늘 아버지 중심으로 돌아간다. 모처럼 친구들과의 약속이 생길 것 같으면, 영석 씨에게 병원 예약 날짜부터 묻는다. 같은 영세민 아파트 단지에 사는 할머니(74)의 돌봄도 우민 군 몫이다. 당뇨 합병증에 교통사고까지 겹쳐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에게 파스와 두통약을 사다 드리고 있다. 식사를 거른 날엔 죽이나 도시락을 사 들고 직접 찾아간다. 그런 사이 정작 자신을 돌보지 못하고 있다. 300만원에 달하는 치아 교정이 시급하지만 150만원의 기초생활수급비에서 아버지 병원비, 생활비 등을 제하면 치과에 가는 것조차 쉽지 않다. 최근 들어서는 공부에 흥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20점대에 머물던 중간고사 수학 점수가 어느새 1년도 안 돼 90점까지 오른 것. 영석 씨는 그런 아들이 자신을 돌보는 데 많은 시간을 쓰자 미안하기만 하다. 영석 씨는 "공부 의지가 생기니까 배우기만 하면 곧잘 따라가더라고요. 제가 눈을 잃게 된 시간이 10년만 더 늦춰졌다면, 이 아이가 이렇게 자기 시간을 희생하며 살지는 않았을 텐데요... 저는 우민이가 없었다면 죽어도 벌써 죽었을 몸입니다"라고 했다. 아버지를 보는 우민 군의 마음도 복잡하다. 서울권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고 있고 몇 년 뒤엔 군대에 가야 해서다. 자신이 없을 때 눈이 안 보이는 아버지를 누가 돌볼 것인지에 대한 걱정이 가득하다. "아버지는 외출하실 때마다 제 팔을 꼭 붙잡고 걸으세요.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게 편하게 기대실 수 없잖아요. 제가 옆에 있으면 마음이 제일 놓인대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아버지 시력이 얼마나 나쁜지 잘 몰라요. 그걸 아버지가 직접 설명해야 한다면, 제 마음이 너무 아플 것 같아요." ◆ 지적장애 가정에 둘러싸인 수험생 척추측만증에 지적장애 1급을 가진 오빠, 그리고 지적장애 3급인 부모. 고등학교 3학년 은현(18·가명) 양은 돌봐야 할 가족이 셋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가족돌봄청년들이 돌보는 대상자 중 '장애인'은 24.2%로, 중증질환(25.7%)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자신을 제외하고 가족 전체가 지적장애를 앓고 있는 상황에서, 은현 양의 돌봄 부담은 이미 오래전에 극에 달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힘든 건 지능 연령이 7살 수준에 머무른 오빠(20)를 돌보는 일이다. 오빠는 탯줄에 목이 감긴 채 태어나면서 장애를 갖게 됐다. 수저를 제대로 사용하는 법조차 익히지 못해 식사 때마다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하다. 씻는 일까지 일상 대부분을 스스로 해내기 어렵다. 오빠는 아버지로부터 폭력을 배웠다. 어릴 적 제멋대로 움직인다는 이유로 아버지에게 자주 맞았고, 그 모습을 그대로 배운 오빠는 이제 어머니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 오빠의 폭력은 시도 때도 없이 이어졌다. 아침저녁으로 약을 제때 복용하지 않으면 감정 조절이 어려운 상태다. 집 안에서 싸움 소리가 나면 책 한 장 넘길 여유조차 없다. 입시만으로도 벅찰 시기에 가정폭력으로 인한 스트레스까지 감당하는 모습은 여느 또래와는 확연히 달랐다. "하루는 오빠가 갑자기 집을 나간 적이 있었어요. 데리고 돌아오는 길에 몸싸움이 잠깐 있었는데, 동네가 좁다 보니 친구들이 볼까 봐 정말 무서웠어요." 그렇다고 부모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화를 나누더라도 바로 이해하지 못해 몇 번이고 반복해서 설명해줘야 한다. 인터넷 검색부터 회원가입 등 기본적인 휴대전화 조작법까지 옆에서 알려주고 있다. 최근에는 학교 성적이 떨어지고 있어 고민이 깊다는 은현 양. 입시컨설팅을 받으며 대학을 준비하는 친구들을 보면 그저 부럽기만 하다. 수급비가 들어오기 일주일 전부터 끼니를 걱정하는 자신의 형편과는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오빠의 심리·언어치료에만 매달 수십만원이 지출되고 있다 보니 사교육 얘기를 꺼내는 게 사치처럼 느껴진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학원비가 많이 올랐어요. 영어와 수학을 따라가지 못하다 보니 지금 내신이 많이 불리해요." 그렇지만 은현 양은 홀로 진학 정보를 찾으며 성공에 대한 갈망을 갖고 사회복지사를 꿈꾸고 있다. 서울권 대학 진입이라는 목표까지 세웠다. "우리 집은 정상적인 가정과는 거리가 멀어요. 제가 부모님부터 오빠를 돌봐야 한다는 생각이 커요. 꼭 좋은 대학을 가서 과외로라도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하고 싶어요."

    2025-06-12 17:21:00

  • [들리지 않는 SOS, 가족을 짊어진 아이들](1)알콜 의존 엄마 대신한 11살 가장

    [들리지 않는 SOS, 가족을 짊어진 아이들](1)알콜 의존 엄마 대신한 11살 가장

    지난달 21일 오전 8시쯤 대구 한 5층 빌라. 이곳 꼭대기층 거실에는 술 냄새가 풀풀 풍겼다. 소주병 세 개가 말끔히 비워진 걸 보니 은혜(11·가명)는 오늘도 제시간에 등교하지 못할 것만 같다. 술에 취해 잠든 어머니 대신, 지적장애 2급인 여덟 살 동생 은호(가명)를 돌봐야 하기 때문이다. 한 번 앉은 자리에서 가만히 있지 못하는 동생. 밥을 먹이고 옷을 입히는 데만 50분이 훌쩍 지나갔다. 은호를 복지관으로 데려다줄 차량 한 대가 집 앞으로 왔다. "엄마가 술에 취해서 잘 때면 제가 동생을 차에 태워 보내야 해요. 혼자 밖에 두면 어디로 사라질지 모르니까요. 차에 올라타는 모습까지 눈으로 직접 봐야만 발걸음이 가볍더라고요." 오전 9시쯤 학교에 도착한 은혜. 30분이나 지각했다. 1교시 수업이 한창인데 조심스럽게 교실 뒷문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 술 마시다 사고 난 엄마 단속에 급급 초등학교 같은 반 친구들은 은혜가 1교시 수업에 자주 지각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익숙한 질문이 들려오면 은혜는 늘 준비된 두 가지 대답을 꺼낸다. "늦잠 잤어", "아침에 일어나서 숙제하다가 등교 시간을 놓쳤지 뭐야." 차마 말하지 못한다. 알코올 의존증이 있는 엄마를 대신해 등교까지 미루고 아픈 동생을 챙겨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 집 얘기를 솔직하게 꺼내면서 힘들다고 말하면요…저는 왕따 되거나 찐따 소리 들을 게 뻔해요!" 4교시 수업이 끝나고 찾아온 점심시간. 운동장에서 뛰노는 친구들과 달리 은혜는 느지막이 일어날 엄마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눈을 뜨자마자 또 술을 찾지는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집. 다행히 엄마는 술에서 깨어 있었다. 그제야 은혜는 한숨을 돌렸다. 가방을 내려놓기도 전에, 커피를 사다 달라는 엄마의 부탁에 집 앞 편의점으로 나섰다. 심부름이 귀찮을 법한 나이지만 은혜는 오히려 마음이 놓인다. "매일 술을 드시니까요. 엄마가 직접 나서면 또 소주를 사올까 봐 불안해요. 제가 대신 다녀오면 필요한 것만 딱 사서 오니까 마음이 좀 편하더라고요" 엄마는 집안 살림에 무관심한 아빠를 대신해 생계를 도맡다가 3년 전 화병을 이기지 못하고 술에 기대기 시작했다. 그러다 이혼 과정에서 막내 은호가 지적장애 2급 판정까지 받자 정신적 충격으로 삶을 내려놓았다. 하루도 빠짐없이 술을 마시다 보니 주량은 소주 두 병에서 어느새 네 병으로 늘었다.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술에 취하면서 결국 사고가 났다. 지난해 3월 만취 상태로 부족한 술을 사러 나섰다가 계단에서 굴러떨어진 것. 또래들이 소주병 색깔도 모를 나이에 은혜는 술이 백해무익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엄마는 왼쪽 팔 삼두근 파열에다 오른쪽 갈비뼈까지 부러졌다. 은혜는 두 팔을 들어 올리지 못하는 엄마에게 밥을 떠먹이고 샤워도 시켜줘야 했다. 술을 끊으라고 단호히 말해야 하는 것도 은혜의 몫이었다. 모처럼 나선 외식 자리에서 엄마가 소주를 주문하자 은혜는 참았던 말을 쏟아냈다. "제발 그만 마셔." 하지만 엄마는 소주병을 비워낸 뒤 자갈이 많은 길에서 넘어졌고, 겁에 질린 은혜는 119를 불렀다. 주로 집에서 술을 마시는 엄마가 외출하는 날이면 은혜의 마음은 더욱 불안하다. 집에 언제 들어오겠다는 말조차 해주지 않아서다. 하루는 자정이 넘도록 돌아오지 않아 전화기를 들었다. "어디야 엄마, 언제 들어와?" 새벽 1시가 다 되어 들어온 엄마는 기다리다 지쳐 잠이 든 은혜를 깨웠다. "나 넘어졌어, 약 좀 발라줘." 눈을 비비며 일어난 은혜는 동생이 깰까 봐 불도 켜지 못한 채, 엄마의 상처를 살펴 연고를 바르고 반창고를 붙였다. ◆ 동생 돌봄에 친구들과 멀리하는 은혜 엄마의 술을 단속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은혜의 하루는 동생을 돌보는 데 쓰인다. 정신연령이 3~4세에 머물러 있는 동생은 자기 의사를 말로 표현하지 못한다. 울음을 터뜨릴 때면 밥을 챙겨줘야 하는 신호다. 아직 불을 능숙하게 다루지는 못하지만 은혜는 밥에 김을 싸서 동생 입에 하나씩 넣어주고 있다. 설거지를 하는 순간에도 시선은 늘 동생에게 향한다. 집 안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다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동생을 씻기는 것도 은혜밖에 할 사람이 없다. "엄마가 예전에 술을 마시다 팔을 다쳐서 연골 주사를 맞고 있어요. 무릎도 안 좋으셔서 구부리는 게 힘들다 보니, 제가 동생을 씻길 수밖에 없어요. 말을 잘 안 들어서 제 몸 씻는 시간보다 3배는 더 걸리는 것 같아요." 누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동생은 가끔 은혜에게 주먹을 휘두르기도 한다. 어디서 배웠는지도 모를 욕을 쏟아낼 때도 있다. "놀자고 하는 친구들이 많은데 동생을 돌봐야 해서 숙제가 많다고 거짓말해요. 그런데 때리는 것부터 욕까지 들을 때면 서글퍼요. 그렇다고 몸이 아픈 엄마나 가족에 무관심한 사춘기 언니(12)가 동생을 챙길 것도 아니잖아요. 결국 제가 해야죠." 주말에 집에 있더라도 온전히 쉬어본 적이 없다. 동생은 손에 잡히는 물건들을 던지고도 정리하지 않는다. 모처럼 치킨을 시켜 먹었던 지난달 10일에는 누나 방에서 먹겠다며 고집을 부리다 가방과 인형을 죄다 내팽개쳤다. 동생과 함께 외출할 때면 신경이 바짝 쓰인다. 원하는 장난감을 사주지 못할 때면 자리를 박차고 달아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 때문에 은혜는 외출 시 '중증장애인 2급' 안내 목걸이를 걸어주고 있다. "편의점에서 3천원짜리 장난감 카드가 있었어요. 우리 형편에는 너무 비싼 거예요. 그래서 못 사준다고 했더니 뛰쳐나가더라고요. 차들도 쌩쌩 오가는데 붙잡는다고 힘들었어요." ◆ "저 카페라는 곳 처음 와봐요! 원래 이렇게 이뻤어요?" 같은 달 오후 3시쯤 학교를 마친 은혜가 집 근처의 한 카페에 들어섰다. 눈을 휘둥그레 뜬 채 메뉴판을 한참 들여다보지만 무엇을 시켜야 할지 모른다. 이곳 분위기가 낯설기만 하다. 고심 끝에 딸기 스무디 하나를 골랐다. 열한 살이 되도록 은혜는 한 번도 카페에서 음료를 사 마셔본 적이 없다. 매장 안에서 일회용컵을 사용할 수 없다는 사실도 이날 처음 알았다. "이렇게 카페가 크고 이쁜 줄은 몰랐어요. 친구들은 카페에서 스무디나 음료를 마신다고 들었는데 저는 한 번도 따라가 본 적이 없었거든요!" 아픈 엄마와 동생의 돌봄부터 집안일까지, 어린 나이에 많은 책임을 떠안은 은혜는 또래처럼 편히 놀아본 기억이 없다. 한때는 친구들과 어울려 춤추는 걸 좋아했다. 하지만 몸을 다쳐가면서까지 술을 찾는 엄마 때문에 2년 전부터는 그마저도 포기했다. 부족한 게 한사코 없다지만 은혜도 꾸미길 좋아하는 영락없는 10대 여학생이다. 친구들이 새 운동화를 자랑하면 부러움을 감추기 어렵다. 200만원 가량의 기초생활수급비에서 엄마와 동생 병원비, 월세, 공과금까지 빠져나가고 나면 남는 게 없다. "제가 신발 끈을 잘 못 묶어요. 집에 있는 신발은 다 언니한테 물려받은 거라 끈 달린 것뿐인데 신기 어려워요. 묶을 필요 없는 새 운동화를 갖고 싶은데... 우리는 항상 돈이 부족하니까, 저는 그런 걸 사면 안 될 것 같아요." 교복이 아닌 사복을 입는 초등학교가 원망스러울 때도 있다. 몸이 자라면서 저학년 때 샀던 옷들이 맞지 않는다. 매일 다른 옷을 입고 오는 친구들로부터 소외되지 않으려면, 몸에 어울리지 않는 엄마 옷이라도 꺼내 입어야 한다. 친구들과 사소한 의견 충돌 속에서 마음을 다치기도 했다. "학교에서 친구랑 다퉈서 속상할 때가 있어요. 사춘기라 예민한 언니한테 말하면 싸우기만 할 것 같고, 동생은 말이 안 통하잖아요. 엄마에게는 걱정을 끼치기 싫고요. 그래서 그런 날엔 맑은 하늘을 봐요." 하늘은 은혜가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마음의 피난처다. 그래서 그림장에도 쨍쨍한 파란 하늘을 잔뜩 그렸다. 그마저도 동생이 그림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그런데도 은혜는 단 한 번도 동생을 미워해본 적이 없다. 언젠가 의학이 더 발전해서 지적장애 2급이라는 중증 질환도 치료되길 바라는 마음뿐이다. "그런 날이 올거라 생각해요. 엄마도 술을 끊고 동생도 저처럼 건강한 하루를 보내면서 평범한 가정이 되는 그러한 시간이요."

    2025-06-12 16:00:02

  • "최고의 어머니였다" 뇌출혈로 쓰러진 60대, 장기기증으로 3명 살려

    갑작스럽게 뇌출혈로 쓰러진 60대 여성이 3명에게 생명을 나눔하고 하늘의 별이 됐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은 지난달 13일 중앙대 광명병원에서 한옥예(65) 씨가 간과 신장(좌·우)을 기증한 뒤 영면에 들었다고 11일 밝혔다. 한 씨는 지난 5월 8일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던 도중 뇌출혈로 쓰러져 병원에 이송됐다. 하지만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뇌사 상태가 됐다. 갑작스러운 이별로 슬픔에 빠졌던 한 씨의 가족들은 건강했던 고인의 장기로 다른 이들을 살리기로 결심했다. 자신들처럼 사랑하는 가족을 잃을 위기에 처해 기적을 바라는 이들에게 희망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전북 정읍에서 7남매 둘째로 태어난 옥예 씨는 늘 주변 사람들을 챙겼고 따뜻한 사람이었다. 자녀들에겐 헌신적인 어머니였다. 고인의 아들 이용 씨는 "저희에게는 최고의 어머니였다"며 "생전에 고생하시고 힘들던 모습만 기억이 난다. 하늘에 가서는 편안히 하고 싶은 일 많이 하시고 행복하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삼열 장기조직기증원 원장은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내며 다른 생명을 살리는 기증을 결심해 준 기증자 유가족의 숭고한 생명 나눔에 감사드린다"며 "이러한 기적 같은 일이 우리 사회를 따뜻하고 환하게 밝히는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25-06-11 10: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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